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임신하고 찾아온 변화
나는 번데기가 되기로 했다.
2022년. 결혼한 지 13년 차가 되었다. 엊그제 결혼한 듯한데 같은 남자와 한 집에서 10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니 좀 징그럽다. 게다가 두 아이의 엄마라니. 아침에 눈 뜨면 보이는 아이들은 내가 '엄마'라는 역할을 하는 어른임을 깨닫게 해주는데 그 감정이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또래에 비해 덩치가 큰 편인 두 딸들은 언제 이리 컸는지 뱃속에 있던 것들이 말대꾸를 따박따박할 때마다 뒤통수에 열 뻗치게 만들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은 내가 세상에서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어준다.
결혼 전 나는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회사원이었다. 일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일했다. 을의 입장에 서서 충실히 살았다. 학원에서 근무할 때는 설명회 준비를 위해 새벽까지 일하다가 집에 가는 시간이 아까워 찜질방에서 쪽잠 자며 일을 했고 결혼 후 교육회사 콘텐츠 팀에서 일할 때는 새벽에 택시 타고 퇴근하기를 밥 먹듯 했다. 주말에는 서점으로 달려가 당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던 자기 개발서를 읽고 평일에는 누구보다 일찍 회사에 출근했고 그 미련한 짓은 임신 막달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다녔지만 출산 휴가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회사로부터 부서가 정리된다며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어 출산 휴가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전업주부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돌이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시작하고 취업준비를 했지만 아픈 횟수가 늘어나는 아이를 보며 내 욕심 때문에 아이가 아픈 것 같아 일하려던 마음을 접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경력 단절이 된 채 육아도 살림도 적응하지 못한 채 막연히 생각했던 둘째를 갖게 되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얼굴에 심한 변화가 왔다. 평소처럼 얼굴 각질 제거를 하기 위해 따뜻한 수건을 얼굴에 올리고 난 뒤 각질 제거를 했는데 벌게진 얼굴은 제자리로 돌아올 줄 모르고 점점 따갑기 시작하더니 진물까지 나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임신을 한 상태라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하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망가지니 외출하기 싫어졌다. 외출을 위해 거울을 보는 것도 싫고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 왜 그래?”라고 물어오니 신발을 신고 나서는 게 점점 꺼려졌다. 그렇게 만 3년을 두더지처럼 집 밖을 싫어했다. 아이 때문에 이어진 인간관계를 제외하고는 사람들과의 교류를 최소화 하고 친구들과의 약속도 대부분 피했다. 번데기처럼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임신으로 피부과 치료가 어려웠던 터라 출산만 기다렸다. '출산하면 괜찮겠지. 지금은 임신 때문에 호르몬 변화로 얼굴이 이렇게 된 거니까 아이만 태어나면 점차 나아지겠지.'라며 스스로 위로했는데 보기 좋게 그 기대감은 깨졌다. 출산 후에도 내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리고 진물이 흘렀다. 부은 몸에 뻘건 얼굴까지 갖게 된 나는 산후조리원에서도 최소한의 활동만 했다.
큰 애 때와 달리 몸이 좋지 못하니 둘째 아이 보는 것은 배로 버거웠다. 둘째 출산 시기에 팀장으로 승진한 신랑은 얼굴도 보기 힘들었고 엄마 껌딱지였던 큰 애는 경쟁자의 등장으로 퇴행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서른넷.
두 아이 육아의 시작과 함께 매일 밤 울면서 잠드는 전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