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와 잔혹한 계산
(INT. 드림그룹 본사 최상층 비공개 전략실 / 심야)
두꺼운 차음문이 닫히며, 방 안은 숨 막히는 적막으로 가득하다. 길게 뻗은 오벌형 테이블. 상석엔 심대표, 좌우로 최의원, 행정부시장(직무배제 중, 비밀리에 참석), 박종국 상무, 드림그룹 법무팀장, 홍보실장, 그리고 한켠에 심승현이 앉아 있다. 벽면 스크린에는 ‘서울시 전면 통제 / 부분 해체 명령 준비’라는 속보 자막이 무음으로 깜박인다.
심대표 (차가운 눈빛) 지금부터 묻겠습니다. 누가 무엇을 막을 수 있습니까.
홍보실장 여론은 이미 기울었습니다. ‘공포 확산 책임은 서울시’ 프레임으로 우회하는 수밖에…
법무팀장 행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으로 시간 벌 수 있습니다. ‘과학적 근거 부족’과 ‘경제적 손실’ 논리로요.
최의원 (건조하게) 부동산 폭락 막는 게 우선입니다. 강남이 무너지면 정권도 흔들립니다. 당신들도 끝이고, 나도 끝이에요.
행정부시장 시스템은 아직 움직입니다. 내부 문서 접근권이… (눈치를 보며) 몇 시간은 더—
심승현 (말을 끊고) 그만하죠. 이제 대책을 내놓으세요. 타워를 비우고, 부분 해체에 협조해야 합니다.
심대표 (비웃음) 네가 감히 나에게 명령해? 우리가 뭘 쌓아 올렸는지 알면서?
박종국 상무 대표님, 구조적 결함은 사실입니다. 오늘 B4~B5에서 기울기 0.5° 넘었습니다. 더 버티기 어렵—
심대표 (탁자를 두드리며) 사실? 사실이란 건 관리하는 겁니다. 문서가 진실이 아니고, 진실이 곧 권력도 아니에요. 숫자만 맞으면 됩니다.
최의원 그래도 언론은 통제가 안 됩니다. 서울시장이 정면돌파를 선언했어요. ‘시민의 생명’ 카드 앞에 논리 따위는—
심대표 그럼 ‘시민’을 숫자로 바꿔요. 손실추산, 세수감소, 연쇄 실업, 금융권 부실. 그 합이 생명과 같다고, 더 클 수도 있다고 설득하세요.
심승현 (분노를 누르며) 사람이 죽을 수 있습니다.
심대표 (얼음장 같은 목소리) 나는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 없어. 도시가 나를 필요로 했을 뿐이야.
법무팀장 자료라인 정리하겠습니다. 위험 보고서, 시추 원본, 터널 연결 흔적… 외부 반출 흔적을 삭제하고, 초안으로 되돌리면—
행정부시장 (작게) …그건, 이제 더 어렵습니다.
짧은 침묵. 모든 시선이 행정부시장에게 쏠린다.
최의원 왜죠?
행정부시장 서울시 감사가 전면 재개됐습니다. 서버 미러링이 진행 중이고… (입술을 깨문다) 더 이상 손댈 여지가—
심대표 배신자는 누구야.
심승현 (서늘하게) 배신이라뇨. 무너지는 걸 멈추자는 겁니다. 타워를 멈추고, 시민을 내보내고—
심대표 네가 원하는 건 자리야. 나를 끌어내리고, 빈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거지.
심승현 (정면을 응시) 자리가 아니라 결론입니다. ‘멈춘다’. 지금 당장
최의원 (손사래) 멈출 수 없어. 멈추면 터져. 선거, 자본, 시장— 우리가 매달린 모든 것이.
박종국 상무 (낮게) 시민들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심대표 조용히 해요, 박상무.
스크린에 드림타워 기울기 그래프가 다시 치솟는다. ‘0.53° – 임계 초과’ 붉은 경고. 테이블 위 컵이 미세하게 떨린다.
홍보실장 속보입니다. 서울시가 ‘사용중지·부분 해체 명령’ 예고 브리핑을 시작—
심대표 법원으로. 가처분 즉시 접수. 국토부에 유권해석 요청. ‘과학적 불확실성’ 전면에.
최의원 난 여기 까집니다. 더 끌어들이지 마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각자 살아남을 길을 찾읍시다.
심대표 (목소리를 낮추며) 의원님. 우린 운명 공동체예요. 당신 이름이 적힌 서류, 내가 들고 있어.
최의원 (잠시 멈칫, 곧 표정을 굳히고) 불에 태우세요. 아니면… 함께 타든가.
문이 닫힌다. 한동안 누구도 말을 잇지 못한다. 스크린의 타워 영상에서 미세한 콘크리트 분진이 비처럼 흩날린다.
심대표 (낮게, 명령처럼) 우리의 목표는 하나. 시간을 산다. 책임을 나눈다. 죄를 흩어라.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밀폐된 회의실의 차가운 공기와 인물들의 굳은 표정을 담는다. 유리창 너머 도시의 야경은 아름답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이 그 빛을 무색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