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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진지로 떠나는 타이베이 근교투어, 대만 1편

자유여행만 고집하던 내가, 이 투어를 추천하게 된 이유

by 닐바나
타이베이,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의 기억


확실히 사람은 어떤 일을 반복하고 지속할수록 그 일에 대한 깊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전해드릴 이야기는 2023년 4월, 제가 처음으로 ‘여행’이라는 목적으로 해외에 나갔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미국 출장을 자주 다녀오긴 했지만, 코로나라는 특수한 시기 속에서 업무에 집중해야 했던 여행은 아무래도 ‘경험’이라기보다는 ‘임무’에 가까웠습니다. 새로운 풍경이 있어도 감상할 여유는 없었고, 인상 깊은 이야기도 그리 많이 남기지 못했죠.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습니다. 코로나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 다시 공항을 지나고,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는 그 모든 순간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타이베이. 그 이름만으로도 묘하게 따뜻했던 도시. 시간이 꽤 지나서 이제는 20번 넘는 해외여행의 기억들이 덧씌워졌지만,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니 조금은 미숙했던 제 사진 실력도, 그때의 설렘도 고스란히 남아 있더군요. 동시에 ‘그때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녀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쩌면 조금은 평범하고 어설펐던, 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저의 첫 타이베이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대만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홍콩의 거리를 닮은 듯한 대만의 거리

타이베이 여행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먼저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려 합니다. 대만은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해외 중 한 곳입니다. 비행기로 단 2시간 반. 일본, 중국과 더불어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닿을 수 있는 나라지만, 항상 일본에는 여행 순위에서 후순위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번 가보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색다른,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는 나라.

비를 맞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거리와 타이베이 101

대만은 제국주의의 격동 속에서 살아남아 지금의 모습에 이른 나라입니다. 한때는 청나라의 일부였고, 이후 일본의 식민지배를 50년 가까이 받았습니다. 일본의 패망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이주해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된 정권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지금까지도 ‘국가인가 아닌가’라는 논쟁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만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좀 더 자세하게 매거진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만을 여행해 보면, 그런 정치적 복잡함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삶의 온도입니다. 사람들은 유쾌하고 친절하며, 거리는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습니다. 언어는 분명 중국어이지만, 도시의 분위기나 사람들의 태도, 서비스 문화 등은 오히려 일본이나 홍콩을 떠올리게 합니다. 역사적으로 일본 식민지 시기를 거친 영향도 있지만, 대만 특유의 부드럽고 차분한 기질이 섬 전역에 고르게 배어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전통시장과 최신 트렌드가 공존하고, 야시장에는 소박한 일상과 자부심이 섞여 흐릅니다. 언뜻 보면 익숙한 동아시아의 어느 도시 같지만, 천천히 걸어보면 대만만의 고유한 리듬이 있습니다. 대만은 단지 가까운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과 비슷한 역사의 무게를 짊어졌고, 일본과 닮은 일상의 섬세함을 품었으며, 중국어라는 공용어 속에 독자적인 문화를 꿋꿋이 유지해 온 곳. 그래서 더더욱 특별한 이야기들이 쌓일 수밖에 없는 여행지입니다.


예스진지 데일리 투어
12000원 전후로 버스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

타이베이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게 되는 네 곳이 있습니다. 바로 예류(野柳), 스펀(十分), 진과스(金瓜石), 지우펀(九份). 대만 여행자들 사이에선 흔히 ‘예스진지 투어’라고 불리죠. 저도 그 이름을 여러 번 들어봤지만, 이번에는 좀 더 수월하게 다녀오고 싶어서 일일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이용한 상품은 ‘예스폭진지 투어’였습니다. 스펀 마을뿐 아니라 그 근처에 있는 스펀폭포까지 포함된 구성으로, 요즘 포털 사이트들에서 손쉽게 예약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2025년 기준 약 12,000원 선. 이 투어에는 한국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동행하며, 각 장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버스 안에서 친절하게 해 줍니다. 저희 가이드님은 화교 출신으로, 한국에서 성장해 귀화하신 분이었는데요. 현재는 대만과 한국을 오가며 여행 가이드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동 중 들려주신 대만의 역사, 문화, 그리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관광지를 보는 것 이상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예약을 완료하면 가이드님의 카카오톡 연락처를 전달받고, 정해진 시간에 집결지로 모이면 됩니다. 이 네 곳은 물론 개별적으로 대중교통을 통해 갈 수도 있는 지역입니다. 하지만 대만이 처음이시라면 일단 투어로 경험해 보신 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나중에 재방문해 더 오래 체류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만 투어의 특성상 각 장소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다는 점은 아쉬울 수 있습니다. 또 입장권, 천등 날리기 체험, 도시락 등은 포함되지 않아 현장에서 별도로 가이드님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투어를 통해 가는 뻔한 스토리지만 추천을 하고 싶은 코스이기에이제부터는 예류에서 지우펀까지, 그 하루의 여정을 하나씩 꺼내 보려 합니다.


