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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Dec 29. 2022

데릴사위가 되기로 했습니다.

인생에서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은 서서히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온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데릴사위가 될지 몰랐다. 데릴사위가 되기로 결정하고선, 막힌 혈이 뚫리듯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다. 비현실적 단어였던 데릴사위가 현신(現身)해 내 삶의 문고리를 두드리고 있다.


고객님의 대출이자 금리가 재산정되었습니다.


지난 10월, 살고 있는 집 매매를 위해 받았던 신용대출 갱신을 했다. 1% 후반대에서 시작했던 금리는 작년에 3% 중반대를 찍은 뒤 올해는 힘차게 이륙하는 로켓처럼 7%까지 솟아올랐다. 매달 내야 하는 이자가 불쑥 2배가 올랐다. 머리가 띵했다. 금리 인상의 벼린 칼이 내 몸속 깊숙이 박혀왔다. ‘30대 영끌족’이다 보니 신용대출 외에 주택담보대출도 갖고 있다. 담보대출은 매년 1월 대출이자 금리를 재산정한다. 은행의 금리 재산정 집행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통장 잔고는 쩍쩍 메말라있다.


우리 부부에게 올여름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다. 아내가 톡으로 보낸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보고서 코로나 걸렸냐며 애써 농담을 했을 정도로 꿈만 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내가 가장이 된다니.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차오르는 동시에, 어깨 위로는 무언가 묵직한 게 사뿐하게 올라왔다.


대출 금리 재산정을 안내해주는 알람톡과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은 눈을 감으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지금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와락 날 덮쳤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으로서 지금 난 무얼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처가 쪽으로 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난 공기업에 다닌다. 완전 자유롭게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길 순 없지만, 지금 난 충분히 옮길 수 있는 상황이다. 아내는 승무원이다. 아내는 출산 후 승무원을 그만둘 생각이다. 주변에 육아하는 친구들 대부분이 양가 부모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대출이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난다. 살고 있는 집을 세 놓으면 숨통이 조금 트이지 않을까. 육아를 하면 돈이 많이 든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고정지출도 줄이려면 처가나 본가와 가까운 게 좋지 않을까. 시댁이 가까운 며느리보단 처가가 가까운 사위가 더 편하지 않을까. 그래. 처가 쪽으로 내려가자.


이런 사고의 프로세스를 걸친 뒤 아내와 장인 장모님께 의견을 물어봤다. 막힘없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모두 긍정적이었다. 그렇게 결정은 순식간에 내려졌고, 결정을 실현시킬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만이 첫 결정과 달라졌다. 한 가지 사실이지만 너무나도 많은 걸 바꿔놨다. 처가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처가로 들어가서 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택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가족이 함께 사는 사택은 배정받기가 무척 어려웠고, 회사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 신규사택 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차선책으로 처가 근처 전월세를 알아봤다. 지방이라 그래도 저렴할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비쌌다. 처가 쪽으로 내려가 따로 셋집을 구하는 건 우리 부부가 목표하는 고정지출 절감과는 괴리가 있었다. 사택은 안되고, 전월세집은 비싸고.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처가로 들어가 사는 것.


처가로 들어간다 했을 때 장모님께선 괜찮다 하셨다. 하지만 이내 우리 의견을 재차 여쭤보셨다. 정말 들어와서 사는 게 괜찮은 것인지. 우리 부모님 또한 염려하셨다. 우리 부부와 태어날 아기로 고생하실 처가 어른들과, 어쩌면 처가에서 불편해할 수 있을 아들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리시는 눈치였다. 처가살이를 결정했을 때 양가 부모님의 걱정과 염려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어른들께 무거운 짐을 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지만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구호삼아 철면피를 깔았기 때문이다.


데릴사위가 되기로 한 결심에 따르는 계획들은 차곡차곡 진행됐다. 회사에 인사이동을 지원하겠다 알렸다. 살고 있던 집은 월세를 내놨고, 운 좋게도 한 달 여만에 세입자를 구했다. 우리가 들어오면서 처갓집은 부분 리모델링을 했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금요일, 우리 부부는 처가로 합가를 마쳤다. 이삿짐을 사다리차로 실어 올리는 내내 눈은 거세게 내렸다. 혹한과 폭설을 맞으며 난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마음을 단디 먹고서.

잘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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