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전 사무실에 걸었던 세계지도가 지금은 내 방 벽에 붙어있다. 검은색 판에 갈색의 도톰한 대륙들이 새겨져 있다. 덕분에 바다는 모두 검은색이고 육지는 갈색이다. 그 바다 가운데 대륙과 같은 색의 둥근 시계가 걸렸는데 숫자는 진한 갈색, 바늘은 검은색이다. 세상이 크게 보면 두 가지, 자세히 보면 세 가지 색이다. 한반도가 실제의 크기보다 크게 붙어있지만 그럭저럭 지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가만히 내가 밟았던 땅들에 점을 찍어본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잠시 스쳐갔던 그곳들, 그 점 속에 나의 시간, 나의 이야기들이 희미하게 적힌다. 마지막 걸었던 거리를 찾아본다. 지도로 보니 낯설기 짝이 없다. 그렇게 공간은 내가 그곳에 있던 때와 나와 멀어져 바라볼 때가 사뭇 다르다. 마치 실제와 상상이 다른 것처럼. 그 땅 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 풍경들, 사연들이 마치 낡은 필름 위로 내리는 빗줄기 같다. 그래서 기억은 늘 바뀌고, 생략되고, 왜곡되는 모양이다.
하릴없이 흐려진 필름을 되돌려본다. 이민 간 친구 집에서의 하룻밤, 새벽 산책에 나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간신히 되돌아온 작은 모텔, 자갈이 많았던 어느 해변 밤거리의 기념품 상점들, 고흐의 그림을 떠오르게 했던 작은 노란 집, ‘눈 내리는 마을’ 그림을 보고 나와 잠시 잠들었던 정원의 벤치,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다리 위에서 노래 부르던 이국의 여인, 시계와 첨탑, 강가의 시멘트 층계에 걸터앉아 건너편 희미한 안갯속을 방황하던 시선, 마치 옛 시대가 되살아난 듯 수로 양 옆의 낯 선 목조 건물들... 수많은 장면들이 순서 없이 되살아난다. 그리고 그것은 꿈을 깨고 난 뒤의 잔영처럼 내 기억의 한 칸을 채우고 있다.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어떤 모습으로 마음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하지만 그리운 것은 공간이 아니었다. 그리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한 번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 소중한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그것들이 남겨놓은 짙은 그리움, 그 모든 것이 한데 엉켜 마음이 아리다. 왜 그리 소홀했을까.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던 것은 아닐까. 거리가 아니라 그곳에서 마주친 혹은 함께 한 그들이 더욱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맑은 호수의 물을 손으로 퍼 담아 마시던 그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과는 왜 멀어진 것일까.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애썼던 사람들과는 왜 문자조차 주고받지 못하는 걸까.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 탓이다. 마음을 주지 못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했던 나의 옹졸함과 비겁함 때문이었다. 그리움은 후회가 되고, 후회는 이제 망각의 은총만을 기다린다.
세월은 슬픔, 허전함, 그리움을 실어 나른다. 헛헛해진 마음으로 과거의 공간들이 남긴 사진첩을 넘긴다. 웃고 있는 얼굴들, 배경을 이룬 바다와 강과 호수와 산, 그리고 역사의 잔재들, 그 앞에서 나도 때론 웃고 때론 시무룩하다. 무릇 모든 그림에는 사람이 있다. 풍경을 그린 그림에도 초막 안에, 숲 속에, 시내 저 편에 감춰진 얼굴들이 있다. 그래서 사진 안에 도드라진 얼굴 뒤의 마음을 보지 못했던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던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도 하늘을 만질 수 없듯이 기억의 조각들을 제 아무리 끌어 모아도 옛사람의 마음을 다시 돌릴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남은 일은 그저 잊을 뿐이다.
세계지도를 살피던 시선 끝에 작은 도자기 하나가 놓여있다. 손을 뻗어 가만히 들어 올린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감촉, 냄새, 음성, 표정 등이 떠오른다. 잊힌 것은 잊힌 대로 둬야지. 그리워하면 할수록 지워야 할 기억이 늘어날 뿐이니까.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스치는 모든 것들, 그 모든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지. 그리워는 해도 후회는 남기지 말아야지. 망각에도 용량이 있다. 자꾸 잊기만 해서는 추수 끝난 논에 선 허황한 허수아비와 무엇이 다를 건가. 낡은 사진첩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우울해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