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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Apr 02. 2024

정의의 실현은 면죄부가 아니다.

<주홍색 연구>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인간의 얼굴 중에서 가장 무서운 악을 드러내는 얼굴이 있다면, 그것은 클리블랜드의 이노크 J. 드리버의 얼굴이 틀림없다. 나는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피해자라고 해도 그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p.72)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서신의 한 구절입니다. 기독교 관점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짓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증오하지 말고 용서하라는 말입니다. 비기독교인이 듣기에 따라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죄’와 ‘사람’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니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은 <주홍색 연구>를 19세기말에 발표하였습니다. 근대화의 시기에 발표한 이 추리소설을 4세기에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읽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 단언하는 말에 대단히 놀라지 않았을까 상상합니다. 19세기의 아서 코난 도일이 그린 왓슨 박사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단정하는데 서슴지 않습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신대륙을 식민지화하여 세계 최강국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산업혁명의 결과로 실험과 검증이 필요한 다양한 과학이론이 등장하고 세상은 급변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머지않아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사람들이란, 유럽에 사는 백인 남성을 말합니다. 하지만 번성이 있었다면 쇠락도 있습니다. 19세기말에 이르렀을 때, 영국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식민지에서는 반란이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이 성장하며 영국이 가지고 있던 위치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성, 합리적 사고가 중요한 가치였지만 과학 기술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유사 과학의 난립과 제국주의의 문제점들이 폭발하면서 빅토리아 시대의 영화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홍빛 연구(비유적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빛깔_옮긴이) 연구입니다. (중략) 삶의 무채색 실 꾸러미 속에, 주홍빛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어 그것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p.71) 셜록 홈즈는 자신이 추리한 사건을 ‘주홍빛 연구’라고 표현합니다. ‘주홍빛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어 드러낸다’라는 말은 클리블랜드에서 이노크 J. 드리버를 제퍼슨 호프가 왜 죽였는가에 대한 숨겨진 서사를 찾아내고 그 살인의 이유를 밝힌다는 뜻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노크 J. 드리버를 묘사할 때부터 그가 죽어 마땅한 악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미국인. 하지만 인격적으로 결함이 많고 기본적인 양심마저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 줍니다. 독자가 <주홍빛 연구>에 드러난 서사를 읽고 제퍼슨 호프가 이노크 J. 드리버를 외국인 영국까지 쫓아와 살인한 행위에 공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요?


 사람이 악하거나 선한 한 단면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니까요. 주인공 홈즈 역시 관점에 따라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천재이기 때문에 편집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하는 것 역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빛 연구>는 선과 악이 분명하고 원인과 결과가 명료한 관계에서 가능한 완벽한 추리일 것 같습니다. 마치 중국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호걸처럼요. 현실 속 사람들은 그보다 좀 더 다면적이고 복잡한 관계에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얽히고설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은 명쾌했습니다. 흥미진진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오만과 편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추리소설의 재미는 독자가 생각하지 못한 원인과 과정이 밝혀지는 반전의 매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은 흥미롭지만 독자가 셜록 홈즈처럼 냉정한 시각과 왓슨 박사가 가진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극히 사사로운 관점에서 누군가가 영미권의 추리 작품 중에서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내적 갈등에 빠져야 하는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보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고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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