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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 Jun 06. 2021

내가 자취생이라니

자취, 어른이 된 것 같은 단어

chapter 2. 붉은 벽돌집, 나의 첫 자취방


로망으로 가득 찼던 대학교 1학년은 저물고 21살이 된 나는 기숙사를 나왔다. 이때 당시 최고의 고민은 군입대였다. 하나둘씩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꺼냈고, 빠르게는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되자마자 입대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갈팡질팡 고민하던 나는 2학년 1학기까지 다녀보기로 마음먹었다. 제대 후 복학하면 제대로 놀기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스무 살 1년을 보내고 생각했다. '아직은 덜 놀았다.' 지난 1년간의 한풀이(?)가 모자랐던 터라 반년 정도 더 내 인생에 유예기간을 두고 싶었다.


유예기간이 구체적으로 정한 뒤 어디에서 지낼까를 결정해야 했다. 기숙사는 싫었다. 물론 그곳에서 좋은 추억들도 많이 건져 올렸지만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체질적으로 안 맞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 준 1년 간의 기숙사 생활이었기에, 더는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애 첫 자취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숙사에서 머물며 자취에 대한 로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하루빨리 그 로망을 실현하고 싶었다. 당시 별다른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그저 부모님 용돈에만 의지해 학교를 다녔는데, 대뜸 자취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별생각 없이 말씀드렸다. 보증금과 월세를 내주셨으면 좋겠다 라는 속내였다.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여겼던 때라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럽다.


2009년 1월 학교 근처의 원룸을 엄마와 함께 둘러보며 알아보았다. '첫 자취방'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로망으로 가득 차 추운 겨울임에도 신이 나서 알아보러 다녔다. 방을 볼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학교와의 거리, 가격이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학교 정문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거리의 주택에 딸린 방이 눈에 띄었다. 같은 시기에 지었는지 비슷한 형태의 주택들이 골목길을 따라 도열해있었는데 그 주택들 대부분이 세를 놓거나 하숙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끼익 하며 둔중한 소리를 내며 녹이 슨 철문을 열면 조그마한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성인 키 정도 되는 나무들도 군데군데 심어져 있고 시골집에서 보던 시멘트로 포장된 , 수도꼭지에 호스가 달린 수돗가도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그곳은 2층이 주인집, 1층과 반지하에 복도식으로 방들이 배치된 형태였다.


야트막한 계단을 걸어올라 1층 복도 두 번째 있는 방으로 선택했다. 보증금 200에 월세 20. 썩 나쁘지만은 않은 가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래된 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보았던 노란 장판이 날 반겨줬다. 연식은 오래됐으나 관리는  깔끔히 잘 된 편이라 마음에 들었다. 방 입구 바로 옆에 부엌이 있고, 부엌에서 몇 발 자국 걸어가면 바로 안방이 나왔다. 앉아서 쓸 수 있는 화장대, 한 짝 짜리 옷장, 그리고 꽤 큰 사이즈의 침대가 놓여있는데 집주인은 이 모든 게 다 옵션이라는 걸 강조하셨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침대. 혼자서 쓰기에 모자람 없이 넉넉했다. 기숙사에서 삐그덕거리는 2층 침대와 1년을 동침한 터라 나 혼자서 지상에 붙어 있는 침대를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짐 정리를 얼추 마치고 첫 자취방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사방은 깜깜했다. 어른이 됐다는 설렘과 기대,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 복잡한 감정이 한데 뒤엉켜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이제 정말 나 혼자구나.' 


첫 자취방에서의 시간은 빠르게만 흘러갔다. 방세와 생활비를 충당할 겸 겨울방학 동안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서빙 알바를 했다.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밤낮이 뒤바뀌며 몸의 리듬도 깨졌고 점점 피곤이 쌓여갔다. 학교를 다니면서 할 자신이 없어져 사장님께 거짓말을 쳤다. 이번 겨울방학이 끝나면 입대를 하게 된다고. 솔직하게 일이 힘들어 그만둬야겠다 말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요령도 자주 피웠고 여러모로 총체적 난국이던 아르바이트생의 갑작스러운 통보는 사장님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호프집에서 비도덕적 사퇴 후 개강을 맞이했다. 입대 날짜도 확정이 됐다. 2009년 9월 1일. 첫 자취방과의 계약기간도 자연스레 정해졌다. 2학년 1학기는 20살 때보다 더 마음을 먹고 놀며 보냈다. 첫 연애, 과 동아리 회장 활동 등을 스스로에게 핑계 삼아 맘껏 놀았다. 성적표는 처참했다. 선배들이 했던 이야기들이 귀에 맴돌았다. 군대는 1학년 마치고 바로 가는 게 최고라고. 괜히 군대 가기 싫다고 학교 더 다니면 성적을 말아먹게 된다고. 정확히 내 이야기였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자취를 시작했고, 성적도 죽사발을 만들었으니.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그때 당시엔 선배들 말을 들었어야 했나? 싶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큰 후회는 없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저질렀던 첫 자취경험은 소중한 기억이다. 처음으로 된장찌개를 끓여봤고, 나만의 공간에 대한 소중함도 알게 됐고, 공과금을 처음으로 내봤고, 락스로 화장실 청소를 해봤고, 빨래 개는 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고, 친구들을 방으로 불러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술을 마셔봤다. 모든 게 다 처음이고 서툴렀지만 벽돌집에서의 첫 혼자살이는 내가 어른으로서 첫 발을 내딛게 해 준 시간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무엇인지, 어른이라면 책임져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그때 그 벽돌집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첫 자취방의 로드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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