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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피 금주 뉴 이어

by 성새진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결국 2024년에도 금주는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올해는 금주를 제대로 마음먹은 적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되려 주량이 더 는 것 같다. 술 없이 보낸 주말을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국내외 여행을 다니면서 특색 있는 술을 마시는데 많은 여행 일정을 할애했고, 친구들이 여행에 다녀온 후 기념품으로 으레 내민 술을 거절하지 않았다. 월요일은 원래 술 먹는 날, 화요일은 화나니까 술 먹는 날, 수요일은 수울 마시는 날… 과 같은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않고 신조 삼듯 받들어 계명처럼 지켰다. 올해도 생일 선물로 가장 많이 받은 품목은 술이었고, 덕분에 웬만한 한식 주점에서만큼 많은 전통주를 임시 보호하고, 마셨다. 집에서 마신 소주병을 모아 마트에 여러 번 되팔았는데, 그 돈으로 산 로또가 몽땅 낙첨인 것은 아쉽게 된 일이다.


한 해를 톺아보다 보면 술과 나는 정말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진다. 이렇게 술과 내가 반려를 뛰어넘어 거의 한 몸처럼 살고 있는 것이 한두 해도 아닐 텐데 막상 술과 함께한 한 해를 나열하고 보니, 뭐랄까… 웃기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 건 술의 부정할 수 없는 양면성 때문일 것이다. 술은 양면적인데, 나는 참 한결같은 사람이구나. 분명 작년에도 비슷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던 것 같은데 올해도 역시 같은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니. 매년 그래왔듯 술 이외에 크고 작은 이슈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되짚어봐도 술만큼 내 한 해를 관통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내 인생은 술로 통한다”랄까.


올해 하반기에 들어 금주와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에서 행동이 말과 글 모두와 따로 노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혹시 다운그레이드인가?) “나 진짜 금주한다”로 시작해서 “언젠가는 꼭 금주를 성공하고 말 것이다”라는 맺음말로 마무리되는 글을 열 개 남짓 쓰면서도 아직도 음주를 해야만 금주도 가능하다는 개똥철학 같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아직도 그렇게 사니?’를 되묻는 일은 언제쯤 그만둘 수 있는 걸까. 사실 진짜 내가 술을 끊고 싶기는 한 건지 묻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직장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퇴근해 공을 들여 나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김치찜, 제육볶음, 김치전, 백숙, 파스타… 그날의 기분은 물론이고 온도, 습도, 조명과 내 냉장고 사정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메뉴를 선택한다. 야채를 썰고, 고기를 볶고, 매운맛을 팍팍 첨가하며 간을 본다. 내가 만들었지만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맛있는 음식이 뚝딱 차려진다. 나는 그 음식을 예쁜 접시에 담아 나에게 대접한다. 나는 이 과정, 즉 요리의 기승전결을 모두 좋아하고 즐기지만, 요리를 하다 보면 열기와 에너지가 계속 상승만 하는 느낌이라 이 하이텐션을 가라앉혀줄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예를 들어 카페인이 간절할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카페인이 단숨에 손끝과 발끝까지 치닫는 것을 느끼며 깊은 숨을 들이마시게 되는 순간이 있다. 들이마신 깊은숨을 길게 내뱉으며 나도 모르게 “아, 이제 살 것 같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그 순간! 나에게는 그게 바로 반주의 순간이다. 가쁜 요리 후 자리에 앉아 첫 잔을 마실 때에야 열기에 휩싸인 몸과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드디어 쉼의 상태에 도달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게 행복이지”라는 말이 따라 나온다.


