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과 교육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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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차원이 다르다.'라는 말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말이다.
아니, 더 과장해서 극도로 끔찍하게 잔혹한 말이다.
우리는 흔히 특이한 사람을 '4차원'이라고 표현하지 않은가?
같은 '3차원'세계가 아닌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 표현히 강력하게 잔인한 이유는 즉슨, 같은 사람을 취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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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약 개미와 대화를 한다고 치자.
개미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굽니까?"
당신은 이에 대해 뭐라 말할 것인가?
개미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생각의 차원이 달라서' 곤란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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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유치원생이 말한다고 치자.
"리만 가설이 뭡니까?"
잘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당신이 천재든, 아니면 그 아이가 천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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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 대해 세심 존경심이 든다.
교수자들이 설계한대로 자신보다 수준이 낮은, 학습자들을 자신이 설계한대로 행동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지 않는가?
계획한대로 단계 아래에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도 복잡한 일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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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하면 잘 사는가? 그건 아닌 듯 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대학 교수님들은 아마 인생 행복 최대치를 찍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많은걸 알고 계시는 대학 교수조차도 불행해 보이는 사람도 많았고, 내 딴엔 어리석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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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런 교수를 한 명씩 마음 속에 간직할 것이다.
사람 자체를 모욕했던 기억속에 좋지 않은 분이었다.
아무리 교수가 나빠보인다 한들 멍청한 사람이라 욕하진 말자.
논문을 쓰는 일이 굉장한 일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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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두루 알기는 쉽다.
다만 지식의 한계치에 도달하기 위해선 미친듯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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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가 꿈이었다.
정확한 정답을 내려준다는 나의 인생의 기준이 되었던 것 같다.
생명에 관심이 있어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지 않아 다행인 것 같다.
순수과학 분야를 좋아했지만, 필요에 의해 공학 분야로 빠졌을 것 같은데, 그랬으면 내 삶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순수한 지식을 가지는 분야는 전부 먹고살기 힘든 듯 하다.
무엇때문에 순수과학, 철학, 신학, 수학 등 이런 분야는 돈 벌어 먹기가 힘든가?
물론 돈을 잘 버는 분이야 많겠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런 순수학문의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밥벌이가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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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과학. 그것은 1차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다.
여기서 신앙과 신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신념은 인간의 위대한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믿는다.
우리가 광자역학에 대하여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것이 진짜라고 강하게 믿음으로써 인터넷 랜선이 발달하고, 하늘에 인공위성을 띄우도록 만들었다.
신앙과는 다르다.(이건 다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많은 종교인 독자 분들에게 양해를 바란다)
신념은 지식을 쌓고, 발디디며 우리의 인생을 더 멋지게 펼쳐지게 하는 동화같은 마술이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라
모든 것이 과학으로 이루어진 신념의 결정체가 아닌가!
칫솔, 커피, 모자, 자동차 등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침범하고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공학분야가 기가 막히게 노력해준 덕분도 있지만,
공학의 기반에는 바로 순수 과학, 바로 자연에 대한 이치가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만약 순수과학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활용할 도구의 개수또한 줄어들 것이다.
우리의 믿음으로 이루어진 과학이, 앞으로 만들어낼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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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가정(假定)에 의문을 품어야 해.
-Moira O’Deo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