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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나 Feb 14. 2024

일 년 동안 불을 켜고 잤다(2)

어느 패잔병의 이야기


혼자 사는 것은 좋다.


넷플릭스를 세상 편한 자세로 보다가 방귀를 뿡뿡 뀌어도 눈총을 주는 사람이 없다.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는 배달음식은 먹다가 남기면 된다. 먹다가 남긴 배달음식은 냉장고에 넣고 나중에 먹으면 그만이다. 밥 먹자마자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은 먹을 그릇이 없을 때 한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자는 생활. 아, 그야말로 천국이다. 혼자 사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특별한 권리다.


하지만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


혼자 사는 사람은 모든 설거지를 본인이 해야 한다. 배가 고프면 본인이 밥상을 차려야 하며, 꿉꿉한 침대에서 자지 않으려면 꾸준한 이불 빨래는 필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빨래도 돌려야 하고, 뒤돌아서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줍는 일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그 놈’과도 나 혼자 맞서야 한다. 오로지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인 것이다. 




나의 세번째 원룸의 베란다에서 그녀석의 시체를 발견한 날도,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그것’을 집어 (윽) 변기통에 넣고 (으윽) 물을 내리는 작업을 혼자 견뎌내야만 했다. 오, 제발. 글로 표현하니 너무도 간단한 그 동작들을 수행하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온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아직도 선명한 그 놈의 느낌. 으아아아아.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더 심한 것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남의 집 구석에서 장렬히 전사한 ‘그 놈’은 (감히) 새끼를 깠었나보다. 몇 주가 지나자, 콩알만한 작은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의 미니어쳐들. 콩알만하지만 재빠른, 크기가 작을 뿐 그것이 주는 소름은 동일한 그것들. 책상에 앉아서 밥을 먹다가 문득 뒷통수가 쎄~ 해서 뒤를 돌아보면, 녀석이 지나가고 있었다. 잠을 자다가도 문득 눈이 떠지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나의 소중한 공간을 활보하는 작은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어! 죽어! 누군가의 죽음을 그토록 바랐던 적이 있던가. 매일 매일 살생을 이어가던 나는 점점 지치고 있었다. 그녀석들과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 기회는 있다. 나는 한 가지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나마 불을 켜놓으면 그 녀석들이 자취를 감췄다.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나의 숙면과 그녀석들과의 대면을 맞바꾸기로 했다. 불을 켜고 자기로 결심한 것이다.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집으로 만들겠어. 녀석들이 움직일 단 하나의 틈조차 주지 않겠어! 


처음에 불을 켜고 자려고 하니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자도 잔 것 같지도 않고, 지금이 아침인지 새벽인지 저녁인지 밤인지 낮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폐인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수면안대는 쓸 수가 없었다. 혹시나 갑자기 그 녀석의 낌새가 나타났을 때(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석의 등장을 잘 알아차리는 편이다)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신속정확은 그녀석과의 전쟁에서 꽤 중요한 미덕이었으므로. 


그래서 나는 베개를 얼굴에 올린 채, 베개로 형광등 불빛을 막고 잤다. 마치 범죄현장처럼. 가만히 베개를 얼굴에 올리고 누워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일까, 베개를 얼굴에 올리는 게 의외로 아늑한 것도 같고, 좀 더 부드러운 순면 베개로 바꿔야 하나 등등. 어쨌든 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물론 그 녀석들은 계속 등장했다. 그래도 나는 불을 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일 년동안 불을 켜고 잤다. 그 녀석들과의 전쟁에서 나는 백기를 들었다. 원룸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무조건 신축!을 외치며 이사를 했다. 드디어 불을 끄고 어두운 방에서 잘 수 있게 됐다.

혼자 사는 것은 좋다. 단, 그녀석이 없을 경우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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