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원서접수... 의 충격!
어느덧 추석이 되었고, 길게만 느껴졌던 연휴가 끝나가고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9월이 휘몰아치듯 지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이 고요가 낯설다. 가을이 와도 추석이 와도 여전히 무더운데 마음에는 어느덧 서리가 앉은 느낌처럼.
어제는 딸이 자습을 하고 있는 학교에서 보름달을 맞았다. 가로등도 어두운 학교라서 그런지,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없어서 그런지, 도심인데도 불구하고 시골 같은 한적한 학교라 그런지 그 어두움의 농도가 짙었다.
호젓한 어둠 속에서, 주차장에 차도 몇 대 없는 공터에서, 두 개 동의 학교 건물, 그중에 몇 개의 교실에만 불이 켜진 곳에서, 달을 보고 섰는 내 마음엔 까닭 모를 우울과 간절함이 뒤섞였다. 그런 마음이라 그랬나, 달 속의 토끼와 교신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합격하게 해 주세요."
어제 달을 보는 고삼엄마들의 마음이 다 나와 같지 않았을까. 유례없는 치열한 경쟁률을 맞닥뜨려보니 그 간절함에도 몇 대 몇의 경쟁률이 붙을까, 내 간절함은 과연 몇 등짜리 간절함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숨 가빴다. 9모가 끝나고 수시원서를 쓰고 추석을 지나기까지 후다닥 휘몰아치는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수시 6장이라는 카드를 버리기에 아깝다는, 선배 엄마들의 주옥같은 조언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좀 더 쉬운 방법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많고 많은 대입전형 중에 우리 아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논술전형뿐이라는 사실은 뒤늦은 충격이었다. 아무것도 대비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에게만 맡겨두고 크게 관심 갖지 않았던 3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미안했던 시간이었던 것은 물론이고.
처음이니까 몰랐고, 몰랐으니 고사미고, 알았을 땐 늦으리. 흑.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말들. 그러니까 수시원서를 쓸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가야 한다든지, 논술 전형이 아니었더라면 대학을 못 갔을 거라든지 하는 등등의 말들, 그 이해할 수 없던 말들이 비로소, 발등에 불 떨어지자 단 한 번에 깨우쳐졌다. 다만 무릎을 치며 오는 깨달음이 아니라 이마를 치며 탄식하게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하지만 수능이 60여 일 남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던 대로 그냥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저 내 딸의 성실함을 믿을 수밖에. 쓰다 보니 또 가라앉지만 아마도 이 기분은 첫아이의 대입을 맞이하는 어리숙한 엄마라서 그럴 것이다. 내 마음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길 바라본다. 추석에도 불 밝힌 학교에서 공부하는 친구들과의 루틴이 아이의 불안을 잠재워주길.
연휴라서 셔틀이 없는 동안 자습이 마치는 밤 10시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어둠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던 딸에게 너희 학교에서 보는 보름달이 참 예쁘다라는 말을 하니 아이가 갑자기 생기가 돈다. 그리고선 학교 옥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시시각각으로 얼마나 예쁜지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자기네 학교 옥상은 하늘맛집이라며. 노을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며.
나아-중, 교복을 벗고 한참을 지났을 나중에 우리 아이는 학교를 떠올리면 그 예쁜 하늘이 떠오르겠구나. 친구들과 늦게까지 공부하던 기억도. 아까 주차장에서 보았던, 어둠 속 친구와 하이파이브와 포옹을 하고 헤어지던 예쁜 기억도 떠오르겠지. 그 추억을 남겨준 학교이니 수시원서 그쯤 날렸다고 속상해하면 안 되겠지.
대입을 치르는 부모들은 어쩌면 부모가 되어서 처음으로 겸허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이가 뚫어야 하는 인생의 첫 관문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밖에,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지금이 어쩌면 가족 모두가 성숙해지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우리에게 동지애가 남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다만 그 시간들이 상처와 후회만이 지난 자리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아 본다. 수시원서의 충격이 좀 오래가지만 그래도 기분을 다잡아봐야겠다. 아직 정시가 남았으니.
몰랐으니 고사미고
몰랐으니 정시파이터다.
그러니까 파이팅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