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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Feb 13. 2024

21.진짜 재밌는, 흔하지 않은 이야기 만들기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_다비드 칼리,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


여자애가 우는 건
 그야말로 흔해 빠졌다고!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 중에서


  필자의 아이는 어렸을 때 잠들기를 힘들어했습니다. 그럴 때면 자장가처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평범한 전래 동화로 시작했다가 이래저래 밑천이 떨어지면 어릴 때 보았던 만화 주인공을 등장시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짜깁기를 해야 했습니다. ‘옛날 깊고 깊은 산중에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그래서 인어공주는 토끼를 따라…. 갑자기 마루치 아루치가 나타나….’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다 먼저 잠이 드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 같습니다.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봄볕, 2021)를 발견한 날, 까마득히 잊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는 남자 어른과 여자아이가 흔해 빠지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대화로 이루어진 그림책입니다. 첫 장면에서 기사 이야기라는 말에 아이는 발끈합니다. 너무 뻔한 데다 남녀 차별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사악한 용을 죽이러 가는 기사 이야기로 변경하지만, 왜 용은 늘 사악하냐고 반문합니다. 카우보이는 이야기 속의 영웅이 늘 남자라는 이유로, 주인공이 마녀라는 말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의 고정적인 역할이라서 ‘흔해 빠졌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분홍색을 입지 않은 커다란 말을 타는 매우 용감한 카우보이 여자애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쯤 되자 지쳐버린 어른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 집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깜짝 놀라 “왜? 뭣 때문에? 아주 멋진 이야기인데?”라고 말하죠.

     

 어른과 아이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다양하지만 늘 그렇고 그랬던 소재들의 고정관념이 등장합니다. ‘이야기 속에 숨겨진 다양한 고정관념들이 흔해 빠진 것은 맞지만 그것이 문제일까? 문제라면 어떤 점이 문제일까?’ 어른과 아이의 감성이 계속해서 부딪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아이의 계속되는 딴지를 어른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요? 아이는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있던 것일까요? 아이의 딴지 속에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를 짓기까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편견을 배제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재미없는 이야기는 지루한 설교일 뿐.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결국 이야기는 재밌어야 합니다. 재밌어야 쫑긋 귀를 세우고 듣게 됩니다. 이야기꾼도 이야기를 듣는 이도 재밌어야 흥이 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뻔한 설정인 듯하다가 뒤통수를 치는 충격적인 전개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욕을 하면서 다음 편을 기다리는 드라마도 그렇기 때문에 재미나잖아요. 이야기에 몰입하며 사람마다 생각과 추측이 난무할수록 흥미진진해집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야기는 전개되어야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사가, 공주가, 마녀가, 카우보이나 카우걸의 서사가 펼쳐져야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게 될지 기대될 때 흥미진진해지는 것 아닐까요. 편견이 담기지 않았지만, 서사가 없는, 독자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 역시 숨겨진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어른은 이야기를 만들고 아이는 계속 딴지를 겁니다. 아이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들어보지도 않고 첫 문장부터 성급할 정도로 따지고 듭니다. 첫 문장을 아이가 만들어 보게 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첫 문장 다음에 어떤 내용이 등장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땠을까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떤 부분이 흔해 빠진 내용인지, 어떻게 바꿔 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읽다 보면 부모와 자녀의 생각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 혼자 조용히 읽게 하기보다는 왁자지껄 함께 읽을 때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다비드 칼리의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 

 

 이야기는 재밌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함께 읽을 맛이 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지만요.     


 <흔해 빠진 이야기는 싫어!>의 글 작가 다비드 칼리는 1972년 스위스에서 태어나 1994년 이탈리아 잡지의 만화 작가로 데뷔하였고 2000년부터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로 2006년 볼로냐 라가치상과 스위스 판타지 상을 받았으며 2005년 <나는 기다립니다….>로 바오밥 상을 받았습니다. 대표작은 수상작들 외에 <인생은 지금>, <작가>, <어느 날, 아무 이유도 없이>, <나의 집>, <적>, <쉿!> 등 약 100권이 넘는 책을 썼습니다. 다비드 칼리는 The Bacon Brothers이라는 밴드의 창립 멤버이며 기타리스트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 작가 안나 아파리시오 카탈라는 1991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습니다. 2014년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문학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같이>, <눈물이 펑펑>, <끝까지 제대로> 등이 있습니다. 2001년 볼로냐 아동 국제도서전에서 다비드 칼리와 함께 작업한 <쉿!>으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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