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산책 Apr 18. 2022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춘거지

“왜 울어?”

아직 울기 전이다. 눈만 조금 빨개졌을 뿐인데 이 사람은 그걸 잡아내 꼭 말로 표현해버리니 눈물을 쏟게 된다.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내 옆에 없는 날이 많다. 퇴근 후에 밭으로 가서 늦은 저녁에 들어오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밭에서 보낸다. 무뚝뚝한 그에게 그나마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이유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였는데 그마저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런 그가 동료들과 약속을 가기 위해, 그 전날인 내 생일에 학교에 남아 일을 끝마치고 늦게 왔을 때도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생일날까지 떠오르며 폭발한 것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종이팩으로, 칼로 자르고 뚜껑을 분리해 매장에 가져가면 팩 1개당 20원을 돌려준다. 일요일이었던 어제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밭에 가지 않았고, 물병 뚜껑을 분리했다. 그가 뚜껑을 분리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는지 오늘 아침 다른 방법으로 해보라고 한소리를 했다. 맥락만 보자면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힘드니 이렇게 해봐.’

그런데 삐딱선을 탈까말까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는 그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할 일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유치하다. 그렇게 말하고는 눈이 빨개진 것이다. 저번 주에 60개가 넘는 뚜껑을 혼자 땄을 때조차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왜 울어?”라는 말에 “뭘 울어?”

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제 멈출 수 없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뭔 난리인지.   

  

아침 설거지를 하는 등 뒤로 그가 와서 안아준다.

“물병 얘기해서 미안해.”

‘아니야, 그게 아니야. 나를 두고 자기만의 시간을 매일 갖는 것이 서운해서 그래.’

그는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 눈물에 반응하였을 테고, 왜 우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나는 콧물까지 쏟으며 울고 있지만 마음에 있는 말은 하지 못했다.     


딸과 남편을 보내고 30분 정도 홀로 출근 준비를 하며 생각한다.

‘우울증인가?’

‘학교가기 싫은 건가?’(저번 주 3일 연속 ADHD 약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시달렸다.)

‘기대 없이 혼자 살면 괜찮을까? 기댈 곳이 없으니 서운할 것도 없겠지.’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차피 지금 나는 학교에 가야하고, 함께 할 가족이 있다.     

 



출근길에 이어폰을 낀다. ‘삶은 여행이 아니라 춤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다. 인생은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충만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받고 싶다. 오늘 나는 그에게 서운해서 눈물이 났지만 어느 날에는 그 덕분에 웃게 되겠지. 언제 그랬나 싶게 그이 손을 잡고 행복에 겨운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과 같은 날이 다시 오지 않겠는가? 상황과 감정에 맞추어 나는 춤추고 있다.     


그가 함께 집에 있었더라도 집안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고 있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을 텐데. 그런 그라도 옆에 있기 바라는 내가 바보 같다고 느낀 탓에 눈물을 흘렸나 보다. 눈물을 흘리며 춤을 춘거지.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어야 하나?’

홀로 하는 고민조차 외롭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대의 생일 축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