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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Feb 28. 2024

그놈의 술래 좀 없는 세상

몇 년째 술래 트라우마

방학 동안 아이는 뜻하지 않게 동네 인싸 친구들과 조금 친해졌다. 놀이터에서 만나서 같이 자전거도 타고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도 먹으면서 같이 어울렸다.


나는 아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이와 친구들의 관계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놀이터에 직접 나가지는 않더라도 우리 집 현관에서 고개를 쭈욱 빼면 놀이터가 보인다. 쿨하게 나가서 놀라고 아이를 내보내놓고 한참 동안 그곳에 서서 아이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하염없이 바라보곤 한다.


한 시간 정도는 친구들과 큰 갈등 없이 노는 것 같긴 한데, 나는 아직도 아이가 다른 애들이랑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어울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의심했다. 그 외향적이고 활달한 동네 인싸 친구들이 내 아이가 만만해서, 데리고 놀기 좋으니까, 시키는 데로 별 말없이 하니까, 등등 불순한 의도로 같이 노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끝없이 들었다.


어떤 또래 그룹이든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다.(대놓고 눈에 보일지도 모르고) 여자아이들이야 그 정도가 덜하지만 남자아이들은 굉장히 그 선이 분명하다. 가장 운동을 잘하고 신체조건도 좋고 인기도 많은 아이가 사회적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각자 아이들의 신체조건이나 기본적인 성향에 따라서 그 아래층 피라미드가 완성된다고 본다. 내 아이는 그 피라미드에서 가장 낮은 층 혹은 운 좋으면 그 위층 정도에 위치할 것 같다.(엄마지만 이럴 때 나는 굉장히 객관적이다.)


그날도 친구들의 연락을 받고 신나게 흥분된 기색으로 나갔던 아이는 나간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울상이 된 표정으로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한테만 술래 시켜서 기분 나빠서 왔다고 했다. 나는 잘했다고 말해주고 조용히 안아주었다. 상세한 설명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그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을 유치원 시절부터 몇 년째 너무나 많이 경험하고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부족하고 언어적 유창성이 떨어지고 게다가 대근육 발달 지연이라 운동신경도 서툴러서 달리기가 느리다 보니 우연찮게도 아이는 유독 술래에 자주 걸렸다. 아니 한 번 걸리면 술래가 도저히 바뀌지 않을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아이만 술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는 그래도 누군가와 어울린다는 게 좋아서 술래를 하면서도 뛰고 뛰고 또 뛰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그렇게 지쳐가는 아이를 보며 도망 다니면서 즐거워했다.


보통의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아직 저 친구가 술래 너무 오래 해서 힘드니까 이제 좀 돌아가면서 하자라는 협동심 호는 양보심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저 술래를 따돌리면서 뛰어다니는 게 재미있을 나이다.


보다 보다 안 되겠다 싶으면 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술래를 바꿔달라고 부탁한다든가, 이제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하라고 공정함을 내세워서 상황을 바꾸려고 했다. 나 같은 어른의 개입은 유아기부터 초 저까지는 어느 정도 먹힌다. 그런데 이제 열 살이 되니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끼어들어서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게 참 어렵고 민망하다. 사실 열 살 정도면 엄마들이 나와서 지켜보는 경우도 아주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나는 아직도 아이를 보통 친구들과 놀도록 풀어놓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떨린다. 멀리서나마 자꾸 확인하고 지켜보고, 가끔은 직접 나가서 지켜보기도 한다.


술래를 너무 오래 시키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아이는 어느 순간 술래트라우마 같은 게 생겨버렸는지 이제는 술래에 걸려서 조금만 하게 되어도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술래에 걸리는 즉시 집에 간다고 하고 그냥 와버리는 것이다. 친구들은 뒤에서 "와, 쟤 진짜 이기적이야. 자기 술래 걸렸다고 집에 가버리네."라고 말한다. 그런 말도 전혀 괘념치 않고 집에 와버리는 아이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하루 이틀 그 친구들에게 아예 놀자는 말이 없었다.


