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겨울해 Dec 07. 2023

왜 안돼? 수영 (1)

Why not?

어느날 문득, 우주에서 내려준 것처럼 깨달음 하나가 찾아왔다.


왜 글쓰기로 감정 배설 하면 안돼?

왜 살 찌면 안돼?

왜 인상 쓰면 안돼?

왜 눈치 보면 안돼?

그러니까 왜 안돼?


솔직히 갖다 붙일 수 있는 이유야 너무나도 충분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 것들이었다. 안되는 이유에 초점을 두고 그것들이 인생의 진리인양 선을 그어두고 움직이지 않았던게 너무 많았다. 스스로가 만들어둔 한계들이었다.


경험에 의해, 들은바에 의해, 사회적 기준들에 의해.


그런데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또 안될 건 딱히 없었다. 감정 배설은 때론 건강하단 뜻이고 스트레스 받으면 살이 찔 수도 있고 애초에 미간 근육이 잘 잡혀서 인상을 잘 쓰는 것 뿐이고 또 그게 나였다. 애써 그러지 말자고 옭아 맬 필요는 없던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덤덤하게 찾아와 마음 문을 벌컥 열어 버렸다.


그러게, 안될 건 또 뭐람?


그래서 그동안 안된다고 혹은 할 수 없다고 몸 사리고 있던 것들을 하나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수영이었다.

어렸을 때 바다에서 죽을 뻔한 경험을 한 뒤로 물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살아왔다.


초등학교 여름방학을 맞이한 우리 가족과 친척은 다 함께 어느 해변으로 놀러갔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수경을 끼고 잠수를 해댔다. 바다 밑 모래를 한참 구경하다가 조개를 주워 오거나 미역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신나게 놀았다.


어느 정도 놀고 난 뒤 잠시 숨도 돌릴 겸 튜브를 엉덩이에 끼고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 쉬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신선 놀음을 누리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검은 무언가가 나를 덮치더니 하늘이 뱅글 뱅글 돌았고 곧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너무나 없는 와중에 뽀글뽀글 거리는 물방울들이 잔뜩 펼쳐지는가 싶더니 들이닥치는 바닷물에 눈을 뜨기가 어려웠고 몰아치는 수압에 꺽꺽 거리며 수면 위로 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튜브에 낀 엉덩이가 도무지 빠지지 않아 그대로 바다 깊은 곳에 뒤집힌 채 잠겨 버렸다. 고통스러움이 물밀듯 들이닥쳤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온 몸에 힘이 쫘악 빠지면서 모든 게 편안해졌다.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안락함이었다. 좀 전에 하던 신선 놀음과는 또 다른 평온이었고 행복감까지 느껴졌다. 그 때 저 멀리 눈부신 빛이 나를 비추는게 보였다. 그리고 어쩐지 그 곳에 가고 있던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하얗게 밝은 저 빛을 향해 빨리 가고 싶다 하며 손을 뻗었는데-


갑자기 몸이 붕 떴다.


이윽고 코가 엄청나게 매워지면서 숨 쉬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웠나 싶을 정도로 아팠다. 물 먹은 기침을 연신 하던 나는 몸을 바들 바들 떨면서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처음 보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오빠가 괜찮냐며 다그치고 있었다.


알고보니 오빠가 장난친답시고 내 튜브를 뒤집어버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는데 한참이 지나도 내가 보이지 않자 허겁지겁 달려왔다고 한다. 나는 왠지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우는 시늉을 했다. 내가 안 울면 오빠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 같아서 잔머리를 굴린건지 아니면 조금만 더 가면 그 빛으로 갈 수 있던 게 아쉬워서인지 지금도 헷갈리긴 한다.


어쨌든 이 경험 이후로 나는 물 속보단 물 밖에 있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빠지같은 곳에 놀러가면 보트를 타며 잘 놀긴 했지만 일부러 물에 빠뜨린다거나 내 몸을 꼼짝 못하게 붙든 채 물을 먹이는 등의 행위에는 정색을 표했고 혐오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껏 '나는 물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으며 몸을 사렸다.


하지만 난 물을 좋아했고 또 동경도 했다. 그래서 왜 안돼? 라는 깨달음이 찾아 왔을 때 운동으로 수영을 바로 택했다.


왜 안돼? 수영을 해보면 되지, 뭐.


그래서 최근, 새벽 수영을 신청했다.


10년 전 한 달정도 배워본 게 전부였기에 원래는 기초반에 들어가야 하지만 맞는 시간대가 없어서 초급반을 신청했다.


그런데 수강 신청 관련 상담사분한테 전화가 와서는 초급반은 자유형부터 시작하는데 초급반으로 신청하신게 맞는지에 대한 확인을 하셨다. 내가 수영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파악한 상담사분은 회원님은 아무래도 다음달에 기초반으로 다시 신청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뭣도 모르고 초급반 수강 신청을 했다가 왜 이렇게 어렵냐며 컴플레인 걸었던 사람이 많았던지 약간 까칠한 어투로 나의 수강등록을 거부하셨다.


가뜩이나 물이 편하지만은 않았던 나도 잠시만 고민하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초반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검색을 해보았다. 수영에 필요한 중요한 기본기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어느정도는 헤엄치며 나아갈 수는 있었고 문제는 호흡법인데... 이건 해 본적이 없어서 해봐야 알 것 같았다. 잠시 고민했다.


숨 쉬다가 물이 코로 입으로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건 딱 질색인데. 하지만 수영은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나를 억압하는 뒤집힌 튜브 같은 게 없잖아. 그래도 기초반부터 천천히 하는게 낫지 않아? 아니, 그래도 마음 먹었을 때 해야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지금이 아니라 한 달 뒤에 한다는 건 마음의 타이밍을 놓치는 꼴이야.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왜 안돼?

음...


그러게.

딱히 안 될 건 없네.


다시 전화를 걸어 초급반 수강을 하겠노라 말을 전하니 상담사는 환불 규정에 대한 안내를 짧게 해주고는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좋아. 드디어 수영을 배운다.


겹겹이 쌓아온 나의 한계들을 내 손으로 직접 깨부시는 일,

요즘 그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중이다.


일단은 먼저 새벽에 일어나는 것부터가 나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었다.


... 그나마 주 2회반으로 신청한 건 천만 다행이다. 일주일에 두 번만 일찍 일어나자!

왜 안돼? 그래도 돼!








  








작가의 이전글 철학의 맛, 요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