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드리엔 리치 : 오늘 밤 어떤 詩도 소용없어요
2012년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 1929~2012)가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영국의 가디언(Guardian) 지는 조사(弔辭)를 통해 그녀를 작가이자 운동가로 명명하였다. 리치는 페미니즘과 성, 유대인의 정체성 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인권-반전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특히 1970년대에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한 후, 여성 중심의 성적 경험과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을 담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였다. 한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여성이 진실을 말할 때,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더 큰 진실의 가능성을 창조한다.”
에이드리엔 리치는 1929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1951년 명문 래드클리프 여자대학을 졸업하였다. 그해 예일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그녀의 첫 시집 ‘세상의 변화’(A Change of World)는 시인 W. H, 오든(W. H. Auden)에 의해 ‘예일 젊은 시인 시리즈’의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1950년 리치는 하버드 출신 경제학자 알프레드 콘래드(Alfred Conrad)와 결혼한다. 그리고 2년 뒤 그녀는 두 번째 시집 ‘다이아몬드 연마공’(Diamond Cutters)을 출간한다. 이 시집에 대해 랜달 자렐(Randall Jarrel, 시인)은 이렇게 언급하였다. “시인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처럼 보였다. “
서른의 나이에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된 리치는 점차 자신의 삶과 시 모두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1960년대를 거치면서 ‘며느리의 스냅사진’(Snapshots of a Daughter-in-Law, 1963), ‘전단지’(Leaflets, 1969) 등의 정치성 짙은 시집을 발표하는데 그 시들의 내용은 점점 대립적이 되어가면서 사회 내의 여성의 역할, 인종주의, 베트남 전쟁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었고, 문체도 자유시의 형식으로 전환되었다. 1970년 그녀는 남편 콘래드의 곁을 떠났고,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리치는 동성연인이었던 작가 미셸 클리프(Michelle Cliff)와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였다.
1973년, 페미니즘과 인권운동, 베트남 전쟁과 개인적인 고뇌의 와중에서 리치는 ‘난파선으로 잠수하기’(Diving into the Wreck)을 출간하며 이듬해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하게 된다. 이러한 그녀의 시작활동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1978년, 여성의 경험을 정의하고 소통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의 탐구를 주제로 한 ‘공통언어를 향한 꿈’(The Dream of a Common Language), 1991년, 걸프 전쟁 전후의 미국 사회상을 묘사하고, 국가적 위기 속에서 시인으로서의 고뇌를 담은 ‘어려운 세계의 지도’(An Atlas of the Difficult World, 1988-1991), 2004년에는 21세기 초반, 특히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폭력과 전쟁, 사회적 위기가 개인의 삶과 교육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폐허 속의 학교’(School Among the Ruins, 2000-2004), 그리고 2011년, 시집, ‘오늘 밤 어떤 시도 소용없어요’(Tonight No Poetry Will Serve, 2007-2010)를 출간한다. 이 마지막 시집은 리치가 세상을 떠나기 약 1년 전에 출판되었으며, 그녀가 평생 탐구해 온 언어의 힘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시의 제목인 "오늘 밤 어떤 시도 소용없어요"는 예술이 현실의 참혹함이나 거대한 정치적 폭력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는 절망적인 인식을 담고 있다.
시집 외에도 리치는 ‘그곳에서 발견되는 것’(What is Found There, 1993), ‘가능의 예술: 에세이와 대화들’(Arts of the Possible: Essays and Conversations, 2001) 등 논픽션 산문집을 여러 권 발표하기도 하였다.
리치는 '시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임을 주장하며,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문학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다. 그녀는 사후에도 성, 정체성, 사회 정의에 관한 현대의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7년,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에 항의하며 미국 예술계 최고 영예인 '국가 예술 훈장'(National Medal of Arts) 수상을 거부하면서 리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술이 자신을 인질로 삼는 권력의 만찬 자리를 꾸미는 것이라면 예술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오늘 밤 어떤 시도 소용없어요
에이드리엔 리치
맨발로 걷는 당신을 보았어요
초승달의 눈꺼풀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나중엔 흩어지고
잠에 빠져, 짙은 머리칼 속에 벌거벗은 채
잠들었으나 잊지는 않았어요
어딘가에서
잠들지 않은 깨어있는 이들을
오늘 밤 나는 생각하죠
어떤 시도
소용없으리라고
고문의 문법:
동사는 비행기를 조종하고
부사는 행동을 수식한다
동사는 명사를 억지로 먹이고
주어를 물속에 잠기게 한다
명사는 숨이 막혀가고
동사는 역겹게도 그 짓을 계속한다
이제 문장을 도해(圖解)하라
시는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다. 시의 화자(話者)는 한밤중 초승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맨발로 걷는 누군가를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연에서 잠든 그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잠든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아직 잠들지 못한 누군가를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와 그는 왜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겪고 있을까. 사랑의 열병일까? 아픈 기억의 상처일까? 이 부분에서 시인은 마침내 시의 주제를 드러낸다. 그 어떤 시도 오늘 밤에는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그 어떤 아름다운 언어로도 어딘가에서 깊은 고뇌에 빠진 그를 결코 위로할 수 없으리라고.
그리고 다음 연에 이르러 시의 분위기는 완전히 전환된다. 결국 시의 키워드는 ‘고문의 문법’(syntax of rendition)이다. ‘rendition’이라는 단어는 미국의 정보기관이 자행하는 비밀 이송 및 고문 시스템인 '특별 인도(Extraordinary Rendition)'를 지칭한다. 이는 테러 용의자를 법적 절차 없이 제3 국으로 납치하여 고문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편 언어의 구조를 뜻하는 ‘Syntax’는 권력과 지배 체제의 규칙과 사회-정치적 구조를 상징한다. 따라서 폭력, 납치, 고문이 정당화되고 구조화되어 일상적인 문장(언어)처럼 체계화된 상황을 의미한다. 즉, 야만적인 폭력을 언어적·논리적 구조 속에 감추고 정당화하는 '지배의 언어', ‘고문의 문법’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 연의 두 줄에서 시인은 ‘동사’와 ‘부사’라는 두 개의 품사를 의인화하여 ‘권력’의 두 가지 측면을 드러낸다. ‘동사’는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고 ‘부사’는 그것의 물리적 표출을 가리킨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자면 시인은 ‘동사’라는 어휘에 남성의 지배라는 개념을 부여하고, 그것을 수식하는 ‘부사’는 실제의 상황을 묘사하게 된다.
시인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힘없는 약자들을 괴롭히는 지를 언어의 문법으로 보여준다. 권력자인 ‘동사’는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명사’와 ‘주어’들에게 자신의 질서를 강요한다.(강제로 먹이다) 그 과정에서 나약한 자들은 익사하고 질식한다. 그럼에도 권력과 그것을 지탱하는 모순된 제도는 여전히 그 역겨운 억압의 공식을 이어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인은 그렇게 만들어진 현대의 ‘문장’을 ‘도해하라’고 외친다. 다시 말해 현대의 폭력적인 구조를 분석하고 해체해 보라는, 차갑고 비판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Tonight No Poetry Will Serve
Adrienne Rich(1929~2012)
Saw you walking barefoot
taking a long look
at the new moon's eyelid
l
ater spread
sleep-fallen, naked in your dark hair
asleep but not oblivious
of the unslept unsleeping
elsewhere
Tonight I think
no poetry
will serve
Syntax of rendition:
verb pilots the plane
adverb modifies action
verb force-feeds noun
submerges the subject
noun is choking
verb disgraced goes on doing
now diagram the sent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