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첼쌤 Mar 13. 2024

엄마 뜻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의 함정

생각지도 못한 반전

엄마표 영어로 성공적으로 아이들 교육 잘 시켜놓고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은 엄마표 영어나 자녀 교육 성공 비법에 관한 책을 낸 저자들이다. 워킹맘도 있고 전업주부도 있고 어쩔 수 없이 경력이 단절된 분들도 있고 다양한데, 내 눈에는 전업주부였던 분들이 더 많이 보인다.


사실 아이들을 다 키워놓는다는 게 대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 대학 입시를 끝낸 시점인지, 취업을 시킨 시점인지, 시집장가 잘 보낸 시점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보통 자녀교육계에서는 대학 입시를 성공적으로 끝낸 시기인 20살 전후를 1차 자식 농사 마무리 시점으로 보는 것 같다.


자신만의 열정과 비법으로 자식을 잘 교육시켜서 소위 SKY 명문대입학에 성공한 엄마들을 나처럼 더 어린 자녀를 키우는 초보 엄마들은 우러러보게 되는 것 같다. 대체 어떻게 자식 교육을 했길래 영어도 집에서 가르치고, 극하다는 사춘기를 지나 입시까지 훌륭하게 치러낸 걸까.


궁금하다. 알고 싶다. 그 분들의 깊은 지혜와 정보를 그대로 물려받고 싶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입시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그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어제는 추천 영상에 굉장히 흥미로운 제목이 올라왔다.

"엄마 뜻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의 치명적 문제"라는 제목이었다.


이 제목을 보고 도저히 클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엄마 뜻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라서 그렇냐고? 전혀 아니올시다. 내 아이는 어려서부터 여태까지 도통 내 뜻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가 아니다.


발달검사를 위해 병원을 데려간 건 4세 후반이었다. 그때부터 문제의 시작은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아이의 말과 행동, 눈빛, 관심사 등에서 적지 않은 부정적 신호가 있었다. 나는 단지 아기를 처음 키워보는 엄마라 그 부정적인 싸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튼 처음 병원에 데려간 그 시점 이전에도, 그 후에도 내 아이는 참말로 내 뜻대로 키우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말이 잘 트이지 않았고, 언제든 제 뜻대로 안 되면 길바닥에 드러눕고 악을 쓰고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을 발로 차고 내 머리끄덩이를 잡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았다. 왜 진작 아무도 애 키우는 게 이토록 힘든 건지 말해주지 않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내 아이가 좀 특별해서(?) 그런 거였지, 보통 아이들은 이 정도로 엄마를 힘들게 하며 자라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알고 얼마나 억울했는지 모른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엄마 뜻대로 자라주는 아이들 말이다.

신생아기와 멋대로 앞만 직진하며 뛰어다니는 영유아기를 지나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유치원생 정도가 되면 육아 강도가 한층 수월해진다. 그런 아이들은 안정된 유치원 생활을 하면서 유아기를 탈없이 잘 보내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학교에 입학하면 엄마들의 사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론 유아기부터 이미 화려한 사교육계에 몸 담고 양질의(?) 교육을 받는 특정 동네도 있다. 평범하게는 보통 초1부터 기본적으로 예체능 학원 한 두 개와 학습지, 영어학원을 시작하는 분위기다. 이때부터 보면 정말 엄마가 짜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모든 스케줄을 소화하는 아이들이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별 저항 없이 잘 따라오고 어느 정도 아웃풋도 보이니까 엄마는 계속 시키게 된다. 아니 더 시킨다. 그렇게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라간 초등고학년, 중학생 자녀들을 보면 하나같이 공부도 잘한다. 영재원에도 어렵지 않게 합격하고, 특목중에도 들어간다.


한 번은 그 지인 중 한 명이 나에게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특정 영역 학업 공부를 어려워하고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 대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래도 공교육계밥 좀 먹었고 다양한 학생들을 접한 경험이 있으니 생각지 못한 문제에 내가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한 것 같았다.