예류지질공원
침식의 흔적이 보이는 바위들

예스진지 투어의 시작은 예류지질공원이었습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하게 되는데, 도심을 벗어나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점차 시야가 트이면서 바닷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예류지질공원은 바다로 돌출된 곶 형태의 지형으로, 수백만 년 전 지각 변동과 침식 작용에 의해 형성된 장소입니다. 특히 바닷바람과 파도, 조류에 오랜 시간 깎여 만들어진 독특한 바위들이 이곳의 하이라이트인데요, 자연이 수천 년에 걸쳐 직접 조각한 예술 작품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류지질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여왕머리바위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바위는 단연 ‘여왕머리(Queen’s Head)’입니다. 목이 가늘고 머리 부분이 넓은 형태로, 영국 여왕의 옆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바위가 약 4,000년에 걸쳐 서서히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왕머리는 지금도 계속 침식되고 있어, 목둘레가 매년 0.2~0.5cm씩 얇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 바위를 사진으로라도 꼭 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방문해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예류지질공원은 그늘이 거의 없는 해안지형이라,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곳입니다. 특히 대만의 햇살은 한여름 못지않게 따가울 수 있어서, 선크림은 기본이고 선글라스, 모자, 양산 등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준비물을 꼭 챙기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준비를 소홀히 했다가 한참을 눈을 찡그리며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자연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풍경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투어의 첫 시작 지였지만 이미 이곳만으로도 대만 여행을 온 보람이 느껴질 만큼, 인상 깊은 장소였습니다.


스펀마을과 스펀폭포
모르는 분의 천등 날리는 인생샷을 찍어드린 듯
곳곳에서 천등을 날린다. 떨어진 천등은 가게들에서 회수해서 재활용 한다고 한다

예류지질공원을 떠난 버스는 이제 산을 넘어 스펀마을로 향합니다. 이 마을은 예스진지 투어 중에서도 가장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스펀마을은 철로와 함께 시작된 작은 마을입니다. 지금도 마을 한복판에 기찻길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이 길을 따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천등에 소원을 적어 날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도착하자마자 천등을 골랐습니다. 네 면에 나눠서 건강, 가족, 일, 여행, 로또 당첨에 대한 소망을 하나씩 정성껏 적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하늘로 날려 보냈죠. 붉고 노란 종이 등이 푸른 하늘로 점점 작아지는 그 모습은, 잠시나마 마음속 근심이 멀어지는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 다음에 방문하게 된다면 밤에 방문하여 천등이 밤하늘을 밝히는 장관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기차가 지나갈 때와 맛도리인 닭날개 볶음밥

시간이 잘 맞는다면 이곳에서 실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 느릿하게 다가오는 차량의 진동,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기차. 이 순간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천등 말고도 스펀에는 놓쳐선 안 될 간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닭날개 볶음밥’입니다. 바삭하게 구운 닭날개 속을 파내고, 그 안에 간장향 가득한 볶음밥을 채워 넣은 길거리 간식인데요, 외관은 단순하지만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한 껍질과 촉촉한 밥이 어우러져 놀라울 만큼 잘 어울립니다. 이건 꼭 드셔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원해서 좋았던 스펀폭포


마을에서의 감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버스는 다시 짧은 이동을 거쳐 스펀폭포로 향합니다. 햇빛 아래 내내 걷던 일정 속에서 이곳의 그늘진 숲길과 시원한 물소리는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이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멀리서 점점 커지는 폭포 소리와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참 인상 깊습니다. 스펀폭포는 ‘대만의 나이아가라’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더군요. 수량이 풍부하고 넓게 퍼지는 물줄기가 아주 시원한 인상을 줍니다. 물방울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서 만들어내는 촉촉한 바람에 땀이 쏙 들어가는 기분. 하루 동안 계속해서 햇살 아래를 걸어온 뒤라 그런지, 그 시원함이 두 배로 와닿았습니다.


스펀은 분명 관광을 위해 조성된 마을이지만, 천등을 날리는 특별한 체험과 시골 철도 마을 특유의 정취가 묘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오래 머물진 못했지만, 짧은 순간마다 마음을 흔드는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곳이었죠.


진과스


옛날 탄광마을의 건물들

스펀을 지나 도착한 다음 목적지는 진과스(金瓜石)였습니다. 이름부터 어쩐지 금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마을은 과거 실제로 금광이 운영되던 탄광 마을입니다. 일본 통치 시기부터 광산 개발이 본격화되었고, 한때는 ‘황금의 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번성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광산이 모두 폐광되고, 관광지로 재정비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장소는 진과스 황금박물관인데, 이곳은 유료 입장입니다. 저도 처음엔 들어가 볼까 고민했지만, 외관을 둘러보고 내부 콘텐츠를 간단히 확인한 후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아서 과감히 패스했습니다.

광부도시락과 진과스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대신 이곳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건 바로 ‘광부 도시락 체험’이었습니다. 이 도시락은 과거 실제로 광부들이 갱도 안에서 먹던 식사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양은 도시락 통에 담긴 고슬고슬한 흰쌀밥 위에 큰 돼지고기 덩어리, 두부, 브로콜리, 숙주나물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료는 무한 리필로 제공되며 식사를 하는 공간에 뷰가 좋은 곳은 자리 선점하는 눈치게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땡볕에서 오래 걷고 했던지라 뭘 먹어도 맛이 있을 순간입니다.


