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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l 23. 2024

지나버린 것은...

지나버린 것은 아무것도 날 슬프게 할 수 없다 : 이은희

지나버린 것은 아무것도 날 슬프게 할 수 없다

                                                      이은희


야금야금 생각을 옥죄고

스멀스멀 자유를 탐하는

그들, 태초 뱀의 후손에게 순순히 물러서는 일은 없다


어떤 날은 커다란 철옹성 같던 내면의 자아가

어떤 날은 존재감 없이 허물어질 모래성 같더라도

종국엔 그 어느 접점에 타협하는

그러나 그래도

지나버린 것은 아무것도 날 아프게 할 수 없다


스멀스멀 두피에 딱 붙어 야금야금 내 머릿속

진득한 피 맛을 본 그들일지언정

현재를 살지 않는 지나버린 그 어느 것도

내 자아를 쪼개어 가질 수 없다


깊은 곳, 작은 흠집 한 점 낼 수 없다.


로!


Nothing Past Can Never Make Me Sad

                          Lee, Eun-hee


Squeezing thought bit by bit,

Coveting abandon creepily,

They, the scions of the serpent in the beginning,

Never easily hold back.  


The inner self that, one day, seemed like an impregnable fortress

Breaks down the other day like a sand castle as if it had never existed.

Ultimately, however, they compromise with each other at any point of contact.

Nevertheless,

Nothing past can never make me hurt.     


Sticking to my scalp creepily and

Enjoying the taste of thick blood in my head bit by bit,

Nothing past, not living in the present,

Can never take a slice of my self,


Can never make any little flaw somewhere deep inside.


N

E

V

E

R!


(Translated by Choi)


지나간 것은 아무것도 우릴 아프게 할 수 없지요. 기억하지 않는 한, 떠올리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래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라’는 말이 나온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아픔이나 슬픔, 절망과 한탄 같은 것은 저 과거의 여울에 던져두어야 합니다. 누군가 좋았던 것만 기억하라 했던 말도 그리 마음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삶이 고단하다는 반증일 뿐이니 말입니다. 잘못하다간 과거에 산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버리지 말아야 할 옛 것이 있습니다. 시는 과거의 것이 좋습니다. 소중한 시심과 열망으로 고통 속에서 휘갈겨 썼던 그 솔직하고 거친 시들이 좋습니다. 감각과 기지와 기대 속에 장식된 것 말고, 날 것 그대로의 고백이 좋습니다. 그것은 결코 아프게도, 슬프게도 하지 않고,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그 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인 제목, 불완전한 조어(造語), 기대 섞인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마음속 깊은 곳에 결코 흠집이 남지는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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