영어, 수학 3년 선행을 하는 아이인데 영어 과목에서 리딩, 리스닝은 3년 앞선 수준으로 나오는데 테스트 결과 영문법이 고작 1,2년 선행 수준밖에 안 나와서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었다. 지인의 목소리는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우울했다.


"또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해서 여태껏 또래의 발달 단계를 목표로 잡고 열심히 치료와 공부에 매진했던 나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이거였다.

"그 정도면 어엄청 잘하는 거 아니야? 아니, 문법 좀 부족하면 어때요. 리딩, 리스닝은 3년 이상 앞지르고 잘하고 있잖아. 문법은 원래 어렵고 완벽하게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어차피 수능에서는 문법 1문제 나오는데 뭘 그렇게 목숨 걸면서 애를 잡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지인에게는 그게 일생일대의 고민이었다. 학원을 옮겨야 되느냐, 기존 학원에 계속 보내야 하느냐, 아니면 없는 시간과 돈을 짜내서 같은 과목 학원을 더 추가해야 하느냐 하는 굉장히 복잡한 결정 앞에 놓여 있었다.


한 줄기 조언을 바라면서 아이의 공부 진도와 학습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비장해졌다.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의미 있는 조언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법과 라이팅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해야 실력이 오를까 머릿속에 한창 정리했다.


그러면서 나온 내 첫마디는 이렇다.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사실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오는 아이를 안 키워봐서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뭐 어쩌고저쩌고이러고.. 하면 될 거 같아요.."



영유아기 발달 단계와는 관련 없는 특정 과목 진도 상황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조차도 나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말을 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남의 아이에 대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말할 수 있는 처지인가 곱씹었다.


마음속 깊이 나는 부러웠고 열등감이 있었던 것이다. 엄마 뜻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에 대한.

대체 그런 아이를 키우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못 견디게 궁금한 적도 있다.






그런 내가 우연찮게 "엄마 뜻대로 따라와 주는 아이의 치명적 문제"를 보게 되었을 때의 그 호기심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 인플루언서의 요지는 이러했다.


애가 내 뜻대로 따라와 주는 게, 잘 크는 게 결코 좋은 게 아니다.
왜냐하면 내 뜻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그걸 경계해야 한다.
내 뜻대로 잘 컸는데 이게 등 뒤의 칼을 꽂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뜻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참 동안 되뇌었다.

그렇구나.. 그렇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내가 공부 천재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아는 것도 아닌 내가 자식에게 뜻을 품었을 때.. 그 뜻이 옳지 않다면..?


보통의 정상발달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사교육의 범위와 한계에 대해서 고찰해 볼 수 있는 명언이다.


나에게는 부족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던져주었다.

아이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고, 그로 인해 아이 스스로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서 빨리 아이 발달이 올라왔으면 좋겠고, 좀 평범한 아이들처럼 사고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아이의 모습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 안에서 발휘되는 능력도 있고, 장점도 있고, 보석 같은 재능도 있을 수 있다. 자꾸만 그 모습을 희석시키고, 하루빨리 제거해 없애버려야 하는 종양처럼 여기는 내가, 내 뜻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내 뜻을 거스르고, 아이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자꾸 드러내려고 할 때, 자기주장을 하고, 내 말을 안 듣고 반항하고 떼를 쓸 때, 너무 분노하고 화내지 말자. 아이는 지금 온몸으로 자기가 살아있음을, 생명력을 내뿜는 거니까.


엄마 말 잘 들어서 성공한 위인도 있지만, 엄마 말 안 들어서 성공한 유명인도 많지 않을까. 애가 맨날 속 썩인다고, 내 말을 통 안 듣는다고, 애 키우는 거 힘들어 죽겠다고 불평하지 말자. 아이는 본래 부모 실망시키는 게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자.








이전 26화 형제를 만들어주지 못한 원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