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아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친 후 도움반을 ‘탈출’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거주지를 옮기고, 아이를 전학시켰다. 새학교에 가자마자 나는 밤아를 도움반에 안 보낼 것이니 더 이상 말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다.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완전통합을 하게 됐다. 하지만 하필 전세계적 팬데믹 코로나19가 터지는 바람에 등교가 중단되었다. 밤아는 새학교에서 새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아쉬워했으나, 이내 집에서 하는 화상수업에 적응했다. 근데 ZOOM수업 자체가 모두에게 낯선 경험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처음 겪어보는 최악의 팬데믹. 전세계 사람들이 고통 받았지만, 학교에서 돌봄교실이 정상 운영되기까지 가장 마음 조렸던 사람은 아마도 집에 아이만 홀로 놔두고 출근하는 직장맘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집은 내가 전업맘이기 때문에 직장맘 같은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밤아의 학습 상태가 아직 많이 부족했던 상황에다 코로나 초창기 우왕좌왕한 ZOOM 수업까지 겹치니, 태블릿에서 나오는 불안정한 오디오 소리들을 청각장애인인 밤아가 듣고 따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밤아에게는 거의 출석만 할 뿐 제대로 된 수업 자체가 안 됐다고 볼 수 있다. 리코더 수업은 동영상을 찍어서 선생님께 보냈고, 생존 수영도 영상 시청으로 배웠다. 황당한 나날들이었다. 이렇게는 답답해서 못 있겠다. 무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집에서 하는 화상수업에 수업 시간도 단축해서 진행하니 점심시간 전에는 모든 학교 활동이 끝났다. 그리고 언어 치료도 줄여서 시간이 굉장히 많아졌다.
나는 지금까지 수 년 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의 아이들이 등교한 시간 외에는 매일 언어 치료 센터와 학교, 유치원, 병원 등을 분 단위로 오가며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여유 시간이 오히려 너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여유 있는 시간에 우린 무엇을 해야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시간이 많아서 고민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유익한 시간 보내는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학교 공부 따라잡기와 미술! 바로 ‘밤아 예중 합격 프로젝트’이다.
ㅁㅁ예중은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에 해당하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이렇게 4과목을 지필고사로 본 후, 정답을 선생님 앞에서 면접 형식으로 말하는 일종의 ‘면접고사’를 본다. 그리고 4시간 동안 소묘 시험, 다음 날 4시간 동안 수채화 시험, 이렇게 총 3일 간 진행된다.
아직은 3학년이기 때문에 소묘와 수채화를 위한 입시 미술 학원을 미리 다니는 것보다는, 원래 다니고 있던 공작소를 계속 다니며 창의력을 키우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반을 나오기 위해 왕십리에서 영등포로 이사는 했지만, 밤아가 공작소를 너무 좋아해서 주 1회 정도 다니는 것으로 유지를 하고 있었는데, 일단 계속 다녀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학교 공부 따라가려면 내가 직접 가르쳐야 하는데, ㅁㅁ예중 준비도 차차 해볼 생각을 하면서 차근차근 진도를 따라잡기로 했다.
엄마표 과외 – 예중 합격 프로젝트의 계획은 대강 이렇다.
ZOOM 수업을 하는 동안 3학년 1학기 진도 빨리 끝내기
3학년 1학기 수학 문제집으로 복습하면서 2학기 진도 미리 나가기
이렇게 매학기 시작 전 방학 동안 다음 학기 예습
학기 중에는 복습 + 수학 예습
계획은 간단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집’이라는 굉장히 사적인 공간에서 엄마와 자녀가 매일 규칙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근데 청각장애를 가진 밤아에게 집에서 엄마와 공부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엄마표 과외를 하면 과외나 학원에 비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학원은 왕복 이동하는 시간도 소요되고, 복습과 과제를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그저 ‘학원에 다녀왔다’는 마음의 위로가 전부이며, 이 위로에 취해 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표 과외는 서로 간 규칙만 잘 지킨다면, 낮에 조금 놀 시간도 있고, 밤에 집중적으로 개념 정리하고 문제 풀어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동 시간은 아예 없다. 굉장한 시간 절약이고, 당연히 돈도 절약된다.
“밤아야. 예술중학교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 우리집에서 하는 것처럼 물감이랑 색연필만 쓰는 게 아니라, 디지털 드로잉, 판화, 디자인도 하고, 유화도 그리고 아크릴화도 그린대. 그리고 동양화도 배우고, 만화도 그려. 멋지지 않니?”
나는 우선 밤아에게 예술중학교라는 곳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유튜브에서 학교 소개 영상을 찾아 밤아에게 보여줬다. 밤아가 굉장히 흥미를 가지는 듯 보였고,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밤아야. 예술중학교는 정말정말 그림 잘 그리는 형, 누나들이 입학하는데, 그림을 다 잘 그리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공부를 잘 해야 합격할 수 있대. 엄마가 도와줄게. 밤아는 지금 하는 것처럼 공부 계속 하면 합격할 수 있을 거야. 한 번 해보자. 우리 진짜 할 수 있어. 남들보다 훨씬 늦게 말 배우고 여기까지 왔는데, 예술중학교 입학시험 공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하나도 안 어려워. 같이 해볼 수 있을까?”
밤아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무조건 된다, 쉽다’라는 식으로 유도를 하긴 했지만, ㅁㅁ예중의 홍보 영상 자체만으로도 아이의 욕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진심으로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엄마표 과외는 매일 저녁 8시부터 수학과 국어(독해 중심)를 진행하고, 과학과 사회는 지루하지 않게 격일로 공부했다. 모든 과목 공통적으로 EBS의 만점왕 교재를 토대로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를 푸는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진행했다. 수학은 어려워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기탄수학’을 구입해서 반복학습 시켰다. 공부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참 다른 분야인데, 누군가를 처음 가르쳐본 입장으로서 내가 공부해온 것에 비해 가르치는 소질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개념 설명 한 번에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뿌듯함을 살짝 살짝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