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움 Nov 02. 2023

우울을 분석하는 중입니다.

글쓰기로 또 한 번 나를 다독인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6월 31일. 수술했던 날이 벌써 4개월 전 일이다. 같은 병실을 쓰셨던 분이 에어컨 바람을 힘들어하시는 탓에 유난히 덥게 지냈던 그 시간들이 무색하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는 시간이 되었다.


금식 4일만에 나온 식사


예상보다 길어진 입원 기간 탓인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동안 자기주장을 차마 하지 못했던 신체 부위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두 아이의 엄마였다. 일을 쉬더라도 집안일과 육아라는 퇴근 없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퇴원 후 바로 아이들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라 24시간을 함께 했다. 다행히 초등학생이고 맞벌이 부모님에게 길들여져서인지 씻고 간단한 식사를 챙겨 먹는 정도는 스스로 했기에 체력을 회복할 시간은 충분했다. 최대한 내 몸을 위해 최소한의 집안일만 했다. 


허나 '최소한'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손목에 고장 나 결국 근육 주사를 맞고 한 달 가까이 약을 먹어야 했다. 가뜩이나 무기력함을 겪고 있던 때 그래도 힘을 내고 다시 잘 살아보겠다고 다독이고 있는데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부정적인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들이 갑작스러운 폭우처럼 내게 쏟아졌다. 준비 없이 닥친 재해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맨몸으로 도망친 사람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불을 털다가도, 아이들 밥을 차려주다가도, 혼자 멍하니 있다가도 문득 좋지 않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뭘까?'

'죽으면 편해질까?'

'언제까지 대출금을 갚아야 하지?'

'아프겠지? 뛰어내리자마자 후회하겠지.'


내가 한 생각에 나도 놀라 거실 창문을 닫아버렸다. 괜스레 소파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는 둘째를 껴안고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곤 했다. 이런 경험이 쌓일 때마다 돌돌이(고양이 털, 먼지 등 제거하는 청소 도구)를 들고 몸을 움직였다.


매일 운동하고 집안을 정리하며 움직이지만 머릿속에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지쳐 나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런 감정은 왜 시작되었을까?


  밤새 뒤척이며 자는 날이 이어졌다. 자는 내내 그물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기분을 느끼며 깨는 날이 늘어났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의 꿈을 연이어 꾸며 얕은 수면을 겨우 이어가다가 새벽 5시 20분쯤 몸을 일으킨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럴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아직 몸이 아파서라기에는 두 달 동안 수술 부위도 회복되었고 빈혈 수치도 정상화되었다. 체력 증진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처럼 잘 먹고 잘 자야 전처럼 지낼 수 있는데 나는 이유 모를 우울에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나마 아이들이 생활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모든 일을 미루고 누워만 있었다.


 왜 이럴까 생각하는 중에 눈앞에서 게임의 한 장면이 그려졌다. 슈퍼 마리오가 열심히 걸어가다가 점프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장애물을 건너뛰는 그림. 


내가 느끼는 우울감의 가장 밑바닥에는 아마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을 것이다. 마흔이 넘어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엉켜있다. 거기다가 늘 생각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아주 두껍고 찌득찌득한 덩어리들이 장애물로 점점 더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팔랑귀의 육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