만일 완벽한 금주를 한다면 이런 쉽고 일상적인 행복쯤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이 행복을 포기할 수 있냐는 반발감이 마음속에 자그맣게 불씨를 틔우다 보면 그 불씨는 점점 커져 술을 끊을 필요까지 있냐는 횃불이 되고, 더 나아가 ‘됐고, 그냥 술 마시련다’라는 캠프파이어의 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 캠프파이어장에서 나를 꺼내도록 계속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초심으로 돌아가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를 떠올린다. 일단 술은 중독성이 있다. 그러니 몇 주간을 잘 참는다 해도 갑자기 하루 마시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거기다 나의 경우에는 술을 입에 대면 곧장 목표가 취하는 것으로 변해버려서, 결국 술을 입에 대는 순간 취하는 상태에 도달하기 대회라도 나간 듯 술을 계속 마시게 된다. 심지어 이 중독성이라는 것은 끝도 없어서, 하루 술에 취하면 다음 날도 취하고 싶고, 다다음 날도 계속 취한 상태로 있고 싶다는 것이 문제다. 술을 억지로 마시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술을 좋아해서 마시는 사람이라 그런지 짝사랑하는 사람을 보지 못해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술이 자꾸만 마음 한 켠에 떠오르고, 자꾸만 마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건강 때문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신체를 보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술을 끊으면 술을 안 마신다는 핑계로 무슨 몸에 안 좋은 짓을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술을 마시면 음주로 인한 각종 성인병과 정신적, 심리적 질환의 표적이 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약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술을 마시면 일단 피곤함이 다르다. 술을 마시면 같은 시간을 자도, 아니 조금 더 잔다 해도 선명하게 자리 잡은 다크서클에 놀라게 된다. 술만 마시면 다음날 폭삭 늙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술의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다이어트 최대의 적이라는 점 아니겠는가. 나의 경우, 식단 조절이나 운동 조절 하나도 없이 내 일상에서 딱 술 하나만 없앤 채로 한 달을 살았더니 4kg이 저절로 감량되는 기적을 경험한 적 있다. 일상에서 술만 빼면 그 어렵다는 살 빼기가 가능한데, 술도 안 빼고 살도 안 빼면서 술도 빼고 싶고 살도 빼고 싶다고 우는 소리만 십여 년째인 것은 어쩌면 좋을까.


거기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인 것 같다. 술을 마시면 쉽게 즐거워지고 또 쉽게 우울해진다. 즐거움과 우울의 널뛰기가 심해진다는 것은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 상태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라 이 불안함은 다시 술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모든 하루를 술로 귀결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답안을 낼 수조차 없게 만드는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또,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금전적 이유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1인 가구인지라 치솟는 물가 상승률에 월급이 따라가지 못해, 올라야 하는 월급 대신 엥겔지수만 자꾸 높아지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 대표 서민 술이라는 소주가 오천 원이라니. 단 10년 전만 해도 소주를 오천 원을 주고(심지어 서울의 고급 식당 등에서는 칠-팔천 원도 우습다.) 사 먹는다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월급은 오르는 티도 나지 않는데 술값은 한 해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분명히 소주가 삼천 원에서 사천 원으로 오를 때 “내가 사천 원까지는 사 먹어도, 소주가 오천 원이면 절대 안 먹는다”라고 했던 게 슬쩍 아른거려서 급하게 고개를 내저어 본다. 육천 원 되면… 진짜로… 아무튼 아무리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점심을 도시락을 먹어도 월급이 남아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술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이외에도 술을 끊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숙취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무력하게 누워서 보냈던 시간, 쓸데없는 주정으로 인해 생겨났던 사소한 다툼들, 술로만 이어져야 하는 허무한 관계 등… 그럼에도 나는 술로 인해 얻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지푸라기 잡듯 붙잡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긴다는 뜻이다. 나는 어째서 나도 알고 술도 아는데 금주라는 싸움에서 백전백패인지 모르겠지만, 이 싸움에서는 백전일승만 되어도 성공인 것 아니겠는가. 일단 올해까지의 싸움에서는 연전연패지만, 내년에는 반드시 일 승을 거머쥘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런 의미로 올해 마지막 건배사는 이거 어떨까?


“해피 금주 뉴 이어를 위하여!”




2024년에 인사드리는 마지막 글이 되겠네요.

술을 끊는 것만큼이나 글을 꾸준히 쓴다는 게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배운 2024년이었습니다.

2025년에는 글에서도, 금주에서도,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2024년 마무리 잘 하시고, 2025년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해피 금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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