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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쌤 Nov 01. 2023

외투를 입는 계절이 너무 싫다

ADHD 아이 키우는 엄마라서요

요즘 내가 학교가 끝나고 하교하는 아이에게, 학원에 끝나고 나오는 아이에게 매번 확인하는 것은 자기 잠바를 챙겨 입었는지 여부다.


찜통더위에 지치고 힘들었어도 차라리 여름이 낫다. 왜냐면 여름에는 외투를 따로 입힐 필요가 없으니까. 반팔에 반바지 그리고 신발은 크락스로 초여름 5월부터 9월 말까지는 거뜬히 지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날이 점점 차가워지고 일교차가 커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외투를 챙겨 입혀 야만 했다. 낮에는 기온이 조금 오르더라도 아침에 등굣길에는 상당히 공기가 차가워서 아무리 두꺼운 상의를 입혀도 외투가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얼마 전부터 입히기 시작했다.


잠바를 챙겨 입히면서 실내에 있을 때 벗어두고 있다가 또 까먹고 놔두고 집에 와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세 번, 네 번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잠바 꼭 잘 챙겨야 한다, 더우면 벗어두더라도 집에 올 때는 꼭 챙겨 와야 한다고. 아이는 그러마라고 다 아는걸 계속 이야기하면서 잔소리한다는 듯이 설렁설렁 대답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며칠 연속으로 아이는 외투를 학교에 놔두고 하교해 버렸다. 학교뿐만 아니다. 학원에 갔다가 나올 때도 꼭 입지 않고 나왔다.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을 아이 잠바를 챙기러 다녔다. 더 황당한 것은 본인이 놔두고 왔으면 자기가 옷을 찾으러 가야 하는데 되려 나에게 화를 내면서 엄마가 찾아오라고 짜증을 부린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자신의 실수를 자꾸만 남에게 전가하려는 태도가 좀처럼 고쳐지지가 않는다. 문제행동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탓인지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인정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 문제행동을 한다.


외투를 놔두고 올 수도 있다. 이런 행동은 ADHD가 아닌 보통 저학년의 아이들도 자주 깜박하면서 실수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녀석의 문제는 "본인이 놔두고 왔지만 뒷책임은 엄마가 지라"는 식이라는 거다. 자칫 이기적으로 보이는 이 행동의 이면에는 계속 반복되는 실수를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불안함이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도 이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계속 까먹는 것이다. 생각이 안 나서 못 입고 온 건데 엄마는 또 왜 옷 안 챙겨 왔냐고 하니 순간 감정 조절이 안되면서 불쑥 화를 내버린다.


어김없이 외투를 놔두고 나오는 아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다시 찾으러 다니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옷이고 뭐고 그냥 다 네 잘못이니까 놔둬버릴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다음날 아침에 추우면 네가 놔두고 와서 옷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냥 춥게 입고 가라고 해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식의 약간의 충격 요법으로 아이의 행동을 고칠 수 있다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또 그렇게까지 하는 게 잘 안된다.


작년 이맘때 계절이 바뀌던 시기에도 이렇게 외투를 놔두고 다녔었나?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불과 1년 전인데 그때는 이 문제행동보다 더 심각한 다른 고민들로 머리가 아팠던 기억만 난다. 어찌 보면 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는데 내가 과민반응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차라리 실내에서도 아예 잠바를 입고 있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러면 따로 챙길 필요도 없고 얼마나 마음 편한 해결방식인가. 한겨울에는 실내에서도 외투를 입고 있는 경우가 많은지 잘 입고 다니는 편이었는데 요즘같이 일교차가 큰 날씨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엊그제는 한낮의 온도가 평년보다 조금 높다고 하길래 쌀쌀한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아예 잠바를 안 입히고 보내버렸다.


"너 어차피 또 옷 놔두고 올 거니까 오늘은 그냥 입고 가지 마."

아이를 위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를 나의 애매모호한 직언에 아이는 또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외투 없이 추운지 총총 뛰면서 등교했다.


며칠 전 또 피아노학원을 나오는 길에 보니 추운 저녁인데도 또 잠바도 안 입고 뛰어나오고 있었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 잠바.." 하면서 죄지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엄마 미안해 내가 가지러 학원 갔다 올게."라고 한다.

순간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화를 발끈 내면서 엄마가 가져다주라고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던 녀석이 왜 태도가 달라진 건지. 계속 옷을 찾으러 다니는 엄마의 모습에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낀 건가. 아이가 또 저자세로 나오니까 괜히 마음이 짠해지고 미안해진다. 차라리 당당하게 화를 낼 때가 더 나았나. 애가 화를 내면 나도 응수하면서 너 물건 좀 잘 챙기라고 잔소리하고 마무되곤 했는데, 이번엔 얄궂게도 내가 더 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ADHD 그 자체보다는, 그 증상으로 인해 나오는 실수와 서투른 대처방식으로 인해 2차적 문제가 어쩌면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자존감 하락이다.


아이도 실수하고 싶지 않은데,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실수를 하니 되려 민망한 마음에 더 화를 낸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적반하장식의 태도까지 다 감싸 안아줄 정도로 내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지도 않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에 약 용량을 높였는데, 더 높여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약이 한 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하고 나니 또 그 종류와 용량을 맞춰나가는 게 또 다른 산이다.


ADHD 아이를 키우는데 더 적합한 지역은 캘리포니아나 하와이처럼 일 년 내내 따뜻한 지방일 것 같다. 그런데 살았으면 따로 외투 입을 일이 적어서 이런 걱정까지는 안 해도 됐을 텐데. 지금은 어리니까 엄마인 내가 매니저가 되어 손수 모든 걸 다 챙겨주지만 더 크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텐데 또 걱정이 된다.


오늘 하교 때는 부디 외투를 챙겨 입고 나오는 아이와 마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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