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Mar 06. 2024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한 원죄

다 내 탓이오

이번 연휴에는 또 무얼 하며 보내나 며칠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이제 아주 어린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등 고학년도 아닌 10살 어린이를 데리고 뭘 하면 알차게 연휴를 보낼 수 있을지 연구를 해봐도 별다른 답이 안 나왔다.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기엔 좀 시시해할 듯하고, 아직 날이 추워서 밖에서 놀기에도 애매하고, 근처 놀이공원은 지금껏 수백 번 간 것 같고.. 도통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남편에게 뭐 할지 고민 좀 해보라고 왜 맨날 나만 연휴 계획 세워야 하냐고 살짝 짜증도 냈다.


그러던 찰나에 조카네에서 연락이 왔다. 큰 아이가 중학교 입학 준비를 해야 해서 바쁜데 둘째 조카를 이틀 정도 데리고 놀아줄 수 있냐고 말이다. 그야말로 대환영이었다. 아이가 정말 너무너무 좋아하는 사촌 형아인데 우리 집에 와서 이틀 논다고 하면 별다른 연휴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다. 어디가 됐든 간에 안전하고 좀 놀만한 장소에 데려다 놓으면 아이들은 그야말로 신나게들 뛰어논다.


둘째 조카도 그 집에서는 막내라 아직 철도 없고 징징대는 습관도 있긴 하지만, 막상 우리 집에 오면 본인이 형아이다 보니 막내티도 내지 않는다. 사촌형이 온다는 소식에 며칠 전부터 아이는 설레고 흥분되어서 밤잠까지 설쳐가면서 무얼 하고 놀지 고민을 했다.


하필 날씨도 춥고 비가 와서 별달리 할 말한 게 없었다. 조카랑 아이를 데리고 평상시에 즐겨 가던 키즈카페를 데리고 갔다. 아주 어린아이들을 위한 키즈카페는 아니고 커다란 트램펄린이나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도 있어서 초등 남자아이들이 놀기에 알맞는 곳이었다. 초등 아이 둘을 키즈카페에 풀어놨더니 세상에 손이 가는 게 하나도 없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돌아다니고, 눈치껏 줄 서서 기다리며 하고 싶은 놀이기구를 하나씩 하면서 노는 것이다.


외동인 아이 혼자 데리고 오면 끝없이 같이 붙어서 데리고 다니면서 잘 노는지 살펴봐야 하고 같이 놀아줘야 하는데 형 한 명 붙여줬더니 이렇게나 여유로울 수가 없다. 다만 엄마를 찾는 때라고는 목마르다고 물 사달라고 할 때뿐이었다. 아이들끼리 잘 노니 나는 심심해질 지경이었다.


아이가 또래 친구들이랑도 이렇게 별 탈 없이 잘 논다면, 친한 친구들 데리고 오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렵다. 조카 찬스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인 것이다.


다음 날에는 저번 주에 갔던 새로 생긴 찜질방에 데리고 갔다. 우리 가족 셋 이만 갔을 때에는 찜질 좀 하다가 먹을 것 좀 먹고 바로 사우나로 간 게 전부였다. 그런데 사촌형이랑 같이 오니 둘이서 찜질방 전체를 탐험하고 돌아다니면서 장난치고 웃고 떠드느라 시간이 금방 간다. 우리가 해준 건 중간중간에 배고프다 할 때 간식거리만 사다준 것뿐이었다.


혼자 왔을 때는 키즈 놀이 시설에는 가보지도 않았는데 형이 있으니 당당하게 들어가서 둘이 곧잘 노는 모습이 신기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라고 했다.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한참을 놀다가 들어온다.


