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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08. 2023

ADHD 원인은 환경 탓? 유전 탓?

어느 쪽이든 결국 다 내 탓?

요한 하리 작가가 쓴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었다. 집중력 위기의 시대에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에 관한 내용이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요즘 같은 시대에 실행하기 무척 어려울법한 대단한 시도를 했다고 소개한다. 자신의 집중력이 점점 나빠지고 산만해지는 이유가 과도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스스로에게 극단적인 실험을 강행했다. 그 실험이란, 인터넷과 와이파이, 스마트폰과 같은 모든 종류의 스마트기기 사용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어느 작은 외딴섬지역에 3개월간 들어가서 철저히 인터넷으로부터 차단된 생활을 했다.


저자는 전화 연결만 겨우 될 수 있는 구식 휴대폰만 하나 구해서 작은 마을에 들어가 노트북과 스마트폰 없이 사는 삶을 직접 체험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단한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스마트 기기의 폐해를 몸소 경험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자기 자신을 과연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을까.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허락된다고 해도 별로 해보고 싶지 않은 실험인데, 저자는 해냈다.


스스로에게 적용해 본 이런 3개월간의 실험과 그 후에도 개인적인 노력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왜 현대인들이 집중력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해 준다.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흥미로운 주제라서 집중해서 읽었다. 흥미롭게 읽는 중에 나를 굉장히 자극하는 챕터를 맞닿뜨리게 되었다. 그 챕터의 제목은 바로 "잘못된 ADHD 진단 - 유전자 탓을 하는 동안 우리 아이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 챕터의 제목을 보자마자 심장이 내려앉는 듯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앱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의 심각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ADHD라는 내 아이의 진단명을 보게 되니 왠지 모를 반가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게다가 잘못된 ADHD 진단이라니.. 더더욱 나의 구미를 당기는 제목이었다. 그 부분부터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글자 한 토시도 빼놓지 않고 읽게 되었다.


지난 20년간 우리는 지나치게 단순한 이야기에 이끌렸다. 바로 아이들의 집중력 문제가 주로 생물학적 장애의 결과라는 것이다. 2003년과 2011년 사이에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의 진단이 미국에서 43퍼센트 증가했다. 현재는 미국 청소년의 13퍼센트가 ADHD를 진단받을 정도이며, 그중 대다수가 강력한 각성제를 처방받는다. 오늘날 각성제 처방 시장은 최소 10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
미국에서는 주로 폭발적인 ADHD 진단에 대해 개인의 유전자와 뇌에서 문제가 발생해 나타나는 질병이며 각성제를 복용해 치료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도둑맞은 집중력, 요한 하리>


아이가 문제 행동이 심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면 "아들이 유전적으로 다르고 사람들 대부분과는 다른 종류의 뇌를 갖고 있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탓이 아니다, 당신은 연민을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해결책이 있다, 그것은 각성제인 리탈린을 처방받는 것이다."라는 진단과 위로 아닌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요한 하리는 ADHD가 주로 각성제를 통해 해결해야 할 유전적 문제라고 믿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수의사로부터 ADHD 진단을 받은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어느 날 반려견을 키우는 주인이 병원을 찾았는데, 자신의 비글이 끊임없이 먹으려고 하고, 갑자기 흥분해서 벽을 들이받고 쉴 새 없이 짖어대는 행동을 하는 통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의사는 그 비글의 상태를 과잉행동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ADHD를 진단했고 각성제인 리탈린을 처방하자 강아지의 과잉행동이 현저히 개선되었다.


강아지 말고도 포커라는 이름의 말도 마구간에 갇혀 있을 때 심각한 강박행동을 반복적으로 보였는데, 정신과 약을 사료에 섞여서 먹였더니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 수의사는 동물들이 이러한 ADHD적 행동을 보이는 원인은 생물학적 원인이 아니었다고 설명한다. 원인은 바로 "생물학적 목적의 좌절"에 있다. 말들이 애초에 마구간에 갇히지 않았다면, 비글이 주인 없는 집에 하루 종일 갇혀 있지 않았다면 그런 과잉행동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들은 돌아다니고 달리고 마음대로 풀을 뜯으며 해방가을 느끼는 본성이 있는데 그에 역행하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에 ADHD 증상을 보였다.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고 늘 강박적으로 자기 꼬리만 쫓던 한 개는 맨해튼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한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러자 꼬리 쫓기와 집중력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다.


