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을 찾습니다.
그런 성향의 사람
회사 내 기획담당으로 지낸지 1년이 되어가던 어느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랑 잘 맞는지 궁금했다.
직업성향테스트를 해보니 '당신은 어쩌면... 제작자 또는 편집자'였다. 결국 기획하는 성향이구나?
사실 지금 하는 일에도 열정적인데다 전혀 불편함이 없다. 일과 한 몸이 된 것처럼.
항상 뭔가를 떠올리고 조합해서 의미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걸 좋아했다.
어렸을 때 미술시간으로치면 친구들 도화지가 이미 온갖 색으로 칠해지는 와중에
'뭘 그릴까?, 뭘 표현할까?'를 한참 고민하고 앉아있었다.
그림실력이 부족해서 미적으론 엉성하지만 대부분 좋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은듯 하다.
삶을 돌아보니 그런 성향은 무언가를 준비해서 정리하고 표현하는 모든 분야에 투영되었다.
발표, 글, 영상, 사진, 전공, 직업 모두 지금까지 즐기면서도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는 영역이다.
카메라
한편 나를 침잠하게 하는 그림자가 있다면, 카메라같은 인간의 모습.
혹은 타고난 PD같은 성향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1. 카메라는 영화 속 배우를 담는다. 아름다운 한 순간을 포착한다.
뭔가를 담아내고 있지 않는 상태의, 작동하지 않는 '카메라 그 자체'는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다.
2. PD는 어떤 내용과 메시지를 어떻게 표현할지 이상과 현실 사이를 조율하며 고민한다.
작품은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PD라는 사람 자체'는 딱히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인형같은 사람도 있고, 구름같은 사람, 따듯한 이불같은 사람, 늑대같은 사람, 안개같은 사람, 자동차 타이어같은 사람, 크레파스같은 사람, 향수같은 사람 등
그 자체의 매력을 가진 분들이 살고 있다. 그렇게 각자의 스토리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
나는 카메라같은 사람이라서. 아름다운 삶의 현장과 스토리를 가슴 속 필름에 기록할 수 있지만.
내 이야기란 도통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니까. 셔터음은 계속 울리는데 그 카메라는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카메라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떤 것을 담았느냐, 무엇을 꺼낼 것이냐를 기대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다음 촬영지로 떠나고, 그 다음... 그 다음... 내 눈에 비친 세상을 저장하고 보여주는 거지.
필름을 비우고 나면 다시 빈 통이 된채 전원을 끄고.
온 세상 모든 것을 부러워하는 카메라의 서러운 동화인가.
주인공을 찾습니다
흔히 이런 말을 보거나 들을 수 있다.
'당신은 삶의 주인공입니다!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 나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가는거에요.'
약간 이상하다. 이 말대로라면 내가 주인공이어야 하는데. 나는 배우를 둘러싼 스태프, 감독같은 사람인걸?
주인공 겸 감독을 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그래서 최근에는 몰입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고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그것만 생각하기로.
내 이야기를 한 글자씩 써 보기로. 용기내서 펜을 꺼내보기로.
카메라에 담기 전, 마음 속에 담아보기로.
비록 그러다 또 가슴이 텅 빈 것처럼 서러울 때면, 그냥 확 울어버리고
이것 또한 나의 이야기임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랑으로 채워보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