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나의 친한 친구 Z다. Z와 나는 모든 것이 다르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르다. 성격, 취향, 취미, 특기, 식성… Z와 내가 교집합인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Z는 강아지를 더 좋아하고, 나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것까지도. 그런 우리를 엮는 단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술이다.
고 1, Z와 나는 처음 만났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만 서로 말을 나누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무리였고 둘 다 목소리가 크거나 외향적인 타입이 아닌 데다, 남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는 성격이 아니어서 그런지 부딪힐 일 자체가 없었다. 서로가 같은 반인 것 정도만이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일 정도로 데면데면하던 1학년 때를 지나, 2학년 때도 같은 반이 되었고, 그제야 몇 번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뭐,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을 거다. 아무튼 고등학교 내내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끌림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 Z와 친해진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다. 성인이 되어 고삐가 풀려 누굴 만나도 미친 듯이 술을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할 무렵,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의 동창 모임에서 Z를 다시 만났다. 사실 그때도 Z와 무슨 이야기를 깊게 나눈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Z와 나는 그리 가깝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Z와 주 3~4일을 꼬박꼬박 만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 우리는 그다지 썩 말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것보다 술이 통하는 사이였다. 누구도 술을 빼지 않고, 누구도 취했다고 나무라지 않으며, 누구도 멈출 줄을 몰랐다. 이때 Z와 내가 마신 술병을 일자로 세우면 과장 조금 보태서 지구 반바퀴는 둘렀을 것이다.
Z와 거의 하루 걸러 하루 만나서 술을 마시고,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음주 상태 또는 숙취 상태를 확인했다. 우리는 “술 마시냐?” 혹은 “술 마실래?” 혹은 “술 마셨다.”의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며 20대의 반 이상을 보낸 것 같다. 서로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는 “너 대신 내가 마셔준다.”라는 의리도 생겼다. 이로써 우리는 어느샌가 술로 묶인 동맹 비슷한 게 되었다. 나와 언제든 술을 같이 마셔줄 사람, 나 대신 술을 마셔줄 사람, 기꺼이 내가 대신 술을 마셔줄 수 있는 사람. Z와 나는 모든 것을 다 배제하고 술이라는 공통점 단 하나만으로 서로를 만났고, 단숨에는 아닐지라도 오랜 시간 술과 함께 공들여 깊어졌다.
사실 다른 공통점 없이 술만으로 친해졌다는 게 웃기게 들릴 수 있다. 심지어 오늘 술 마시고 했던 이야기를 내일 되면 Z도 나도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다. 잘 얘기하다가 한 명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다거나(거의 내가), 또 잘 얘기하다가 한 명이 갑자기 말이 없어지더니 냅다 집에 가겠다고 일어난다거나(거의 Z가) 하는 게 전부인 술자리임에도, 만나면 만날수록 어쩐지 견고해지는 느낌이 나는 건 왜일까? 그것이 Z와 내가 가진 미스터리다.
Z와 친해진 후 셀 수 없이 많은 술자리를 가졌건만, 놀랍게도 술 없이 만난 적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Z의 집 근처에서 카레를 먹었다. 둘이 만나서는 처음 먹어보는 메뉴였다. 우리는 만나면 늘 술을 먹었기 때문에 언제나 술안주가 될만한 음식만을 먹었는데, 술안주가 아닌 음식류를 처음 같이 먹어본 것이다. 우리는 술 없이 카레를 먹으며 즐겁게 얘기하면서도 돌고 돌아 입에 수십 번 올린 마지막 문장은 “이게 되네”였다. 이게 되네, 술 없이도 우리가 만날 수 있네? 그날은 단 한 번도 술 없이 만난 적 없는 우리가, 누구도 취하지 않고 멀쩡히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배웅한 최초이자 최후의 날이었다. 우리는 술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걸 확인했다. 확인했으면 됐다. 그날은 둘 다 술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 맞는 게 술인데, 굳이 술 없이 만나야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확신한 날이기도 했다.
얼마 전 우연히 <나래식>이라는 콘텐츠에서 절친으로 유명한 박나래와 장도연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았다. 둘은 친하니까 성격도 취향도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란다. 몸에 맞는 온도부터, 식성도, 취향도 모든 게 다 다르단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왠지 나와 Z가 떠올랐다. 그들이 힘든 시간을 개그라는 공통 목표와 술로 버텨냈듯이, 나와 Z도 휘청이는 20대를 함께 술로 털어내고 버텨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과연 서로에게 좋은 친구일까, 우리가?”
박나래가 그 유명한 나래 Bar를 만든 일화를 설명하는 중에 장도연이 뱉은 한마디. 그리고 둘은 호탕하게 웃는다. 사실 나도 Z를 떠올리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친구. 우리의 만남은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고 크게 특별하지도 않다. 늘 비슷한 곳에서 만나서 그냥 사는 얘기나 좀 하면서 맛있는 안주에 여지없이 소주를 마시는 게 전부다. 그리고 둘 다 멈추는 방법을 몰라서 다음날은 언제나 거한 숙취 폭탄을 때려 맞는다. 늘 그런 만남뿐인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일 수 있는 걸까? 거기에 덧붙여 내가 금주를 한다면 Z와 지금처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양심적으로 우리가 아주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우정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그렇지만 단 하나 확실한 건 Z와 술 마시는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진다는 것. 딱히 재밌는 이야기가 없어도, 비슷한 동네에서 비슷한 안주를 먹어도, 늘 똑같은 소주를 마셔도 그냥 그게 즐겁고 편안하다. 사실 Z는 내가 술주정을 부려도 다음날 “너 어제 기억나?”라고 말하지 않아 주는 친구, 술 마시고 집에 가기 싫을 때 어떻게 해서든 좁은 방 한 칸을 최상의 잠자리로 만들어주는 친구,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혹평하면서도 끝까지 같이 들어주는 친구, 술 마시고 같이 시집을 꺼내 마음에 드는 시를 낭송할 수 있는 친구, 숙취로 뻗어있는 나 대신 자연스럽게 우리 집 설거지를 해주는 친구다. 이 정도면 건설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은 우정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단 한 번의 경험이긴 하지만 술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사이라는 걸 알았으니, 언젠가는 술 말고도 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걸어본다. 그걸 찾을 때까지는 아무래도 함께 술을 마셔야겠지? 술이 너무 좋아서 다른 걸 굳이 찾으려는 시도를 해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완전한 금주는 그 이후로 미뤄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