석양을 향해 뻗어 나가는 철길

식사를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탄광에서 광물을 실어 나르던 오래된 철로와 광차가 남아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실제로 마을 곳곳에 깔려 있는 철길은 과거 이 마을의 중심이 광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 흔적이 지금까지도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끕니다. 제가 이곳을 찾았던 시간은 마침 해가 서서히 기울 무렵이었습니다. 오후 5시 무렵, 햇살이 점점 낮게 깔리기 시작하면서 철길 위로 주황빛 노을이 길게 드리웠습니다. 그 풍경이 참 묘하게 감성을 자극하더군요.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그런 순간. 진과스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시간 속에서 오래된 기억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마치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한 공간이었습니다.


지우펀


카페에서 바라본 지우펀 주변 풍경

예스진지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는 지우펀(九份)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영감을 준 장소로 알려지면서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된 마을이죠. 저 역시 이곳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이날 투어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지우펀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5시 30분쯤. 마을 입구는 고지대에 있어 본격적으로 골목을 걷기 전, 근처 카페에 잠시 들렀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 걸린 운무가 마치 수묵화처럼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그 순간의 감탄은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 투어는 쇼핑을 강요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는데, 지우펀에 도착해서 가이드님이 해주신 설명 중 인상 깊었던 것이 ‘대만의 우롱차 문화’였습니다. 대만은 예로부터 고산지대에서 자란 고품질 우롱차가 유명하다고 하시더군요. 특히 지우펀에서는 고산차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제품들이 있는데, 혹시 관심이 있다면 테이스팅도 가능하다고 해서 한번 따라가 봤습니다. 가이드님과 연결된 찻집이었지만, 부담을 주지는 않았고 오히려 차를 천천히 마셔보며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고산 우롱차를 한 통 구입했는데, 여행 후 집에서도 종종 마시며 그날을 떠올릴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던 구매였습니다. 가이드님 말로는 대만 사람들이 날씬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식후 우롱차를 습관처럼 마시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요즘 자주 언급되는 ‘혈당 스파이크’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니, 저도 설득당하여 구매를 하고 말았습니다.

홍등으로 꾸며진 지우펀 거리

이윽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우펀은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과 찻집, 간식거리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층층이 쌓인 건물 사이로 이어지는 계단과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현실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해 질 무렵의 지우펀은 상상 이상으로 사람이 많습니다. 좁은 골목 안에 인파가 몰리다 보니 정신이 조금 없고, 오래 걷다 보면 기가 다 빠지는 느낌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우펀의 진짜 매력은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부터 시작됩니다. 해가 넘어가고, 마을 집집마다 걸려 있는 붉은 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면, 그제야 ‘아, 여기가 바로 그 지우펀이구나’ 싶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마을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면서 고즈넉한 낭만이 공간을 감싸는데, 그 풍경은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지우펀의 홍등

길을 걷는 내내 사진 찍기에 바빠졌습니다. 골목 벽면의 오래된 간판,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 반짝이는 등불 아래 간식거리를 사 먹는 사람들까지 어느 장면도 허투루 지나치기 아까웠습니다. 다만, 걷다 보면 간혹 역한 냄새가 풍겨오는 구간도 있는데, 대부분 취두부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갈 때입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지우펀을 돌다 보면 종종 조그만 쓰레기 수거 트럭이 골목 사이를 오간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트럭에서는 마치 아이들 노래 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오는데, 당시에는 이름도 뜻도 알 수 없는 그 노랫소리가 꽤 낯설고도 재미있었습니다. 돌아와서는 금세 잊힐 줄 알았는데, 며칠 동안 귓가에 계속 맴돌 정도로 깊이 남아 있더군요.

좁은 골목은 관광객들로 번잡하다. 좁은 길을 다니는 트럭의 특유의 멜로디는 여행이 끝나고도 귀에 맴돈다.

사실 지우펀은 완전히 해가 진 후, 붉은 등이 모두 밝혀지고 나서부터가 진짜 시작인 곳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일일 투어 특성상 정해진 시간에 다시 버스로 돌아가야 했고, 마을에 작별을 고하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무리하며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투어라는 방식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늘 자유여행이 더 깊은 경험을 줄 거라 믿었고, 일정이 정해진 움직임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예스폭진지 투어는 그런 제 고정관념을 조금 흔들어 놓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알차게 구성된 데일리 투어였고, 짧은 시간 안에서도 풍성한 감상을 안겨주는 여정이었습니다. 무조건 자유여행만을 고집하던 제게, 오히려 이런 방식이 또 다른 여행의 깊이를 열어줄 수 있다는 걸 몸소 느끼게 해 준 계기였달까요. 비록 제한된 시간 안에 스치듯 지나쳐야 했던 곳들이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다음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갔던 곳들을 소개하면서 대만 하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장제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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