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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21. 2024

괌은 뭐 옆집 개 이름이니

등꼴 빠지는 소리 좀 그만

우연잖게 아이랑 해외여행을 해마다 한 번씩 총 두번을 갔다.

나 자랄적에는 제주도 여행 가기도 참 어려웠는데, 이제 열살밖에 안 된 애가 해외도 두 번이나 가고, 참 무슨 호강이냐 싶어서 내 자식이지만 부러울 정도다.


주변 지인이나 SNS를 보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자주, 더 오래, 더 먼 나라들을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사람이 많다. 그에 비하면 아주 우스울 정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라떼는 말이야.. 기준에서 보면 내 아이 포함해서 요즘 아이들은 참 복 받았다. 만약 코로나라는 팬데믹이 없었다면 더 셀 수도 없이 많이 나갔을텐데.



아무튼 이렇게 해외를 어렵지 않게 방학마다 여행으로 다녀오고 나니, 아이는 해외여행 가는게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착각하는듯 하다. 아무리 내가 큰 마음 먹고, 아껴둔 돈 모아서 여행 다녀오는거라고 여러 번 붙잡고 설명을 해줘도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다낭 여행을 다녀오기가 무섭게 자꾸 세계 지도를 보면서 다음번 여행지는 어디를 갈거냐고 묻는다. 어디를 가고 싶냐고, 언제 갈거냐고, 이번에는 며칠이나 있을거냐고 묻는다.



세상은 넓고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또 다른 나라가 존재한다는걸 알고 호기심이 생겨서 그런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아직 어리지만 글로벌 마인드(?)도 좀 함양된것 같고 아무래도 해외여행이 득이 되었지 실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ADHD 증상이 있는 아이가 자꾸 이런 행동을 보이니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ADHD 아동들은 뇌의 도파민 수치가 낮은 만성적인 갈구 상태에 있다. 도파민은 운동활동, 동기부여, 보상추구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ADHD아동들은 도파민 수치가 낮아서 신경계가 스스로 신경절달물질을 다시 채워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한다.

<신경다양성교실>




혹시 해외에 여행을 가는 것이 아이의 도파민 수치를 충족시켜주는 또 하나의 자극 대상이 되버린건 아닐까?

여행을 가기전에 그 설레임과 준비 기간에 행복해하던 아이를 생각하며 나도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동참하긴 했지만 조금 과하다 싶긴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여행 일정 스케쥴을 보면서 읽고 또 읽고 나중엔 다 암기해서 툭 건드려도 달달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


나보다 더 일정을 빠삭하게 꿰뚫고 있어서 일정표가 필요없어질 정도가 되버린거다. 내 생각에 이 녀석은 비행기를 타고 떠나서 몸소 여행중이던 그 순간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에 더 설레임을 느끼고 도파민에 자극을 받아 행복해했던것 같다.



ADHD 특성상 특정한 자극에 심각하게 몰입하고 빠져들어서 집착하게될 가능성이 다분한데 그 자극대상이 게임, 알코올, 마약류처럼 인생에 해를 끼칠 종류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나마 어릴 때에는 부모의 통제 영약하에 있기에 세계지도, 지하철 노선도나 보드게임 같은 것들에 집착할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종류들은 건전한 영역에서 자극을 추구하는 편이라 볼 수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자극추구 대상이 그나마 돈이 많이 드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시각적 자극이 강한 그림이나 책, 유튜브 영상들 위주였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자극 대상이 해외여행 혹은 국내 장거리 여행, 키즈카페에서 성대한 생일파티, 워터파크 가기, 닌텐도 같은 범위로 나이를 먹고 아이의 경험치가 확장되면서 스케일이 커지고 있다. 주로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것들에서 도파민 자극이 충족이 되는 좋지 않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 몇 번 가보더니 대한항공, 아시아나, 티웨이 등 각 항공사의 로고를 언제 보고 외웠는지 집에 와서 스케치북에 그리고 있고 자꾸만 비행기 내부 좌속 그림을 그려댔다. 추가 설명 차원에서 우리가 탄 좌석은 기본적인 이코노미석이고 비즈니스, 퍼스트 좌석처럼 더 넓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좌석은 비행기 앞 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날부터 비즈니스 타령이 시작되었다. 그걸 알려준걸 후회했다. 계속 자기도 비즈니스, 퍼스트 타보고 싶다면서 정확히 가격은 얼마이고 어떻게하면 자기도 탈 수 있냐고 쫒아다니면서 물어봤다.