나는 이중적 감정에 시달렸다. 아이가 친구들과 나가 놀지 않으면 무슨 일이 발생하지 않으니 마음이 일단 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언제까지 회피하기만 하고 어울리지 못하면 점점 고립되는 건 아닐까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나가서 놀든, 그러지 못하든 어떤 상황에도 나는 불안하다. 어느 상황에서도 불안할 거면 차라리 나가서 어울리다가 상처를 받더라도 같이 노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아무 연락이 없었는데 아이가 먼저 연락해서 같이 놀자고 했다. 하필 그날 따라 놀이터에 노는 또래 남자아이들이 많았고 술래 잡기를 변형한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옆단지에 같이 살았던 친구도 보였다. 그 친구는 유치원 때부터 꼭 내 아이의 킥보드나 자전거를 허락도 없이 뺏아 타곤 해서 경계해야 하는 녀석이다. 아이가 내 거니까 타지 말라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타고 다녀서 내가 개입해서 몇 번 저지시킨 적도 있을 정도다. 이제는 그때보다 좀 컸으니까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겠지 싶었는데 멀리서 보니 또 아이의 자전거를 자기 것인 마냥 즐겁게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뺏긴 것 때문은 아니고 다른 잡기 놀이를 하다가 아이는 결국 또 감정이 폭발해 버렸고 집에 돌아왔다. 다시는 그 친구들이랑 놀지 않을 거라면서 엉엉 운다. 그리고 하루빨리 다른 동네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어서 부동산에 우리 집을 내놓으라고 성화다. 안 그래도 이사를 고려하고 있긴 하지만 일이 년 후의 계획이고 아직은 때가 아닌데, 엄마아빠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는지 이사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고 다시는 그 친구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상처받을 거면 놀 필요가 없고, 애초에 너랑 성향도 잘 맞지 않는 친구들이라고 하니 아이도 수긍하는 듯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학원까지 다녀왔는데 그 친구들에게 또 놀자고 연락이 왔다. 다행히 자전거 뺏어 타는 그 아이는 없었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나가서 놀고 싶다며 자존심도 없는지 신나게 나가서 놀았다.


다음 날에도 또 그 친구들과 놀았는데 아이가 울면서 집에 들어온다. 놀다가 한 친구에게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신발바닥으로 얼굴을 찼다고 하는데, 세게 맞은 건 아니지만 아이가 상당히 놀란 듯했다. 걔네들이랑 다시는 놀지 말라고, 엄마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고 그냥 집에 데리고 있으려다가 상황 파악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놀이터로 나갔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상황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때린 아이도 자기가 좀 과했다는 것은 인정하는 느낌이었다. 키 크고 덩치만 컸지 아직 애는 애다. 내가 잘못된 점에 대해서 조목조목 설명했더니 알아듣는 것 같았고 사과할 마음도 있다고 했다. 아이랑 그 친구를 즉각 그 자리에서 화해시켰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또 신나게 논다. 내 아이지만 참 줏대도 없다 싶긴 하지만 한편으론 얼마나 친구랑 놀고 싶으면 저럴까 싶다.


친구랑 어울리고 싶지만 아직은 감정조절도 어렵고 갈등 상황에 편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미숙하다. 그래서 자꾸만 상처받을 일이 생기고, 친구들로부터 오해도 산다. 그런 모습을 거의 매일 같이 보고 있자면 나도 참 속상하고 정말 물에 내놓은 아기처럼 놀이터에 내보내놓고도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성이란 결국 이런 식으로 배워가야 하는 게 아닐까? 언제까지 내 품에 끼고 아이를 키울 수도 없고 점점 학교, 학원과 같은 외부환경에서 보내야 할 시간은 늘어날 텐데 그러려면 또래와 어울릴 수밖에 없다.

갈등이 일어나는 게 무섭다고, 상처받는 거 보는 게 힘들다고 언제까지나 회피하고 숨어버리면 되려 아이에게서 성장의 기회를 박탈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울고, 싸우고, 상처받는 아이를 보면 내 마음도 같이 아프지만 견뎌내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부족한 사회성이기에 더 많이 상처받고 더 속상할 일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라도 키워가야 한다.


아이들 놀이에 술래가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지만, 술래가 없는 놀이라는 게 몇 개나 될 것이며, 또 술래가 없으면 아이들 입장에서 그 놀이라는게 얼마나 노잼이겠는가.. 아무쪼록 술래 트라우마를 언젠가 극복하기를, 아이의 몸과 마음속에서 그런 힘이 생겨나기를 염원해 본다.




<이미지출처: Unsl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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