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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14. 2024

복잡다단한 사촌관계

친사촌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아이에게는 3명의 사촌이 있다. 친사촌 1명 그리고 외사촌 2명이다. 외동인지라 사촌의 존재가 더없이 중요하다. 또래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하는 탓에 더 사촌형들에게 집착하는 경향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이대가 같이 놀기 딱 좋고 성별도 같다. 친사촌과 외사촌 모두 아이보다 두세 살 많은 형들이라 금상첨화다. 가까운 지역에 산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나려면 마음먹고 가야 하는 거리에 살기엥 자주 편히 만나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만나서 놀리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는 친구가 없어 풀지 못하는 또래와의 놀이와 소통에 대한 욕구를 형들을 만나서 푸는 편이다. 형들은 또래와 달리 일단 동생이니까 뭘 해도 봐주고 말도 잘 들어주고 무엇보다 배려해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친사촌형과는 전혀 놀지를 못한다. 잘 노는 건 오로지 외사촌형들과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왜 친사촌 형과는 어울리지를 못하는가. 누구의 문제인가.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자주 만나지 못해서 어색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생일, 어버이날 같은 시댁 집안 행사 때는 다 같이 만나려고 하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과 최소한 한 달에 한번 이상은 만나는 편이다. 더러는 외사촌들보다 더 자주 만날 때도 있다. 그런데도 둘은 도통 어울리지를 못한다.


아이는 이 친사촌형과 함께 어울리고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는 눈치다. 옆에 가서 슬쩍 손가락으로 찔러보기도 하고, 어렵사리 학교 이야기를 꺼내며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친사촌형은 약간 귀찮아하거나 도통 별 반응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는 어떻게든 같이 어울려보게 하려고 같이 여행도 다니고 비싼 풀빌라 숙소를 예약해서 초대하기도 했다. 친척 형들과 소통이 되고 어울리는 게 편해지면 또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거라는 기대로 부단히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여행 숙소 비용을 부담하는 건 물론이고 나와 남편은 한 마음이 되어 같이 열심히 놀아주었다. 둘만 놔두면 뭔가 제대로 소통이 되질 않으니 물놀이를 함께 해주는 건 당연하고 우리 집에 왜왔니나 숨바꼭질 등 추억 속 어린 시절 놀이들을 소환해서 함께 놀았다. 함께 놀이를 해주는 우리 같은 어른이 있으면 아이들은 그럭저럭 놀기는 했다.


하지만 둘이 노는 건 거기까지였다. 더 발전이 없었다. 뭔가 잘 안된다는 걸 깨닫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도 시댁가족들과의 여행은 그만두었다. 먼저 제안해오지 않으면 전처럼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여행계획을 짜거나 함께 놀러 다니려고 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함께 놀아주는 어른을 동반하고 놀 수도 없고 이제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면 자기들끼리 놀 수 있는 나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유치원 때와는 달리 아이도 약물치료와 센터치료를 통해 의사소통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 외향적인 또래 친구들의 사회성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원래 성격이 조금 소심하거나 낯을 가리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고만고만해 보이는 수준이다. 상대방이 좀 적극적으로 나오면 아이도 놀이 규칙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으므로 어느 정도 놀기는 한다.


이제 아이도 많이 좋아졌겠다, 둘이 대화도 좀 하면서 놀겠지? 하는 내 마음은 순전히 착각이었다. 여전히 둘은 서로 만나도 데면데면했다. 도대체 이유가 무얼까? 친조카는 외동이긴 한데, 발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말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다. 학급 임원 선거에 나가 당선될 정도로 교우 관계도 좋다. 늘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친구들이랑 노느라 집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며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다. (나는 이런 부분이 가장 부러운데)


