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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May 24. 2024

기다리는 일이 외로운 거지.

효경언니가 1:51분쯤 전화를 했다. 언니는 그저께 일요일에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언니는 일요일에 전화를 하겠다고 하면 일요일에 전화를 했다. 언니와 처음 만난 건 2010년 작가교육원에서였다. 언니와 재회를 한 건 2019년 겨울이었다. 다음 삼 년 동안엔 두 번을 만났다. 연락은 비교적 자주 한다. 언니는 전화를 하겠다 말하면 늘 전화를 했다.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다가,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말하며 울컥 감정을 쏟았다. 아, 나도 역시 마냥 괜찮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재이를 알게 된 건 4년쯤 됐다. 그녀는 나름의 오랜 시간 좋은 지인이었다. 그녀는 늘 나에 대한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시했다. 나보다 어린 그녀를 살뜰히 챙길 때마다 그녀는 결혼해달라는 조크를 던졌다. 그녀는 늘 우리가 평생을 이어갈 인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를 향한 그녀의 애정이 과연 말의 무게 만큼 일지 사실 크게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존재가 분명 의미 있었던 건 맞다. 무척 외로웠던 그날에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데, 내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첫마디는 '무슨 일이세요?'였다. 건조한 목소리였다. 아, 이만큼이 우리의 사이였군. 아무 일도 아니에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연락이 오고 가지 않았고, 해가 바뀌고 얼굴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보니 역시 반갑긴 했다. 안부와 근황을 주고받다가, 그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 한 달에 한 번은 꼭 만나요. 그제야 지난 시간 내내 그녀의 진의를 의심했던 내 마음이 무척 미안해졌다. 시간. 정해진 시간을 주겠다는 약속. 정해진 시간을 나와 함께하겠다는 선언. 나에겐 이것이 애정이고 사랑이었으니까.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한 달에 한 번 나를 꼭 만나고 싶을 정도로 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동안 내게 했던 그녀의 말들이 모두 믿어졌다. 4년간 차마 열지 못했던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일정한 삶의 패턴에 그녀를 위한 빈 공간을 마련했다. 다시 월말이 되고, 월초가 되고, 중순이 되면서 세 번 정도 '우리 만나자'라는 말을 먼저 꺼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그러자고 하면서 날짜를 잡지 않았다. 그녀의 SNS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외로웠던 것 같다. 그녀의 행동은 전화를 받았던 그날만큼 건조하고 무심했다. 더 기다릴까 했지만,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봐요. 나는 그때, 그녀의 그 말이 정말 진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소한 말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순간에는 서운하게 할지 모르겠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혼자일 땐 외롭지 않다. 기다리는 일이 외로운 거지. 그냥 가끔 보는 일도 괜찮으니, 오기로 한 시간엔 와줬으면 좋겠다. 3시에 만나기로 하면 우린 3시에 만나는 거고, 한 달에 한 번 보자 했으면 너무 늦지 않게는 다음 약속을 잡는 거다. 난 원래 이래요. 융통성 같은 건 잘 없어요 그러니까, 함부로 시간을 주겠다는 약속 같은 건 하지 말아요. 절대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는 그 약속 하나면, 나는 당신을 지나치게 사랑해버릴 것 같으니까요. 


이상, 외로운 사람 씀.


2023.3.12



*워밍업 중이예요. 예전에 써둔 글 먼저 올려봅니다. 모두, 행복한 금요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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