아이가 혼자 있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형이 한 명 있으니 너무나 모든 게 쉽고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이래서 다들 형제를 낳으라고 하는 건가. 둘이 있으면 이렇게나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고 내 손 갈 필요 없이, 같이 놀아줄 또래를 찾아 나설 필요 없이 잘 노는데. 아이는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틀 내내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날 새가 없다. 집에 와서도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보드게임과 장난감을 가지고 둘이서 웃고 떠들고 논다. 다만 집이 조금 시끄러워서 단속시켜야 한다는 점,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인 조카를 위해 음식을 좀 신경 써서 대접해주어야 한다는 점 등 몇 가지 귀찮은 것들만 빼면 그야말로 완벽했다.


남편은 보통 항상 퇴근이 늦어서 나랑 아이만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다. 티비나 아이패드도 최대한 자제시키는 편이라, 솔직히 둘이서 뭘 하며 시간을 죽여야 하나 연구할 때도 많았다. 일부러 마트를 데리고 다니면서 장을 볼 때도 있고, 도서관에도 자주 데리고 갔다. 운동도 하루 이틀이지 날이 궂거나 그날 학원 일정에 운동이 있으면 아이는 엄마랑 운동하러 나가기 싫어했다.


어쨌거나 형아와 이틀간의 행복한 동행은 끝이 났고 조카를 집에 보내야만 했다. 그때부터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형아 이제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아이는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계속 울다 말다를 반복했다.


형아들이랑 같이 있고 싶다고, 계속 놀고 싶다고 징징대면서 억지를 쓴다. 처음에는 좀 받아주다가 나중엔 지쳐서 억지로 떼어내느라 혼을 쏙 뺐다.


"이제 곧 개학이니까 형아들도 학교 가야 하고, 너도 이제 개학 준비 해야지. 다음에 또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 약속할게."



"어차피 저는 학교에 친구가 없어요. 학교 가기 싫어요.. 형아들이랑 계속 있고 싶어요.."



아이의 말 한마디에 온 집안에 순간 침묵이 찾아온다.

친구가 없어서, 학교가 싫다는 말에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해줄 말을 찾지 못해서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였다.


말은 못 했지만 가족들 모두가 마음 아파했다. 학교에 가봤자 같이 어울릴 친구를 사귀기가 힘드니, 같이 잘 놀아주고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형아들이 너무 좋아서 헤어지기 싫다며 우는 아이를 달랠 방도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감정이 터질 대로 터져서 조절이 안 되는 아이를 데리고 합리적인 설명 따위 먹히지 않을 것 같아서 별 말없이 반강제로 데리고 나와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더 가관이었다. 엄마 아빠보다 숙모, 외삼촌이 더 좋다고 형아들 집에서 살고 싶다며 왜 못 사는 거냐고 더 억지를 쓰면서 울기 시작했다. 와.. 정말 할 말이 없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기껏 가끔 만나는 친척들을 엄마, 아빠로 바꾸고 싶다고? 엄마 가슴에 정말 대못을 박는구나 싶으면서도 오죽 형아들이 좋으면, 헤어지기 싫으면 아무 말이나 해댈까 싶어서 아무런 대꾸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울며 징징대던 아이는 제풀에 꺾여 그 자리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10년이나 키웠는데 말도 안 통하고 억지만 쓰는 아이의 모습에 화도 나고 답답했는데 막상 울다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짠한 마음이 든다.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형을 못 만들어줘서, 아니 동생을 못 만들어줘서.. 

비슷한 나이 또래의 형제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울며불며 사촌형아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10년 터울 이상 나는 동생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내가 정말 둘째라는 자녀를 원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첫째의 욕망 때문에 새 생명 하나를 더 생산한다는 것 또한 함부로 할 짓이 아니다.


가끔은 육아라는 고행길의 참맛을 깨닫지 못했던 시기에 한 두 살 차이 나는 동생을 만들어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다고 둘째를 가지지 않은 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느린 아이 하나 키우는 일만으로도 여태 충분히 힘들고 버거웠다. 사촌들이랑 잘 노는 모습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언젠가 저도 외동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적응할 날이 오겠지.





이전 25화 그놈의 술래 좀 없는 세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