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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을 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서 천안에 살고 있는 중고등학교 동창 친구 둘을 종종 만나게 된다. 만나서 딱히 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주로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소식, 옛날 추억거리, 그냥 사는 이야기를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야깃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날도 여행, 식사 메뉴 이야기를 거쳐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 A의 엄마의 최근의 변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친구 B를 닮은 아버지 이야기로 이어져, 그녀들이 기억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에까지 닿았다.
“나는 너희 엄마 되게 무서웠어. 00이 엄마가 공부에 좀 신경 쓰셨잖아. 내가 종종 00이 집에 놀러 가면(명목은 공부하러) 어머니께서 공부해라~! 큰 소리로 이야기하셨는데, 그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 00이 어머니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셔서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혼날까 봐 엄청 조마조마하면서 놀았는데. 난 00이 엄마 무서웠어.”
‘그렇지, 우리 엄마 목소리 크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니, B가 이어 말한다.
“난 00이 어머니 되게 귀여우시던데.”
‘엥? 엄마가 귀엽다고? 이건 또 뭔 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입으로 향하던 포크를 멈추고 B를 쳐다보니 이어 말한다.
“네 결혼식 때 말이야. 식장 안에서 어머니 뵀거든. 거기서 어머니께서 다른 어른들께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저어기 앞에 두 줄이 다 선생님들이야. 아니 근데 선생님들이 다 인물이 없어. 그치? 어째 저렇게 다 인물이 없을까. 저 학교에 인물이 없는 여 선생님들만 갔나.”
“하시더라. 그 이야기 듣고 아… 어머니께서 괜찮으시구나 했어.(결혼 전에 부모님이 결혼을 많이 반대하셨었다. 그 상황을 친구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너무 귀여우시더라.”
‘아… 역시 우리 엄마.’
엄마는 경상북도 포항 출신이다. 어쩌다 충청남도 당진 남자인 아빠를 만나 충청도에 자리를 잡고,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쭉 충청도에 살고 계신다. 말투가 느긋하고 목소리조차 낮은 이곳 충청도 억양 사이에서 엄마의 목소리는 동그라미 속의 세모처럼 늘 뾰족하고 튀었다. 어릴 때 나는 종종 엄마가 조금 흥분해서 말하면 상대와 싸우는 줄 알고 엄마를 말려야 하나, 큰 싸움이 되면 어쩌나 전전긍긍했다. 엄마와 다른 어른들이 대화할 때면 자리를 일부터 피했다. 엄마의 큰 목소리와 도드라지게 뾰족한 말투가 창피해서 엄마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공부하라는 엄마의 일상적인 말에도 친구 A가 엄마를 무서워했던 게 무리는 아니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결혼식장에서의 엄마의 표정은 귀엽다는 표현의 것이 아니었다. 딸의 결혼이 못마땅하기만 한(심지어 결혼식 날 까지도!) 그날의 엄마는 눈썹은 팔자를 이루고 미간에 종일 자리 잡고 있는 주름이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늘어진 눈꺼풀은 찌푸린 인상에 더 쳐져 눈을 가려 세모눈이 되었고, 세모눈으로 중간중간 여러 친척들과 하객들을 대할 때 감정을 추스르며 웃음을 지어보려 노력했을 뿐 진짜 웃음을 보이진 못했다. 그런 마뜩잖은 상황에서도 하객들 얼굴 흉을 보는 엄마. 그 큰 목소리로 경상도 억양을 써가며 이야기했겠지.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는 그 모습을 상상해본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훅 달아올라 어쩌지 못하고 엄마의 말을 끊어내기 바빴을 텐데 이제는 안다. 그게 엄마라는 걸. 우리 엄마다.
며칠 전 엄마를 만났다. 쑥스러움과 어색함에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에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서은이와 범근이를 보고 엄마는 이야기한다.
“아니 니들, 할머니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왜 인사를 못해. 할머니가 남이냐? 이리 와서 인사 좀 해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1층 거실과 계단을 넘어 2층까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