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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n 16. 2021

연기로 가득했던 자취방

꿈, 생시?

새벽 다섯 시. 몽롱한 상태로 얼핏 잠에서 깼다. 사방은 뿌연 연기로 가득했다. 꿈인가 싶어 눈을 다시 감았다.

쾅쾅쾅.

'무슨 소리지?'

쾅쾅쾅쾅쾅

'꿈인데도 소리가 되게 생생하게 들리네.'

쾅쾅쾅쾅쾅쾅쾅.

무언가 낌새가 이상해 눈을 떴을 땐 꿈속이 아닌,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이었다. 방 안은 온통 연기로 가득했고 누군가 밖에서 세차게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안에 사람 계세요???"

뭔가 큰일이 났다 싶어 본능적으로 문을 열자 소방관이 서 있었다. 

"얼른 내려오세요!"

복도를 가득 메운 연기를 뚫고 코와 입을 수건으로 막은 채 소방관의 부축을 받아 황급히 밖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빌라 건물을 다시 쳐다봤다. 1층에 있는 방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화재가 난 것이다. 새벽녘에 잠들어 있던 몇몇 빌라 주민들은 이미 대피해 나와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뿌연 연기가 꿈속 배경이라 착각하고 다시 잠들었던 터라 조금만 더 연기를 마셨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다행히 나는 별다른 이상은 못 느꼈지만 소방대원이 응급실에 가서 산소치료를 받으라 권유해 구급차에 올라탔다. 응급실에서 반나절 정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안정을 취한 뒤 퇴원했다. 퇴원 후 다시 집에 도착해 건물에 들어서자 새삼 화재가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 화재의 원인은 새벽에 가스렌지 불을 켜둔 채 주전자를 올려놓고 외출한 1층 방에서 시작됐다. 주전자가 올려져 있던 방은 시커멓게 타버려 형태만 간신히 남았고, 온통 그을음으로 뒤덮인 복도와 계단을 보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살면서 집에서 화재를 겪을 줄이야. 액땜이라고 하기엔 꽤나 큰일이었다.


내가 24살이던 2012년 가을에 겪은 이야기다. 내가 살던 빌라 건물은 화재 전부터 빌라 주인과 시청이 공영주차장 부지사용으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곳이다. 화재 이후 건물주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내가 살던 건물은 공영주차장 부지로 편입됐고, 세입자들은 퇴거 보상금을 받고서 방을 비워야 했다. 방을 구한 뒤 채 2년이 되지 않아서 의도치 않게 쫓겨나게 된 것이다. 공영주차장이 되지 않았더라도 검게 그을린 건물에서 살고 싶진 않아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화재에 휩싸여 생을 마감한 이 공간에서 나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전역 후 첫 자취방이던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방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화장실이 딸린 한 칸짜리 방과 자그마한 부엌이 한 데 위치한 원룸이었다. 군입대 전 머물던 곳보다 훨씬 작았으나 비교적 신축이라 보증금과 월세는 조금 더 비쌌다. 100% 만족스럽진 않았으나 혼자 지내기엔 충분하다 싶어 큰 고민 없이 계약 후 입주했다. 비교적 신축이라 처음엔 좋았으나, 이곳에 살면서 빌라의 큰 단점을 몸으로 깨달았다. 바로 취약한 단열. 방 모서리에 침대를 두었는데 누울 때마다 침대와 맞닿은 벽을 통해 사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여름이면 벽이 뜨거워졌고,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한 느낌이 그닥 들지 않았다. 반대로 겨울에는 벽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난방을 틀어도 공기 순환이 잘 되지 않아 바닥만 따뜻해 족욕을 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이곳에선 웃픈 일도 많이 겪었다. 한 번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빨래를 하고 있었다. 물을 한껏 머금은 맨투맨을 온 힘을 다해 물을 짜냈다. 23살의 팔팔한 청년의 힘에 못 이겼는지 우지끈하며 세면대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다행히 세면대가 날 덮치진 않아 다치지는 않았다.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세면대를 보자 헛웃음을 나왔다. 이 역사적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고, 세면대 무너진 썰을 당시 유행하던 네이트 판에 올렸다. 무너져버린 세면대 덕에 내가 올린 글은 네이트 판 베스트에 올라갔다. 브런치 메인에 올라갔을 때 느꼈던 희열과 비슷한 감정을 이때 느꼈다. 희열과는 별개로 세입자가 해 먹은 것이라 내 돈을 주고 수리를 해야만 했다. 아직도 사진을 보면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생생한 당시 사건 현장 사진


세면대가 무너진 뒤 다음 해 여름방학에 나는 약 열흘 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꿈같던 외유를 마치고 돌아온 한국은 8월의 찌는듯한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무더운 날씨와 한가득 싸온 짐 때문에 곧장 자취방으로 돌아가야겠다 싶었다. 현관문을 열자 꼭대기에 있던 방은 햇빛을 가득 받아 열기로 가득했고, 무엇보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숨을 참았다. 냄새의 원인을 추적하고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냉장고의 냉동실을 열었다. 잔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전기가 언제부터 나갔었는지 냉동실의 냉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출국 전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조기가 부패한 상태로 뉘어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회용 장갑을 낀 채 생선 사체를 수습했다. 참혹한 잔해가 남겨진 냉동실에서 퍼져 나오는 냄새는 2-3일이 지나서야 빠져나갔다. 천국 같던 유럽에서 돌아온 자취방은 지옥의 냄새가 나는 썩은 생선으로 반겨주었다. 



세면대는 무너져 내렸고, 전기가 나가 썩은 생선 냄새가 무엇인지도 알게 됐고, 화재에 휩싸인 건물을 뚫고 나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경험을 만들어준 이 자취방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웃프고 나쁜 일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1년 반 여 지내며 좋은 기억들도 많이 쌓았다. 방 근처에는 걸어서 2분 정도 거리에 재래시장이 있어 가끔씩 3팩 5천 원어치 반찬을 사 먹기도 했다. 팥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올라오시면 옹심이가 가득 들어간 팥죽을 바로 앞 조그마한 팥죽 맛집에서 함께 먹었다. 화재 이후 퇴거 보상금도 생각보다 두둑이 받아 새로운 방을 부담 없이 구할 수 있었다. 5평 남짓의 자그마한 방이었지만 내 삶의 굵직한 역사들을 담은 채, 단열이 잘 되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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