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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캔디D Jun 17. 2022

울었다.

20220302

2022년이 되고 처음 엉엉 운 것은 스위스에서였다. 방이 트윈베드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프랑스에 다녀왔는데, 시내버스를 30 정도 타고  대형마트였다. 사소한 나한테 재밌는 일을 아무 때나 전화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울었다. (물론, 전화할 사람은 있다. 지난 수많은 시간 동안 애정 하는 친구들은 나의 수많은 어이없는 전화를 받아주고  받아주고 있다.)


오늘은 <충분히 슬퍼할 것>이라는 책을 보다가 울었다.


력사가 없는 삶은 부자연스럽다. 사실,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다. 하지만, 력사는 죽었고, 그렇다면 력사 없는 삶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난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 믿고 싶다. 이게 자연스러운 게 맞는 거다. 나는 조금(많이) 슬퍼하다가 점점 덜 슬퍼할 것이고, 종내에는 마음 깊숙이 력사를 묻을 것이다.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어느 정도 힘들어하다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게 필요하니까. 그래야 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살 수가 없다.


이렇게나 글을 많이 쓰고, 력사를 추억하지만, 소리 내서 력사가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은 몇 번 없다. 력사랑 워낙에 우린 롱디여서 전화하면서 보고 싶다는 말 백 번 천 번 했는데, 소리 내서 력사가 보고 싶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약하나 꽂아두고 내버려 뒀는데도 게발선인장은 건강해졌는데,

력사는 너무 지극정성이었나? 아니, 사실은 지극정성도 아니었다. 난 력사가 자기 스스로를 점검하고 챙기는 것을 따라가기도 바빴다. 같이 읽어달라는 책도 다 못 봤고, 같이 영상을 보자는 것도 겨우겨우 봤다. 헛되어 보이는 것에 매달리는 력사가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을 거라 믿었다. 보험이 있어서 겨우 맞을 수 있었던 면역항암제가 기적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저렇게까지 비싼 약이니까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다. 약은 뭔가 달랐겠지..... 그냥 력사 몸은 그런 약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던 거다.


력사가 작아지고 또 작아지는 그 시간 내내, 너무 무서웠다. 모든 게 무서웠다. 력사가 작아지는 것도 무섭고, 력사 어머님께 이 상황을 말해야 하는 것도, 그 반응을 보아야 하는 것도 무서웠다. 지팡이를 쓰지 않으면 걷지 못하는 것도, 말이 어눌해져 가는 것을 보는 것도 사실은 다다다다다다다 무서웠다. 초연한 척 받아들이는 척했지만, 무서웠다. 다만 하루하루 내가 응대해야 하는 상황과 사건들이 있어서, 그걸 외면할 수 있었다. 력사가 죽고도 그랬다. 화장장을 예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사망 소리를 듣자마자 화장장을 예약하고, 장례식장을 장례지도사를 예약했다.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고, 이사한 집을 꾸미고, 일을 하고 일을 하고, 출장을 가고, 놀고 일을 하고 놀고 또 놀았다.


2022년이 왔다. 출장을 다녀오고, 자가격리를 했다. 여고 추리반 두 시즌을 다 보고, 꼬꼬무 세 시즌을 다 보고, 또 뭘 봤더라. 매일매일 배달음식에 파묻혀 살았다.


어제는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혼자 한밤중에 청소를 시작했다. 조금 청소를 하고 아침에 잠들어서, 쪼금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고 약을 먹었다. 아. 한국 와서는 약을 거의 안 먹었구나. 약을 먹고, 청소를 했다. 청소 선생님을 부르지 않고 이 정도 쓰레기를 걷어내다니 뿌듯했다.


그 뿌듯함을 끌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사달이 났다.


하지만, 충분히 슬퍼하는 것은 필요하다. 더 날것의 감정을 보이는 것도 필요하기도 하다. 보이지 못하는/보이기 싫어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보이고 싶어 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제 알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울었다고 글을 쓸 때, 그때의 난 소리를 내어 엉엉 운다.


망할 아이폰 사진 녀석은 몇 년 전의 오늘을 허구한 날 나한테 보여준다. 오늘은 19년 3월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땐 몰랐는데 력사 얼굴이 좀 부어 보인다. 좀 더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한다.


후회한다. 많은 것을 사실은 후회한다. 후회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다. 내 잘못이 아니란 것도 안다. 하지만, 한 번씩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후회는 외면하기가 참 힘들다.


력사가 보고 싶다. 추억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가끔은 지난 십수 년을 그냥 머릿속에서 통째로 들어내고 싶다.


오후 내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걍 또 운다. 하지만, 이 글을 올리고 나면, 일을 좀 하고, 눈물을 닦고, 열나 웃긴 티비 프로그램을 또 볼 거다.


쪽팔리지만 괜찮고, 이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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