돈은 뭐 땅 파면 그냥 나오는줄 아니?

 


어려서부터 엄마가 이런 소리를 하는게 가장 싫었다. 내가 엄마가 되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절대로 아이 앞에서 돈없다타령, 너때문에 돈많이 들어가서 죽겠다타령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 다짐을 그럭저럭 지켜낼 수 있었는데 자본의 맛을 알아버린 아이의 끝없는 자극 추구 증상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비즈니스타고 괌여행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그럴 돈이 어딨냐고, 너 일본가고 베트남 다녀온건 공짜로 다녀온줄 아느냐 다 아빠가 뼈빠지게 일해서 번돈으로 다녀온거라고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중에 너가 돈 벌어서 가라고, 어려서부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비슷한 패턴의 말들을 아이에게 쏟아내는 나를 발견했다.


아, 나도 참 별 수 없는 엄마구나 하면서 절망의 감정도 스쳐지나갔다. 그토록 하지 않겠다 다짐했던 일들을 결국 아이에게 쏟아내버리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렇다고 해외여행 다녀온지 한달도 채 안된 아이의 괌여행은 언제갈거냐는 타령 앞에서 도무지 그보다 더 합리적인 설명을 할 재간이 없었다.



여행을 가는건 좋은데 다녀오면 이렇게 후폭풍이 오래간다. 보통 아이들도 그렇긴 하겠지만 ADHD를 앓는 아이는 그 양상이 조금 남다르다. 주의전환력이 약해서, 혹은 회복탄력성이 약해서라고 볼 수도 있다. 하나의 이벤트가 끝났으면 이제 깨끗이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다. 그래서 자꾸만 또 다른 여행을 검색하고, 알아보고, 언제 또 갈거냐고 나를 재촉한다. 처음에는 왠만큼 받아줬는데 이게 일주일, 이주일이 넘어가니 이제는 지쳐가고 있다.



해외여행 당분간 갈 계획 없다고, 간다고 해도 이제 2년 후에나 갈 수 있으니 그 때 본격적으로 계획 세우면 된다고, 천천히 절약하고 열심히 벌고 돈 모아서 가자고 하니 그럼 자기 통장에 있는 돈으로 비즈니스도 타고 여행도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 녀석이다. 후.. 할머니 할아버지께 용돈 받아 바지런히 모은 그 소중한 돈을 여행 한 번 가겠다고 홀랑 다 쓰겠다고? 조금씩 더 모아서 너 대학가고 독립하거나 장가갈 때 큰 일에 써야할 돈을 한 순간에 탕진하겠다는 그 마음가짐이 괘씸하다. 그래도 참자. 아직 어리니까 철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마 그동안 내가 용돈 관리하는 법이나 경제 교육을 소홀히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린이 경제교육 책이라도 사서 읽어야하나.


생일파티도 분명히 작년까지만 크게 하고 올해에는 간단하게 가족끼리만 하자고 약속했는데 막상 올해 생일이 다가오니 의견이 달라지셨다. 꼬옥 키즈카페에 가서 친구들이랑 하고 싶다기에 괌 여행 타령 안하는 조건으로 해주기로 했다. 대신 케익은 안 살거고 대신 초코파이 쌓은 케익으로 초 꽂아서 하겠다고 하니 받아들인다.


아직은 그래도 어린 축에 속하는 나이라 그렇지 초등 고학년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앞으로 얼마나 더 스케일이 커질까. 벌써 눈 앞이 캄캄하다. 그 전에 싹을 잘라놔야지 안되겠다.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있고 너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할 수 있는것, 할 수 없는 것은 정해져 있다고 끊임없이 주입해야겠다.



엄마가 부자가 아니라 미안하다. 

하지만 이게 너를 위한 길이고, 나를 위한 길이야. 

원하는걸 다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혹독히 배워야하니까. 

지금부터라도 똑똑히 배워나가자고. 알겠지 아들?




<이미지출처 goolgle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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