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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Aug 28. 2024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시험만 끝나면, ooo 할 거야!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보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마음. 말리는 연애가 더 애달프고, 먹지 말라는 음식이 더 간절하고 사귀면 안 되는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는. '금지'라는 팻말이 붙는 순간 '호기심'의 세계가 "팡"하고 열리고 금단구역의 매력도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치솟는, 동서고금의 진리.


어느새 D-80일을 훌쩍 지나 째깍째깍 시간은 다가오는데, 정작 입시생을 둔 내 마음은 초등학생을 졸업시키고 중학교에 첫째를 입학시키던 때보다 더 담담하다. 그것도 말할 수 없이 평온하다. 이래도 될까.


수능 100일 기도를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나가고 있지만, 우주를 움직이겠다는 간절함보다는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하는 그 낭랑한 기도소리가 좋아서 다니고 있다. 수시원서를 쓰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없어서 그런 건지, 이때쯤 컨설팅을 받아보면 수험생과 그 엄마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데 그 절차를 생략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평온하다. 그리고 나는 이 평온함이 마음에 든다.


요즘의 입시가 점수가 꼭 잘 나와야지만 대학을 잘 가는 것도 아니고, 수시 납치도 있다 하고, 컨설팅을 받으면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데, 높디높다는 컨설팅 비용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컨설팅을 받고 싶어도 웬만큼 유명한 곳은 대기조차 안된다니 약간은 포기상태다. 그래서 그런가. 이왕 컨설팅 예약도 못했는데 마음이나 편하게 갖자는 나름의 정신승리?


주변에서는 나름 고3엄마라며 많은 배려를 해준다. 모임 날짜도 조정해 주고, 기도해 주신다는 덕담도 건네주고. 집안 행사에서조차 '고사미 학원 라이드' 한마디면 일사천리, 모든 일정에서 제외된다. 첫 아이가 고3이 되니 내게 무슨 프리패스가 생긴 것만 같다. 전 국민이 인정하는 이유불문의 프리패스라니. 참... 인정 많은 나라다.


온 나라가 고사미 대접을 이리 해주니 엄마인 나도 힘들어 죽겠다는 얼굴로 웃고 다니면 안 될 것 같고 음.. 뭔가 더 심각한 표정을 지어야 할 것 같다. 엄마인 나조차도 그런데 정작 고3인 당사자는 어떨까. 당연지사, 당사자인 우리 고사미도 그런 부담감에선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엄마, 나는 고3이 되면 공부가 좀 재미있어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여전히 재미없어."

"당연하지~ 시험 봐야 되는 시험공부는 언제 해도 재미없지."


공부가 재미있어질 줄 기대했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지만, 여전히 재미없다는 건 백번 이해가 갔다. 시험을 앞둔 모든 인류의 공통된 마음이'시험만 끝나면~'으로 시작해서 '000 할 거야'로 끝나는 후렴구가 아니던가.


왜 꼭 하면 안 될 때 하고 싶은 일은 산더미 같아지는지. 그걸 극복해 나가는 것이 인생일 것이고, 우리 딸은 넘어야 할 그 첫 번째 관문에 서 있는 것일 테다. 보고 싶다는 영화와 드라마도, 먹고 싶은 숯불갈비도, 사고 싶은 옷도 최신폰으로 바꾸는 것도 모두 시험 이후로 미루는 우리 딸. 하면 안 되는 때라 마음먹어서인지 뭘 해준다고 해도 됐다고 하는 요즘이다.


모든 엄마의 로망이겠지만 성실한 자식을 보는 것은 결과를 떠나 그 나름의 뿌듯함이 있다. 엄마에게 뿌듯함을 주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행히 우리 고삼이도 성실한 고3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짜증도 부리고 늦게 깨웠다고 입이 이만큼 나오긴 하지만, 여러 가지 불안들을 가만히 다스리며 지내는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에르바르트 뭉크 <키스> / 목판의 질감때문에 그림이 울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라 이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문제는 고사미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고사미 엄마도 '첫째가 대학 가면...'이라는 가정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이고 있다. 고사미와 고사미 엄마의 다른 점은 고사미는 그 이유가 '외부의 제약' 때문이라는 것이고 고사미 엄마는 '내부의 제약' 때문이라는 것일 테다. 지금 꼭 해야 하는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놀고 싶은 것을 참는 것이 고사미의 상태라면, 나는 '이걸 굳이 지금 해야 되나? 늦지 않았나?' 하는 내 마음 안의 나태함 주저함들 때문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점이다.


아이들은 지금 본인들의 미래를 위해 공부한다. 지금 하는 공부가 앞으로의 진로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고, 운이 좋으면 평생 만족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도 있게 되니 중요한 때이다. 그럼 나는? 아직 사십대인 나는, 내년이면 대학생 성인의 엄마가 되는 나는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일까? 늘 그 고민의 중간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 나이 들어 부리는 쓸데없는 욕심 같고 공허한 시간낭비 같아서.


그런데 요즘 조금 생각이 바뀌고 있다. '이제 와서?'가 아니라 '이제부터, 이제라도, 어차피 뭐, 안되면 덕후' 이런 마음가짐이랄까. 인생은 백세 시대로 바뀌고 있고, 90 넘어 정정한 분들을 보면, 몸만 건강하게 남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한 이유이다. 건강도 장담할 것이 못되지만, 만약 건강하게 90까지 살게 된다면, 미적미적 미루어둔 하고 싶었던 일들이 후회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고, 내 자신을 좀먹는 일도 아닌데 하면 뭐 어떤가.


어쩌면 몇 년 동안 망설였던 이유가 안되면?이라는 가정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허들이 이제는 그다지 허들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긴 망설임이 준 응답일지도 모르겠다. 안되면? 그땐 덕후로 남는 거지 뭐. 인생 뭐 있나. 한 이십 년 꾸준히 한 우물 파다 보면 70대의 멋진 덕후, 전문가라 불러도 좋을 덕후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 시간 굽이굽이 많은 장애와 장벽들에 부딪힐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가보지 않은 길에 망설이며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보내버리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어쩌다 보니 고사미 이야기하다가 내 출사표 같은 글이 써졌다. 어쩌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일 뿐일지도 몰라서. 그나저나 엄마가 아이에게만 집중하지 않는 것이 아이가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니 어쩌면 나는 오늘 아주 건설적인 생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는 9모다. 수능 전에 가장 중요하다는 모의고사. 어제는 아이와 그날을 위한 퐈이팅 대신에, 그날 먹을 도시락 메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심각해지지 말자. 인생은 어쨌든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 그 천방지축 여고생이었던 나도 이렇게 그런대로 잘 살고 있으니 긴 인생을 믿고, 오늘의 고사미를 파이팅 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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