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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Apr 26. 2022

좋은 이별이 있나요

수많은 헤어짐에 대해

 프리랜서 생활을 십여 년 하다 보면 이별할 일이 정말 많다. 몸 담았던 회사와 헤어지는 것, 프로그램을 그만두는 일, 스태프들과 이별하는 일... 참 많은 이별을 하며 살아왔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지는 것은 몸소 많이 겪어왔는데, 떠나간 사람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말은 아직까지도 믿을 수가 없다. 그대로 끝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와 헤어지는 건 쉬운 편인데 거기서 같이 일을 하던 사람들과 헤어지기는 정말로 어렵다. 매일 같이 촬영하러 다니고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을 떠나는 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진다. 어렸을 때는 오히려 떠나간 자리에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들에 대해 더 신경을 쏟았던 것 같다. 가버린 사람들까지 신경 쓰기엔 여유가 없었을뿐더러 그냥 이리저리 바쁘게만 다니던 초보 방송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헤어진다고 해서 아예 안 보고 사는 건 아니지만, 매일같이 보던 얼굴들을 드문드문 봐야 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스물다섯 살, 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어느 방송국의 프리랜서 자리였고 그 때문인지 나는 지금까지 어느 곳에 소속되지 못하고 떠돌이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다. 첫 회사와 이별을 생각해볼까. 야구 아나운서로 중계,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등에 출연했던 나는 바라던 대로 야구 전문 아나운서가 되었다. 1년 단위의 시즌 계약이었는데 야구 시즌이 끝나는 겨울마다 마음고생을 했더란다. 내년에도 내 자리가 있을까. 여기서 방송을 할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방송사가 더 이상 야구중계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하였다. 그건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의외로 순순히 재계약 포기를 하게 되었다. 같이 하던 분들도 안타까워하고 아쉬워하고.. 그렇게 모두가 애써 웃어 보이며 헤어지게 되었다. 슬퍼할 틈도 없이 다른 방송국에서 다음 시즌 계약 제안이 왔기 때문에 어쩌면 더 빠르게 잊어버렸나 보다.

 그리고 두 번째 이별은 조금 남달랐다. 야구는 한 시즌 144경기. 팀에서 주전 선수들이 보통 110~120경기에 출전하는데 나 혼자 그 해 120경기를 넘게 나갔다. 보통 한 방송사에서 2~3명의 아나운서가 돌아가며 현장을 다니는데 우리는 나 한 명뿐이라 다 나가게 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고생을 한 방송사에서 1년 후, 다른 사람을 뽑겠다며 생각이 있으면 공채에 지원해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엔 무조건 새로운 얼굴을 구하려는 분위기였고 그때 업계에서 뉴페이스를 뽑으려는 건 당연한 분위기였다. 그동안 부당한 일도, 쌓인 것도 많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었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이 난 걸 내가 바꿀 수는 없었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의 뜻이 아니라 어디선가 나온 말이란 걸 잘 알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혼자 ‘두고 보자.’며 소심한 복수를 꿈꿨다. 그 시기가 내 인생의 암흑기라 불러도 될 정도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다 어느 날 회사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분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은 걸까, 난 이제 더 이상 듣기도 싫은데.. 하며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랬더니 테이블 위에 어떤 모니터가 있었다.

 “상은 씨가 저희 방송국에서 한 모든 인터뷰들을 담았어요. 추억으로 간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내가 첫 인터뷰를 하던 순간부터 시즌 마지막 인터뷰까지 모두 다 담겨있었다. 감동과 함께 순간순간들이 기억나며 울컥했다. 일방적인 헤어짐에도 감사할 만한 일은 있구나. 이런 분들이 이별을 좋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거구나. 이런 걸 ‘좋은 이별’이라고 하는 걸까.

 

 이별은  슬프고 잔인한 것이라 생각해왔다. ‘좋게 헤어졌어.’라는 말을 들으면 그건 아직 이별이 아니라고,  헤어졌기 때문에 좋은 거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여태까지의 이별을 생각해보면 소란스러운 이별은 ‘아직이별할 때가 아니었다. 울고불고 떼쓰고.. 그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거다. 진짜 이별을 생각해보면 대체적으로 고요했다. 내가 받아들이든, 상대가 그렇든. 조용한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진정으로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분개하던 순간에는 아직 이별을 하지 못한 것이, 건네  인터뷰 모니터를  순간 차분하게 이별을 시작하게  것처럼.



+거자필반

첫 번째 회사와는 야구가 아닌 골프로 재회했고, 두 번째 회사와는 아직입니다. 그 때 웃으며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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