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절, 미라클 모닝에 도전했다. 새벽 6시 독서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과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회적 거리를 둬야 했고 홈스쿨링을 시작한 딸도 돌봐야 했던 나에게 새벽 독서 모임은 마치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가 물밖으로 나와 쉬는 숨 같았다.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걸 하고 그래요?!” 바이러스의 공포로 만날 수 없던 지인과 통화하며 나의 미라클 모닝 도전기를 전했더니 돌아온 반응이었다.
“미라클 모닝하다 훅 가요. 살던 대로 살지 뭘 그런 걸…” 흐려진 끝말에 생략된 단어는 ‘한심함’이었다. 4년 전 일이다.
2024년 7월. 미라클 모닝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햇살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인지 어떤 공을 들여도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궁리 끝에 새벽에 일어나자, 결단했다. 여름이라 해도 일찍 뜨니 안성맞춤이지 않나. 결단하고 이튿날 새벽 별다른 노력 없이 떠진 눈이 반갑고 대견했다.
“새벽에 일어나 책도 읽고 운동하려고 노력 중이야.” 오랜만에 연락한 또 다른 지인이 요즘 뭐 하고 지내냐 물어 솔직하게 답했다. 대충 그냥저냥 지낸다 하고 말 것이지.
“그런 걸 왜 해? 하지 마, 하지 마. 그러다 골병들어. 우리 나이에 잠이라도 푹 자야지. 그런 쓸데없는 걸 왜 하고 그래~”
사람의 말은 무의식에 담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벽에 일어나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 굳게 다짐하고 잠들었다. 새벽, 무의식이 지배당하는 시간 내 의식이 깨려 하자 무의식이 속삭인다
‘그거 쓸데없는 짓이야. 그러다 훅 가는 수가 있어. 네 나이엔 잠이 보약인 거 몰라? 그냥 더 주무셔~’
무의식의 달콤한 속삭임에 의식이 힘없이 물러난다. 그래, 잠이나 더 자자.
코칭 수업이 있었다. 수업 중 메인 질문이 ‘하려고 애써도 되지 않는 일은 무엇인가?’였다. 단번에 새벽기상이 떠올랐고 구체적 목표를 만들었다.
‘나는 월요일에서 금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내가 정한 분량의 독서를 하고 싶다’는 문장이 만들어졌다.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동시에 긍정적인 목표라 흡족했다. 그리고 곧 1:1 상호 코칭 실습에 돌입했다.
상대 코치님과 각자의 목표에 대해 나누고 연습해야 할 질문을 던지며 서로를 탐색해 나아갔다. 마지막에 자신이 정한 목표를 통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상대 코치님의 마음 뿌리에는 ‘여유로움’이 있었고 나의 근원에는 ‘생동감과 활기’가 있었다.
내가 새벽을 통해 얻고 싶은 건 대단한 삶의 변화, 어마무시한 목표가 아니라 그저 하루를 시작하는데 내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생동감’ 그리고 ‘활기’였다. 고작 그거 하나였다.
지난 월요일에서 금요일, 나는 이틀 새벽독서를 했다. 닷새 중 이틀, 누군가에겐 ‘고작’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전 주까지 나는 새벽 기상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없지 않았나. 5에서 2를 뺀 3의 실패가 아닌, 0에서 2를 더한 2의 성공을 거뒀다.
*두려움을 몰아내고 창조력을 고무시키는 작은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기술과 습관을 개발하기 위해 작은 생각을 품는다
*성공이 보장된 작은 행동을 시작한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작은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스스로와 다른 이에게 작은 보상을 한다
*모두가 무시하고 있는 결정적인 작은 순간을 찾아낸다
-아주 작은 반복의 힘 중-
나는 나에게 작은 질문을 던지고 작은 행동을 하기로 했다. 모두가 무시하고 있는 결정적인 작은 순간은 무엇인지 찾으라고 나의 감성적인 뇌에게 부탁했다. 곧 찾아낼 거란 걸 안다.
사람의 말은 씨앗이 되어 무의식에 심어진다. 심은 사람의 의도가 어찌 됐든, 심긴 사람에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된다. 그러니 자나 깨나 말조심해야지, 다짐한다. 특별히 우리 아이들에게, 맑은 물에 떨어뜨린 먹물 한 방울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