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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나 Jun 16. 2023

어느덧 삼십육 년이 흘렀습니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대단하다.

요즘 들어 가끔씩 나의 나이를 인식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대단하다, 어느덧 36년을 살아버렸구나.’


삼십 대.

서른여섯.

서른보다는 마흔에 더 가까운 나이, 서른여섯.

서른이 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버렸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웬만한 모임에 나가도 꽤 나이가 있는 축에 속한다. 최근에는 동네 소모임에 가입해 보려고, 소모임을 매칭시켜 주는 앱을 깔고 검색을 하는데, ‘2,30대 모임’이라는 곳에서 내 나이는 받아주지 않는 곳이 많았다. 서른여섯은 삼십 대도 아니란 말인가!


서른 여섯. 서른 여섯. 서른 여섯. 서른 여섯. 서른 여섯.


아무리 여러 번 되뇌어봐도, 이번 나이만큼은 왠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내가 서른여섯일 리가 없어.


20대 중반 언저리쯔음부터 늘 했던 생각이지만, 사람의 정신과 신체의 성숙 속도는 같지 않다. 성숙이라기보다는 숙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지만. 신체는 하루하루, 일 년, 이 년, 쉬지도 않고 늙어가는데, 정신은 하루하루, 일 년 이년, 매일매일이 지난다고 해서 더 성숙해지고나 더 깊어지지 않는다. 정신은 숙성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고, 팔자주름은 깊숙하게 파여만 가니, 거울 속 내 모습이 꽤나 어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지만, 이 나이쯤 되면 꿈꾸던 어떤 미래라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20대 중후반을 사는 화려한 삶의 나를 꿈꿨었고, 20대 중후반이 되어서는 화려한 삶에 대해 어느 정도 포기한 부분이 생겨났고, 막연하게 30대의 삶을 생각했다. 조금 더 여유로워지겠지? 정도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맞다. 나는 그때 보다 여유로워졌다. 금전적으로 20대 때보다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깨끗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과연?) 있다. 마음도 한결 더 여유로워졌다. 20대는 뭔가에 계속 쫓기는 기분이었다면, 30대는 조금 더 여유롭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몸도 여유로워졌다. 너무 여유로워진 덕분에, 옷의 품은 여유롭지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몸도 마음도 여유롭게 되어버린, 서른여섯의 독거 젊은이.


몸도 마음도 여유로운 삼십 대의 라이프를 누리고 있지만, 문득문득 달이 밝은 밤이면 마음 한편이 어딘지 공허하다. 나는 과연 잘 살아오고 있었던 걸까?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 뭐 이런 류의 나름 철학적인 질문들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이 답답한 마음을, 막막한 마음을 어디엔가 풀어내다 보면 어떤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직 애송이지만, 더 이상 애송이 취급을 받을 수 없는 나이. 아직 입을 활짝 벌리고 배를 부여잡고 으하하학 하고 웃고 싶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왠지 머쓱해지는 나이. 옷을 입을 때, 이런 옷 아직 입어도 괜찮을까 고민하게 되는 나이. 친구들의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고,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보며 결혼 이야기를 슬쩍 꺼내는 나이. 살아갈 날이 한참이지만 살아온 날도 한참인 것만 같은 나이.


이 이야기는 그러한 나이 한가운데 서 있는 서른여섯의 나에 대한 이야기이자, 내가 보내온 삼십육 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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