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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벌띵 May 16. 2024

트라우마 속 진실

"한국 사람들은 개고기 먹잖아! 너도 먹어?"

영국에서 지내던 중, 북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온 친구가 건넨 물음이다. 질문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K'만 붙이면 유행이 된다 할 만큼 우리나라의 위상이 대단하지만, 내가 영국에 있을 때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이라 되묻던 시절이었다. 중국의 소도시라 짐작하는 사람도 있어 뒷목도 여러 번 잡았다.

그런 중에도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다는 건 어찌 알았는지, 유럽인을 만날 때마다 개고기를 들먹거렸다.


어릴 적 나는 개가 너무 무서웠다. 동네 슈퍼에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에 독일셰퍼드와 도사견이 섞인 개가 살고 있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송아지 만했던 개를 목줄도 채우지 않고 키우는 집주인 때문에 그 집 앞을 지나는 건 공포 그 자체였다. 대문을 닫고 살던지 개를 묶어 키우라는 원성이 자자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그 집 사람들은 내 공포를 어린아이의 앙탈로 치부했다.

슈퍼로 가는 길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지옥이었다. 셰퍼드의 영리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녀석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 손에 과자나 간식이 들려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걸 노렸다. 어린 내가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도 기어이 쫓아와 손에 들린 걸 빼앗아 갔다.


개 주인에게 민원을 넣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번번이 무시됐다. 그러던 하루, 여느 날과 다름없이 송아지만 한 개가 나를 쫓아왔고 사색이 되어 하얗게 질린 나는 도망가다 넘어지고 말았다. 먹잇감을 노리고 다가오는 야수 같은 개를 향해 과자를 던져버렸다. 먹고 떨어져라!! 그런데 그날 놈은 과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허연 이를 드러내며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왔다. 죽음의 공포가 나를 덮었다.


"탕!!!"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휙 돌아보니 아버지가 허공으로 총부리가 겨눠진 사냥총을 들고 서 있었다.

"아빠가 갈 테니까 가만히 있어!!" 개를 향해 총을 겨눈 아버지가 내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공포에 질려 대답도 할 수 없던 나는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향해 이를 드러낸 개를 흘낏 살폈다.

아버지의 기세에 눌렸는지 개는 여전히 이를 드러냈지만 꼬리를 말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뒤를 보이 다간 죽을지도 모른다고 개는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내 옆까지 다가온 아버지는 한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키고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탕!!!"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운도 좋은 개놈은 아버지가 쏜 공포탄에 놀라 죽는소리를 내며 줄행랑을 쳤다.


길도 아니고 집 안까지 들어와 당신 딸을 공격했던 개를 향한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장 개 주인을 찾아가 한 번만 더 개 목줄을 하지 않고 키우다 돌아다니는 걸 보면 가만두지 않겠다 으름장을 놓았다.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뀌는 건 간단하다는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개를 향한 내 공포는 극에 달했다.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귀를 막고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나날이 반복됐다.

어느 날 아버지는 어디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노란 털로 덮인 강아지는 큰 귀와 겁을 잔뜩 먹은 검은 눈을 하고도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리고 있었다.

"우리가 키울 거야.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놈이라 아직 아기야." 당신의 바짓가랑이를 동아줄처럼 붙들고 숨은 내 어깨를 다정히 토닥이며 아버진 설명했다.

"네가 밥도 주고 물도 주고 해 봐. 우리가 많이 돌봐줘야 돼."


훗날에야 나의 끝날 줄 모르는 공포를 끝내기 위해 부모님이 내린 특단의 조치란 걸 알았다. 강아지가 송아지만 한 도사견으로 자라는 동안 내 공포도 점차 사라졌다. 아침저녁으로 내가 주는 밥을 먹고 나만 보면 꼬리를 쳐대는 녀석을 지금도 기억한다. 순하디 순했던 녀석은 우리 집 반려견 역사의 시조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개고기 안 먹어.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고기를 안 먹어."

혐오의 빛을 숨기지 않고 내게 질문을 던진 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단호히 대답했다.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보다 왜 먹게 되었는지 알았다면 이런 질문도 못했을걸. 누군가를 비난하기 전에 그렇게 된 이유를 알아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 우리가 어떤 역사를 살았는지 안다면 그렇게까지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이 먼저 보였을 거야. 그랬다면 반려견을 데리고 사는 나에게 이런 말도 못 했겠지." 개고기를 먹는다는 비난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준비했던 나는 '언젠가 반드시 꼭' 하고 말리라 다짐한 말을 쏟아냈다. 파란 핏줄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하얗던 그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타인을 비난하기 전 그 아픔을 들여다보라. 그러면 새로운 그를 만나고 더욱 아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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