저자는 동물이 아닌 어린이들이 겪는 집중력의 어려움도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하고 의심한다. 밖에서 충분히 뛰어놀지 못하고 시험 위주의 학교 교육을 받는 환경이 ADHD 진단율을 높인다고 말이다.

마이클이라는 11살 소년은 집중력이 약하고 산만하고 공격성을 띄어서 정신과에 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적 새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수치스러운 경험이 있었다. 유아기의 과도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가 주의집중력 저하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마이클은 각성제 처방 없이, 안정감을 주는 환경으로 변화만 시도했는데도 훨씬 증상이 약화되었다.


미국의 어느 아동 심리학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에서는 세 살 반이 된 아이들에게 누가 ADHD를 갖게 될지 예측했다. 그런데 출생 당시의 신경계 상태는 집중력 문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연구팀은 "주변 환경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발견했고 결정적인 요인은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집중력 문제를 겪고 ADHD를 진단받는 확률이 훨씬 더 놓았다는 걸 발견했다. 대체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들이 받는 큰 스트레스"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가 집중력 문제를 겪을 확률이 더 높은 이유는? 스트레스가 쌓인 부모는 본인이 너무 흥분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녀 달래기를 힘들어하고 분노와 괴로움은 집중력을 망가뜨린다. 꼭 가난한 가정이 아닌 중산층 부모들도 자신의 상황에 압도되어 있을 경우 아이들에게 안정적이고 차분하고 지지적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수십 년 간의 연구 끝에 앨런 박사는 ADHD를 진단받은 아이들의 절대다수는 타고난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반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부모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환경은 반드시 그들의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부모는 자기 아이에게 관심을 많이 쏟을 수 있으며 그러면 아기는 더 큰 안정감을 느낀다.







아이가 언어 발달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고 처음 병원에 데려갔을 때 나는 엄청난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특히 진단명에 상세불명의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받았을 때는 그 "상세불명"이라는 단어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이 모든 게 다 잘못 키운 내 과오라는 생각에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잘하면 아이의 말도 금방 터질 거라고 스스로를 희망고문했다.


몇 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 기준에서는 크게 성장했지만 여전히 또래 수준에서는 미숙함을 많이 보여서 대학병원을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커다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아이의 증상을 설명해 주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경발달상의 문제라서 부모의 양육 환경이 원인은 아니니까 너무 염려하지는 마시고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그간의 고통이 눈 녹듯이 내릴 것 같은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그래, 이건 내 탓이 아니야. 원래 애가 타고난 거라잖아. 유전자 때문인 거잖아." 유전자가 원인이라면 거기엔 여전히 내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까 책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겪는 발달상의 어려움을 순식간에 해결해주고 싶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하루 이틀, 한 두 달 바짝 노력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바쳐서 신경 써야만 아주 더딘 속도로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대학병원 교수가 해준 말을 떠올리면서, 아이의 뇌가 원래 발달이 느려서 그렇게 타고난 거라서 힘든 거니까 내가 잘 도와주면 된다고 되뇌었다. 소아정신과적 발달장애와 ADHD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어도 거의 ADHD는 유전자와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학적 질환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제기한 내용을 보니, 그와는 전혀 반대의 것이다. 유전자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유전자는 결국 환경적 요인에 따라 발현되거나 발현되지 않는다고 했다. ADHD를 진단받은 동물들처럼, 혹시 내가 ADHD를 발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끊임없이 제공했던 것은 아닌가 진지하게 되돌아보았다.


