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님의 스스로 학습법
전지 학습법
내가 공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날 공부한 것 또는 공부한 단원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그냥 편하게 ‘아웃풋’이라고도 부른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아웃풋’이라는 확인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공부한 내용에 대한 정리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저 책상에 오래 앉아 있었다는 자기 만족감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통해 공부한 내용의 확인 작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확인 작업을 했는데, 제대로 공부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시험이 끝난 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적표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면? 당연히 후회만 남는다. 그래서 가정에서의 학습 확인 작업을 수차례 마친 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임해야 한다. 후회의 순간이 오기 전에 ‘후회할 상황을 미리 없애는 작업’으로 지금 소개할 전지 학습법과, 다음 장에 소개할 글쓰기 학습법을 추천한다.
‘라떼’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전지’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 시절이었던 그때만 하더라도 요즘 같은 전자 칠판이나 학급마다 필수로 구비되어 있는 빔프로젝터가 없었다. OHP 실물 화상기를 학년마다 구비하여 이 반, 저 반 빌리러 다니면서 사용하던 모습, 아예 과목 별로 ‘전지’라는 큰 종이에 교과 내용을 미리 필기한 후 떼었다 붙였다 하셨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생각나시는지...... 전지가 커서 글자를 일렬로 보기 좋게 쓰기 힘들기 때문에 여러 번 접고 칸을 만들어서 교과 내용을 써 오셨던 선생님, 아마도 라떼를 살았던 우리 엄마들은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시절 아날로그 감성 넘쳤던 풋풋한 교실 풍경을......
이 전지를 2025년 스마트한 세상에 재현시켜 보았다. 문구점에서 전지를 몇 장 구입한 후, 빈 전지를 그냥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공부한 내용들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전지에 적어주되, 중요한 키워드를 빈 칸으로 두거나, 또는 내용 없이 키워드만 적는다(내용은 아이가 직접 설명할 수 있도록). 한 마디로 말해서 전지는 아이가 공부한 내용을 설명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는 셈이다. 원래 가장 효과적인 공부는 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전지 학습법’이라는 아날로그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사회와 과학 과목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위의 사진처럼 표를 그리고 빈칸을 채우며 설명하게 하는 것도 좋고, 그래프나 간단한 지도만 전지에 그려준 후 이에 대해 아이가 직접 설명하도록 하는 방법도 아주 좋다. 이렇게 빈 칸만, 또는 그래프와 지도만 그려진 전지를 집 안 벽이나 창문에 붙이고, 아이가 펜을 들고 빈 칸을 채워가며 설명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바로 전지 학습법이다. 국어도 마찬가지로 시, 시조가 나오는 부분은 전지 학습법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시 또는 시조를 전지에 옮겨 적고, 아이가 직접 ‘선생님처럼’ 독해를 하면 된다. 수학의 경우는 잘 풀리지 않는 오답을 다시 체크할 때 전지 학습법을 이용할 수 있다. 거듭 틀리는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문제를 전지에 크게 적어놓고 멀찌감치 서서 보면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고, 놓치고 지나갔던 힌트도 발견할 수 있다. 오답노트를 전지에 쓴다는 개념으로 시작했지만 꽤 좋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전지 학습법이다.
“엄마, 5분만 들어주세요. 제가 과학 시험 공부한 내용 설명해 볼게요.”
아이도 스스로 설명해보는 학습법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몇 시간 갖더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나는 아예 빈 전지 한 장을 벽에 붙였다.
“주영양소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있는데, 이 셋은 입에서 기계적인 소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각각 다른 기관에서 소화가 돼요......콩팥은 겉질과 속질로 나뉘어져 있는데, 겉질에는 모세혈관이 뭉쳐 있는 사구체와 보먼주머니, 그리고 세뇨관의 앞부분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먼저 가이드라인 겸 그림이나 그래프를 그려주거나, 빈칸을 만들어 둔 표 등을 그려놓은 전지와는 확연히 다른 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소 정리도 안 되어 있고, 글씨와 그림도 엉망, 생각의 흐름대로 설명해 나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전지이다. 하지만 이렇게 온통 하얀 전지를 본인의 생각과 글씨로 채워 나가고, 입으로 설명하면서 아이 본인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는다.
“사구체와 보먼주머니, 세뇨관을 네프론이라고 하는데, 네프론은 오줌을 만드는 기본 단위예요. 여기에서 여과와 재흡수, 분비가 일어나거든요? 어떤 물질이 여과가 되냐 하면......음..포도당인가? 아, 이 부분 이따가 다시 설명할게요.”
전지 학습법은 학원이나 과외를 통한 교육 현장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학습법이다. 오직 가정에서만 가능한 살아있는 학습이다. 하지만 엄마의 관리와 감독이 없으면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가 없다. 각별한 지도와 애정 어린 관심이 필요하다. 난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학창 시절에 놀았던 기억만 있는 엄마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이와 같은 호흡으로 함께 공부하면, 수학도 1단원부터 함께 공부하고, 과학이나 사회도 1단원부터 함께 진도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연륜과 내공만 고려하더라도 아이보다 이해와 습득의 속도가 빠르다. 단지, 아이의 젊은(?) 두뇌에 비해 엄마의 두뇌는 상대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금방 까먹을 수 있다는 함정이 있다. 하지만 엄마는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암기가 필요 없다는 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저 같은 시간 같은 호흡으로 공부하며 더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아이를 케어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부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