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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수능, 제가 체감한 난이도는요.

평이한 수능이었다는데, 주변의 고사미들은 다 어려웠다네요.

by 희지 Nov 27. 2024

시간이 지나가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경험담을 미리 듣고, 과정을 예상하고 시뮬레이션까지 다 해봤다고 해도, 그러니까 그 과정을 다 아는 것 같아도 막상 닥쳐야만 그 때서야 알게 되는 것들. 나에겐 이번 입시가 그랬다.


길게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말하자면 나는 '우등생이자 모범생이,었,던, 초딩딸을 두었던 첫째엄마' 였으니 그 마음가짐이야 오죽했을까.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 그 잡채일터. 나는 진심으로 당장 내일 우리아이가 수능을 봐도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답 없는 엄마였다. 흠...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헛웃음도 안나올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이 글의 첫문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좌절과 반성, 그리고 후회와 절망, 죄책감과 허무로 점철된, 그러니까 한마디로 내려놓음과 받아들임의 서사였다.


2024년 11월 14일. 대한민국의 성인식과도 같은 통과의례의 날.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는, 그냥 고사장에 들어가는 남의 집 자식만 봐도 코끝이 찡해진다는 그 수능날. 손에 땀을 쥐며 자는둥 마는둥 아침이 밝았고, 나도 내 아이도 엄청난 긴장 속에 그 통과의례를 무사히 치러냈다. 아이가 고사장에 들어가는 순간의 느낌이 어떠냐 하면, 마치 엄마 손을 처음 놓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보는 것과 같은 마음이랄까? 그런 아슬아슬한 울컥함으로 아이를 지켜보게 된다. 내가 이렇게 심약했었나 싶게.  


수능 전날, 고사장 발표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긴장감. 하루가 더디 흘러 날이 어둑해지자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평소와 같은 집밥으로 저녁을 먹이고 다음날 도시락 만들 재료들을 체크하고서도 좌불안석이 따로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평소보다 빨리 저녁기도를 가려고 준비하는데 다음날 수능준비에 나와 마찬가지로 부산하던 아이가 갑자기 외출했다가 들어오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턱하니 내미는 것이 아닌가?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우황청심원.


"엄마, 내일 출발하기 전에 먹으래. 지금까지 하나도 안 떨렸는데 엄마땜에 내가 더 떨려~~"


그렇게 티가 났나? 하루종일 종종거린 엄마에게서 흘러넘친 긴장이 아이에게도 전해졌나보다. 딸아이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줄일텐데 하여튼 내가 문제다. 문제.  그래도 그 손에 든 우황청심원을 보니 왜이렇게 마음이 든든하던지. 그래, 긴장은 엄마가 모두 가져갈테니 너는 긴장하지 말고 잘 풀고 나오렴.


수능날 하루도 어찌 갔는지 모르겠다. 긴장하는 엄마들과 함께 성당에서 마련해준 피정에 참여하여 아이들 고사 시간에 맞춰 기도하고, 점심 먹으며 아이들 시험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 나름 내 삶에서 많은 긴장된 순간들을 겪었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식의 수능은 처음이라, 처음답게 떨렸다.


피정이 끝나고 서둘러 고사장으로 향하니 벌써 아이를 픽업하러 온 차들이 겹겹이 학교를 에워싸고 있었다. 주차할 자리가 있을까 싶었지만 운좋게 눈에 띈 자리에 주차를 하고, 비가 쏟아질듯 한없이 흐린 하늘 아래 굳게 닫힌 고사장 철문 앞에 섰다.


누구는 그 철문이 그렇게 야속했단다. 이 시험이 뭐라고 내 새끼를 저기에 가둬놓나 싶었단다. 무사히 고사장에 들어가는 것, 날이 밝자 마자 시작된 긴 시험을 끝내고 어둑해져서야 비로소 열리는 철문을 통해 무사히 나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그런 날. 그 순간에는 시험 성적에 대한 궁금증보다 그냥 아이가 보고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드디어 철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드디어 철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철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얼굴을 보고 우는 아이들이 속속 등장하는 걸 보니 마음이 괜시리 짠해졌다. 9월 모평보다는 어렵고 6월 모평보다는 쉬웠다는, 언론에서 들려오는 전반적인 평가가 무서운 건 그것이 우리아이가 느낀 체감난도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평이한, 난도가 적절한 시험이었다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았단다. 첫시간의 긴장때문이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둠 속에서 만난 딸의 첫마디는"망했어" 였고 나는 "잘했어" 였다. 내 떨림이 너의 떨림의 원인이 되었을까 자책도 해보지만 이미 지난 일.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수능이 끝나고 일주일, 어제까지 계속된 수시 논술고사가 모두 끝나니 이제야 비로소 시험에서 해방되었구나 싶다. 아직 수능 성적표도 나오지 않았고, 정시는 시작도 안했으니 앞으로 입시 주요일정이 첩첩산중인데, 진짜 입시는 지금부터 시작인데도 말이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학교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씀), 고교 학습과정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 졸업만 남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뭔가 해낸 것 같고 뿌듯하고 대견하다. 철부지였던 내가 뭣 모르고 아이를 낳아 무사히 스무해를 길러냈다는 것에도 감사하고, 그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이렇게 무사히 수능을 치르고 대한민국의 성년이 되었다는 것, 그냥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오늘은.


그러니 이 입시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든, 긴 인생에 있어 그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믿고 나는 오늘, 나의 홀가분함을 만끽하련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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