그런데 왜 하나밖에 없는 사촌동생인 내 아이와는 만나도 전혀 어울리려고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원인이 내 아이의 부족한 언어구사 능력에 있을 거라고만 단정 지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첫 손주인 우리 친조카를 정말로 많이 사랑하신다. 가끔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도 자식을 낳아보고, 친정부모님이 첫 손주를 향한 마음도 겪어보니 그런 시부모님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가끔은 내 아이는 둘째 손자라는 피해의식이 가끔 드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큰 손주네와 근거리에 살다 보니 더 자주 만나기도 하니 정도 많이 드는 게 당연하다. 친조부님의 사랑을 듬뿍 받다 보니, 친조카도 그만큼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좋아하고 따른다. 어쩔 때 보면 요즘 애 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챙겨주고 자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가끔 시어머니께서 두 사촌 형제를 자극하는 듯한 발언을 하신다는 거다. 동생은 이번에 피아노대회 나가서 큰 상을 받았다더라, 너도 피아노 학원 다니니까 대회 한 번 나가보지 그러냐, 동생은 수영을 꾸준히 배우고 있는데 수영이 정말 좋은 운동이라며 물을 좋아하지 않는 큰 손자에게 너도 한 번 해봐라고 말씀을 하신다. 다른 뜻 없이 동기 부여도 시키고 좋은 교육도 받아보게 하려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은데 친조카는 조금 경쟁의식(?) 아닌 경쟁의식을 느꼈는지 자기도 다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이번 연휴에는 다 같이 만났을 때에는 집에서 야구 경기를 시청하게 되었다. 아이가 자꾸 야구 경기 틀어달라고 성화여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채널을 보다가 야구를 틀어주었다. 작년부터 야구장에 자주 다닌 터라, 아이는 웬만한 야구 규칙을 다 알고 있다. 아빠랑 둘이 보는 시간도 많아져서인지 어쩔 땐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이는 그런 세세한 규칙에 대해 경기를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도 어쩌면 어린애가 저렇게 규칙을 다 파악하고 있냐며 놀라는 듯 반응해 주었다.


반면 친조카는 야구에 별 관심이 없어서인지 야구 재미없다고 다른 것 좀 보면 안 되냐고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는 또 어디서 종이를 가져와서 수학 학습만화에서 배운 이상한 수학 공식 계산법을 써가면서 할아버지에게 세 자릿수 곱셈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큰 조카는 노는 날에 왜 수학 공부를 하냐며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다음 날 시어머님이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큰 손자가 어제 우리가 가고 나서 동생이 싫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자기는 모르는 야구 규칙을 너무 잘 알아서라고 했다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일단은 "동생을 싫어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는 것이고, 싫어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야구 때문이라는 것은 추가적인 정보일 뿐이었다.


둘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내 아이의 언어 문제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때 처음하게 되었다. 큰 조카도 외동이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사촌동생이 나타나서 자꾸 주목을 받으니 그게 싫은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아이는 그래도 형이랑 놀아보고 싶은지 자꾸 형 주변을 배회하고 맴돌았지만 결국 어울리지 못했다.



반면 친정식구인 외조카들은 사촌동생인 우리 아이를 끔찍이도 예뻐하고 좋아한다. 자주 만나고 싶어 하고 만나면 이 놀이, 저 놀이해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이가 어릴 때는 옆에서 소통하는데 어른인 우리가 나서서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애들끼리 안전한 환경에 풀어두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잘 논다. 형들만큼 운동을 잘하지도 못하고, 형들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자주 실수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원래 막내니까, 어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면서 여러 번 설명해 준다. 정말 외조카들이랑 웃고 떠들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들 셋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해괴망측한 생각이 들 정도로 즐겁게 논다.


이러니 아이는 늘 형아들 언제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보고 헤어질 때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우는 게 통과의례다. 형아들이 있으면 엄마도, 아빠도 필요 없고, 짐까지 싸고 가서 며칠을 자고 오고 싶어 한다. 이런 형아들을 자주 보고 싶어 하지만 큰 조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원 스케줄도 더 빡빡해지고 바빠져서 시간 내기가 힘드니 아쉬울 따름이다.


양가의 비슷한 나이대의 조카들이 있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조카네는 외동이 아니고 형제라서 더 사회성이 발달되어서 그런 걸까. 그러기엔 친조카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잘 지내는 걸 보면 사회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포인트다. 사는 거리도 더 가깝고 친조카와 잘 논다면 더 자주 만나서 놀게 하고 싶은데 참 아쉽다.


언제쯤 이 아이들은 대화도 나누면서 어울리게 될까. 평생 이렇게 서먹서먹 어색하게 지내려나. 어차피 둘 다 외동이라 친형제처럼 친하게 지낸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게 할 수도 없으니 참 안타까울 노릇이다.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면 자연스러운 관계가 될지도 모를 일이고.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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