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산책 Oct 22. 2020

보살이 된 신랑

나는 그게 조금 서글프다

가을 햇살이 좋다. 베란다에 앉아서 볼 때는. 밭일을 할 때는 무척 따갑다.     


관리기 없이 밭농사를 짓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모른다. 흙이 덩어리가 되어 돌처럼 굳어있고, 딱딱한 흙에서 고구마 수확을 위해 맨땅에 삽질하는 신랑을 볼 때 참 안쓰럽다. 나는 바지처럼 입는 의자(?)에 앉아 그가 깊은 삽질 후에 건져 올리는 크고 작은 고구마를 주워 든다. 그것만 해도 왜 그렇게 힘든지.     


토요일 오전, 점심때가 지나고 있어 노동의 고됨뿐 아니라 목마름과 배고픔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아침은 부실하게 빵 몇 조각을 먹고 고구마를 캐보겠다고 신이 나서 나온 날이었다. 시작은 했으나 삽은 부실하고, 흙이 딱딱해 신랑이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한 줄은 마저 캐야 한다며 기어이 끝내고 고구마를 담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가는 길, 차를 타고 출발한 지 5분 정도 되었을 때 손에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올 때는 가방에 넣어왔는데 이것이 손에 있다면 가방은 컨테이너에 있다는 뜻이구나 생각했다. 신랑에게 말했다.

- 여보, 가방을 컨테이너에 두고 왔나 봐. 그 안에는 이어폰도 있고, 마스크도 있는데 말이야.

미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고 그의 얼굴을 본다.

온화한 표정으로 그가 말없이 차를 돌려 밭으로 간다.

‘웬일이지. 짜증도 안 내고. 고맙네.’

거슬러 가면 우리는 길에 10분을 버린 셈이다. 머릿속으로 그런 셈을 하며 얼굴은 태평했지만 그가 언제 짜증을 낼지 몰라 마음은 안절부절못했다. 평소의 몸 상태라면 그까짓 10분이겠지만 그날은 먼 길을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밭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그가 컨테이너로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 창문을 내리라고 손짓한다. 조수석 창문을 내리자 그가 내 어깨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이건 뭐지?

내 어깨에 걸려있는 가방. 그가 허탈하게 웃는다. 화도 내지 않고.

‘뜨앗. 이렇게 미안할 수가. 그런데 신랑이 웃고 있다. 드디어 보살이 된 건가?’

그가 짜증을 냈어도 나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평화로운데 뭔가 이상한 기분. 그가 그 같지 않았다.     


차에 탄 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 여보, 난 당신이 짜증이 나서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가 또 웃는다.

‘왜 그러지? 약간 무서운데.’

- 00아(신랑은 내 이름을 부른다. 이름으로 불러 달라 요청했다.), 너무 힘들어서 화도 안 나.

나는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짜증을 냈다면 그런 마음이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말이 이렇게 중요하다.)     


살다 보니 그의 이런 모습도 보게 된다. 그는 언제나 기운차게 힘쓰는 일에 앞장서고 힘드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대답하곤 했었는데. 그때도 힘들긴 했겠지만 내색하지 않는 그였다. 그랬던 그가 나이 드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온순해지는 것이 조금 서글프게 느껴진다.

남자에게 ‘남자다움’이 칭찬이라 생각하던 그가 이렇게 유해지다니. 신혼 때 그 강함에 상처 받고 나를 부드럽게 대해주기를 바라 왔으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던 신랑이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켰을 것이다. 모난 곳을 다듬으며 부딪쳐도 아프지 않게 사는 방법을 모색해왔을 것이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세월도 우리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서글프긴 하지만 평안하고 좋다. 

더 이상 말과 행동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지금, 재고 말고 할 것 없이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지금이 나는 참 좋다.

나는 오늘 당신을 제일 사랑한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신랑의 엄마 같은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