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고사미는 어떻게 됐을까요?
2025년이 밝은지 벌써 보름 가까이 흘렀고, 지난한 수험생활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수능을 본 다음부터가 이렇게나 길다. 이렇게나 길 줄 알았다면 부지런히 휴가를 알아보고, 성형외과를 예약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잠시 스칠 정도로. 그러니까 이런 일정인 거 알았으니 한번 더 하면 잘할 수 있겠다... 뭐 그런? ㅎㅎ
우리 딸, MZ 아니랄까 봐 트렌드에 참 민감하다. 하도 세상에 둘도 없는 '유교걸'처럼 굴길래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사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웬걸 딱 요즘아이다. 그렇게 트렌드에 밝은 요즘아이답게, 요즘의 트렌드인 '슬기로운 재수생활'을 일찌감치 못 박았다.
하긴 나도 아주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고3 후반 무렵, 말끝마다 '재수재수' 하길래, 저도 얼마나 불안하면 저럴까 싶긴 했다. 그래도 이 공부를 또 하고 싶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나지막이 읊조리던 그 말에 가랑비 젖듯 젖어버렸나, 아이가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하는데도 그다지 실망스럽다거나 하늘이 무너졌다거나 오열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하기야 왜 한번 더 해보고 싶지 않겠나. 쉬운 수능이었다고는 하지만 성적이 평소에 나오던 것만큼 나오지 않은 현역들의 정시는 수능준비에 올인하는 재수생들을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걸 나도 이번에 깨달았을 정도인데.
그런데 아이가 재수를 한다고 하니 갑자기 수능 전날 고2 후배들이 교문 앞에서 정말 열심히 파이팅을 외쳐주던 생각이 났다. 저 아이들은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선배들을 왜 저렇게 열심히 응원할까, 착하다 생각했었는데, 딸아이 왈,
"엄마, 쟤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번에 합격해 주길 얼마나 간절히 원하겠어. 경쟁자 한 명이라도 없애야지."
그땐 피식 웃어넘겼는데 진짜 그런데 어떡하니, 예비 고3들.. 경쟁자 여기 하나 추가되었는데. ㅜㅜ
아직 정시 합격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아이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아침마다 학원에 데려다주는데, 하나둘씩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눈에 띄게 보인다. 나는 3월이나 되어서 시작했으면 좋을 일을 이렇게 미리 시작한다. 학원에 등록하러 갔더니 아이는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어 하고 엄마는 하루라도 늦게 시작했으면 하는 집은 별로 없다며 의아해했다. 그래도 아직 정시 발표도 나지 않았는데 다시 문제집을 편다는 건 좀 안 됐지 싶은데.
그래도 우리 딸, 본인이 하겠다고 시작한 재수생활이라 열심히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믿는다. 성실성 하나는 타고났으니, 그 힘을 믿어보는 거지 뭐. 다행히 수능 끝나고 한 달여 동안 아이는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해보았단다.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언제 이렇게 컸나 싶게 어른이 되어 있기도 했고.
나이 딱 한 살 더 먹었을 뿐이고 작년과는 단 며칠차이일 뿐인데도 고새 어른이 되었나 싶은 게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이다. 수능이라는 커다란 인생의 사건이 바꿔놓은 변화인가.
이제 사춘기 접고 어른의 세계로 갑자기 들어온 딸은 그렇게 내게로 와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아 고마웠다. 알지 않나, 이런 고마움 앞에서는 성적, 수능, 재수 이딴 것들은 별 것 아닌 걸로 보인다는 것을.
지금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 같지만 아마 곧 봄이 되고 여름이 지나면 또다시 100일 앞으로 다가올 그 일 년의 순간순간이 쉽지 않겠지. 그래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연재를 끝내야 한다는 것쯤? ㅜㅜ. 우리 고사미를 키우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고, 여기에 풀어놓으면서 마음도 잘 추슬러진 것 같다. 고사미 엄마가 된다는 건 그렇게 두렵거나 무서운 일은 아니었고, 내가 할 일이 어마무지하게 많을 줄 알았는데 사실 별로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소득은 소득이다. 그만큼 아이가 독립적으로 잘 자랐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약간 관심 없는 엄마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긴 하지만.
무엇보다 언제가 됐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 믿기 때문에 또한 기분 좋게 연재를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열심히 제 글을 보아주신 분들이 저와 나누어가진 이 이야기가 즐거운 한 페이지였길 바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함께 했던 고사미 어머님들 모두 좋은 소식 있으시길 빕니다. ^^
참, 구독자님 중에 "대치동 라이딩"편을 써달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이야기는 번외 편으로 나갑니다. ㅎㅎ
제가 다시 대치동 라이딩을 시작했거든요. 그 살벌한 이야기~ 곧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