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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Aug 12. 2020

'고맙다'라는 말

내가 방황한 이유


얼마 전 면접을 본 가정에서 전화가 왔다.


"결정했어요? 돈은 원하는 대로 줄게요."



아직... 못했다. 안 그래도 결정 장애가 심한데... 옷 하나 사러 가서 몇 시간 동안 고민하는 나인데...........

내게 남은 호주에서의 6개월을 좌지우지할 큰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다.

너무 스트레스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이 미워졌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지.

힘들 때는 도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막상 도피할 기회가 생기니 괜히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


게다가 현재 호스트 가족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건지, 갑자기 너무 잘해준다.

미안하게스리....


절대 나눠먹을 줄 모르는 데미안이 음식을 나눠줬다. 워메!!!

이런 감동이 또 없다...


아이들도 그동안 내게 마음을 많이 연 듯 보였다.

욕하고 울고 소리 지르고 때리는 줄만 알았는데, 서서히 애정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두 아이가 내게 두 팔을 벌리고 다가와 안아주질 않나,

하루는 목욕을 시키는데 막내 그레이스가 갑자기 내 볼에 뽀뽀를 해주며 사랑 가득한 눈빛으로

"I love you"라고 하며, 와락 안겼다.


하... Fuck you가 아니라 Love you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더니....

3개월이 지나고 나니, 모든 상황이 마법처럼 변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매일매일 지옥같이 느껴지던 이 생활에 내가 적응을 했다는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수모를 겪을까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던 나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아이들과 놀 생각에 다가오는 내일이 기다려질 때도 있었다.


아이들의 자라온 환경, 과거, 성향 등을 파악하니,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갔다. 어떻게 놀아주면 좋아하는지, 또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어떤 방법으로 설명을 하는지 등을 연구하며 아이들을 상대로 혼자만의 실험을 해나갔고,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아이들로 인해 내 가슴에 사랑이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콸콸 넘쳐흘렸다.




어느 정도 영어가 익숙해질 무렵, 나는 아이들에게 곰 세 마리 노래를 가르쳤다.

어릴수록 습득력이 빠르다더니, 몇 번 불러줬는데 애들이 너무 잘 따라 했다.

누가 보면 한국 호주 혼혈아라고 착각할 만큼 ^_^; (졸지에 어린 엄마로 오해받음)


아이들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즉석 공연을 했다.


한국인의 자부심을 느꼈다. 가족들도 아이들이 한국동요를 즐겨 부르니 자동으로 배우게 되었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가 내게 처음으로 '고맙다'라고 했다.


그간 마음에 쌓여있던 앙금이 사르르 녹으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그토록 바랬던 건,

"수고한다. 고맙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였나 보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라,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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