그래,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하필 아이가 태어나고 근 2-3년간 남편은 사업을 시작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나가서 일했다. 집에서는 거의 하숙생처럼 잠만 자고 나가는 수준이었다. 친정, 시댁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양가에서 자주 오시긴 했지만 오롯이 혼자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나의 육아부담을 덜어줄 정도는 아니었다.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시절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편 없이 어린 유아기의 아이를 데리고 카시트에 태워 단둘이 외출하는 것도 모험이었다. 그래도 문화센터도 신청해서 다니고, 집 앞 놀이터도 자주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 같다. 바깥 외출은 하루 중 길어야 두 시간 정도고, 아이와 단 둘이 집에만 있으니 외롭고 심심했다. 깜깜한 저녁이 되면 왠지 무섭기도 해서 TV를 틀어놓았다. 아이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질 높은 상호작용을 하면서 놀아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밥을 잘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기저귀 가는 일만으로도 나는 녹초가 되었고 혼자 보내는 하루는 너무 길었다.


아이가 본래 가지고 있던 ADHD라는 유전자의 발현을 트리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괴롭다. 외출이라고 해도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백화점이나 마트 위주로만 다녔지 바깥에서 충분히 햇빛 쬐면서 놀게 해 준 기억이 별로 없다. 남편이 집에 있는 주말에는 나가려고 애썼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다녀야 할지 몰라서 외식만 하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공원이나 자연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고, 집에서 각종 장난감과 시각적 이미지로 가득한 육아책에 둘러싸여 지냈고, 외출해 봐야 문화센터 정도였고, 엄마랑 주말 포함해서 정말 하루 종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던 환경이, 혹시 ADHD 유전자 발현에 엄청난 동기가 된 것은 아닐까.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남편과 자주 싸우기도 했다. 물론 첫 아이를 낳아 키울 때 젊은 부부는 흔히 자주 육아 문제로 부딪히는 게 부지기수긴 하지만. 물론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자라는 아이들도 많다. 그런 아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내 아이에게는 유독 이런 환경이 독이 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또 하나 결정적이었던 환경은 바로 내가 복직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이때에는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애를 데리고 들어가서 지내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환경변화에 아이는 전혀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한 달간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살이 홀쭉하게 빠졌다. 그래도 나는 출근해야만 했고, 친정 부모님과 새로운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었는데 얼마나 아이가 까탈스럽게 구는지 어린이집 선생님도 친정엄마도 힘들어했다.


복직한 죄로 나는 모두에게 죄인이 되어서 늘 아이의 유난함과 예민함에 대해 사죄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그 해 말에 결국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발달 지연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환경 변화로 인해서 발달 장애가 왔다는 생각은 선뜻하기 힘들었다. 수많은 워킹맘의 자녀들도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매번 바뀌는 이모님이나 양가 할머니의 손에 키워지는데 그 아이들이 모두 잘못 자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서 아이를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아이가 한 두 살이었던 때로 돌아가면, 정말 시간 날 때마다 공원과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같이 바깥세상 탐험도 하고 힘들어도 아이와 눈 마주치며 자주 말 걸어주면서 질 높은 자극을 제공해보고 싶다. 아이가 울고불고 온몸으로 등원을 거부하던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하루종일 같이 구르고 뒹굴면서 같이 지냈다면, ADHD 진단을 받지 않을 수 있었을까?


지금이라도 뒤늦게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알고 만회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고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만 "잘못된 육아 환경"으로 인한 ADHD 진단이라는 말이 참 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책에는 아이에게 장기간 약물 치료를 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나와 있었는 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어찌 됐든 현재 아이는 몇 년째 약물을 복용하고 있고, 그로 인해 도움을 받고 있으며, 병원에서는 갈수록 더 늘어나는 몸무게에 맞춰 용량을 늘리라고 한다. 뇌에 작용하는 약물들인데, 정말 수십 년 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무해하고 아무 탈이 없는지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오롯이 부모인 내 책임이다.


환경 탓이든 유전자 탓이든 간에 이제 와서 변할 건 없다.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그간 인정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었고, 조금 더 객관화된 시각에서 지난 시절 내 육아 방식에 대해서 판단해 볼 수 있었다.


아이는 본래 그런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성향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에 좀 더 노출되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무조건 ADHD는 뇌 발달이 원인이고 생물학적 원인이라고 처음부터 부모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조금 더 균형적인 시각에서 이 증상의 원인에 대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러든 저러든 이미 일어나 버린 과거를 바꿀수는 없고, 아이의 진단명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것과 아닌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를 괴롭히는 증상이 더 약해질 수 있도록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앞으로는 "좀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해주는게 성장과 발달에 결정적일 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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