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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지 Jul 24. 2024

다녀오겠습니다!

한 달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이제야 실감 나는 말이 있다.


'한 달만 더 있었으면.'


고3을 앞두고 들었던 학원설명회에서 강사가 학부모들을 앞에 두고 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방금 입시를 끝낸 고3 학생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라며 들려주었던 말. 발등에 불 떨어진 고3들이 수능을 한 달 앞두고서 가장 간절하게 바랐던 것이 한 달의 시간이었다며 당시 고3을 앞둔 엄마들의 마음을 울렸었다.


당시엔 그냥 반신반의했었다. 나도 실감 나지 않는 저 이야기를 아이에게 전달한다고 해서 아이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혹시 수강등록을 유도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합리적 의심과 함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더랬다.  


그런데 그런 시기가 진짜로 오기는 왔다. 아직 수능이 110여 일 남았지만 성적을 올리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되는 그런 시간이.

   

"아빠, 두 달 동안 수학공부만 했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때 수학 성적이 올랐어?"


예전부터 남편이 심심찮게 들려줬던 학창 시절 에피소드였다. 이야기인즉슨 수학성적이 나오지 않아 큰 마음먹고 방학 동안 다른 공부를 다 놓고 수학공부에만 매달렸다는 이야기인데, 불안하긴 했지만 수학점수를 올리지 않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시도해 보았다는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노오력'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몇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 회자되지 않았겠지만, 반전결과가 있었기에 우스갯소리로 식탁에 오르곤 했던 이야기다. 결과론적으론, 수학 빼고 다른 과목 점수가 일제히 올랐다는 허무개그 같았던 이야기.


불행인지 다행인지, 성적 비슷한 이야기에는 귀를 닫았던 첫째였던지라 이 이야기의 결과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렴풋이 '수학공부만 했었다.'만 기억하는 첫째인지라 나는 아이가 눈치채지 못하게 남편에게 입모양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응, 수학점수 올랐어라고 해.'


아빠의 대답을 듣고 "아, 그랬구나."라며 대답하는 첫째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 마음 한구석에서 심란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6모와 7모 성적표를 보니 문제긴 문제였다.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들쑥날쑥한 수학점수다. 무엇부터 해결해야만 할까. 성적표를 보는 나도 난감했지만 아이의 불안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얼마 전부터 온몸이 가렵다,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팠다, 먹다가 체했다, 위장병이 낫지 않는다 등등 아무리 약을 챙겨줘도 쉽게 낫지 않는 많은 증상들이 아이에게 나타나고 있다.


불안으로 컨디션은 안 좋지, 과탐도 해야 하고 수학도 올인해야 하고, 게다가 주변에 사탐으로 바꾸는 친구들은 왜 그렇게 속속들 나오는지 내가 아이여도 불안하겠다 싶은 요즘인데 그래도 어쨌든 요즘 우리 고사미는 '닥치고 수학공부' 중이다. 수학을 올리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 느꼈는지 다른 공부들은 잠시 접고 수학만 집중 공략 중이다. 발등에 불 떨어진 고사미라 진이 빠지도록 수학 문제를 푸는 모양인데 가려움증 때문에 온몸을 긁어대는 모습에 영 마음이 안쓰럽다.



그렇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나. 게다가 시험에 닥쳐 시간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깊은 깨달음을 일찌감치 얻었다면 그것은 인생 2회 차일터.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악전고투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걸어본다. 물론 고3 아이에게 거는 이 희망이 '고문'으로써의 희망이 아니라 '응원' 으로서의 희망이라는 것이 과거의 나와 다르다면 다른 점일까.


될까?라는 마음보다 될 거야!라는 마음을 보내주는 게 수험생과 함께 살아가는 긍정적인 방법일 것일 것이다. 부모가 수능을 백여 일 앞둔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사실 말이다. 나는 점수로 인한 희비보다 요즘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이 요즘 더 크게 와닿는 중이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아이가 나오고 나니 한결 더 가족 같아진 느낌 같달까. 하숙생이었다가 다시 딸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내 딸.


여튼 아이와 대화가 통한다는 느낌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쁨이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내가 우리 고사미를 바라보는 마음이 예전과는 다른 것 같다. 원망과 아쉬움보다 대견하고 안쓰러운 마음.


아이들 카톡 프사를 자주 들여다보신다는 아이의 담임선생님께서 프사가 바뀐 딸아이에게 "OO아, 너는 잘 될 거야."라는 톡을 주셨다길래 아이의 프사를 찾아보았더니 음악이 바뀌어있었다. 아이가 들어보라며 적극 추천하길래 나는 또 그렇고 그런 잔잔한 음악이겠거니 했는데.


그런데 이를 어쩌나. ㅠㅠ 음악을 듣다가 "다녀오겠습니다"에 목이 메어 버렸다. 매일 돌덩이 같은 가방을 짊어지고 나가는 우리 딸이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말을 거는 것 같아 왠지 모를 미안함에 울음 터지고 만 노래. 스스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이 시간을 버티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울컥해져 버렸다..


노래 가사를 옮겨 적으며 우리 딸과 이 땅의 모든 고사미 그리고 그 돌덩이를 나눠진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내본다.


"oo아, 잘할 수 있어! 넌 잘 될 거야! 응원할게"



행운을 빌어줘     

                                  원필 (DAY6)


자 이제는 기나긴 모험을 시작할 시간

준비했던 짐을 메고 현관문을 열 시간

정이 들었던 집을 등지고서

익숙한 이 동네를 벗어나서

내 발 앞에 그려진 출발선

이젠 딛고 나아갈 그때가 된 거야

앞으로 총 몇 번의 몇 번의 희망과

그리고 또 몇 번의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계절이 흘러 되돌아오면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테니

기대해 줘

나갈까 말까 수도 없이 망설였지만

1도 도움 안 되는 고민 따윈 이젠 그만

사랑하는 내 모든 사람들의

기대와 응원을 등에 업고서

내 발 앞에 그려진 출발선

이젠 딛고 나아갈 그때가 온 거야

.

.

.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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