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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은 ADHD

ADHD 진단명을 듣고 친정엄마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다

by 레이첼쌤

세브란스 대학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다.




5세 초반에 지역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상세불명의 언어발달지연 소견을 들었다.

비슷한 개월수 아이들에게 보통 실시하는 언어발달검사와 사회성발달검사 결과였다.

그 검사 결과를 맹신했고, 자폐는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어떻게든 말만 트이게 하면 모든게 한 방에 해결된다는 착각 속에 몇 년을 살았다.

주 2회 언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받았고, 주말이면 일에 찌들어 피곤한 남편을 끌고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일주일 내내 일하던 남편에게 일요일 하루 만큼은 아이를 위해 시간을 보내달라고 울면서 부탁했다.

남편도 자기 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을텐데 이제는 발달이 느린 아이를 위해 일요일 하루는 온전히 쉬기로 하며 나에게 순순히 협조했다.



그러나 이미 한번 지연된 언어발달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내 아이만을 기준으로 하면 매일 조금씩은 성장하는 것 같았고, 언어 표현도 좋아지면서 어른과의 상호작용은 어느 정도 통하긴 했지만 또래와의 상호작용은 전무했다.

6세에는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코로나 초기의 그 극도로 조심했던 코로나 감염 위험으로 휩싸인 사회 분위기로 잘 다니던 센터치료도 유야무야 중단됐다.

사실 그 시기에 아이가 많이 좋아진것 같다는 나의 오만한 생각도 한 몫했다.

치료를 늘리면 더 늘렸지 절대 중단하거나 줄이면 안되는 시기였다.

지금 그 때로 돌아간다면 할 수 있는한 최대한 많이, 주5회는 받을 것 같다.

아예 내가 휴직하고 집에 눌러 앉아,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아이와 부대끼면서 매일 들로 산으로 데리고 나가면서 실컷 자연 속에서 뛰어 놀게 하고 센터 치료를 아주 집중적으로 병행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하곤 한다.

발달 장애 아동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부모 둘 중 최소한 한 명의 전적인 희생이 요구된다.

전적으로 아이에게 올인하고 희생한다고 해서 아이가 정상발달 궤도로 올라올 수 있느냐, 감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중증 발달 장애가 아닌 경계성 장애 수준의 아동이라면 어느 정도는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본다.



7세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서 강력하게 권고하셨다.

아이 한 번 더 검사해보라고.

어머님은 검사 결과 단순 언어 지연이라고 하셨는데, 본인 생각에는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아이가 학습 면에서는 어느 정도 따라오지만 사회성이 점점 뒤쳐져서 또래와 상호작용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고 같이 놀 때에도 내 아이는 같이 논다고 착각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끼워주지 않는다고.

선생님 입장에서는 도움반에 갈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통의 7세 아이들과 비교해봤을 때는 부족한 점이 많이 눈에 보여서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초등학교도 일반 공립 학교보다는 소수 정예로 케이 받을 수 있는 사립학교나 대안학교, 혁신학교를 알아보는게 어떻냐고 정말 내 아이를 위해 진지하고 걱정스러운 태도로 말씀해주셨다.



대학병원까지 가서 검사를 받게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부랴부랴 서울의 대학병원에 유명하다는 소아정신과 예약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소아정신과 쪽에 이름난 김붕년, 천근아 교수님 같은 분들은 아예 몇 년 정도는 예약이 꽉 차서 진료를 받을 수 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참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처음 5세 때 지역 병원에서 검사 받을 때 미리 대학병원에 예약이라도 해뒀으면 몇 년 지난 시기에 진료라도 받아볼 수 있을텐데 나는 엄마로서 참 아이를 위해 해준게 없구나 싶어서 자책감이 들었다.

다행이 남편 지인의 도움으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최고 권위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젊고 유망한 소아정신과 교수님에게 예약한지 두 달 만에 진료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역 병원에서 받은 풀배터리검사 결과와 더 어렸을 때 받았던 검사 결과 자료들까지 몽땅 들고 갔다.



친정엄마는 서울에 검사하러 갈 때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봉투에 백만원을 담아 주셨다.

그 돈을 받고 한참 멍해졌다.

너무 과한 돈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친정엄마의 딸과 외손자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오롯이 느껴지는 두께감이 돈봉투였다.

백만원이 껌값인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엄마에게 그렇게 쉽게 펑펑 쓸만한 작은 돈은 아니었다.



아이는 검사하러 갈 때 타고 싶었던 KTX를 탄다며 마냥 신났고, 우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평생 처음 가보는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세브란스 어린이 병원은 넓고 깨끗하고 쾌적했다.

진료해주신 의사선생님도 젊고, 친절하고, 인상이 아주 똘망똘망한 분이셨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머리 속으로 이 의사 부모님은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똑똑하게 잘 커서 우리 나라 유수의 대학 병원 교수로 있으니

부모님은 얼마나 좋으실까.

내 아들도 저런 젊은이로 큰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게 너무 허황된 꿈일까.

또렷한 눈빛을 가진 그 교수님은 명쾌하게 진단명을 알려주셨다.

청각주의력 결핍형의 ADHD라고.

내가 몇 번이나 되물었다.

자폐 성향이 많이 보이고, 그런 증상의 행동들을 유아 때부터 꾸준히 보여왔다고.

하지만 단호하게 자폐스펙트럼은 아니고 전형적인 ADHD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약물 치료, 사회성 그룹 수업, 언어 치료 도움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내 아이가 ADHD라고?

그 때까지 나는 사실 자폐스펙트럼만 생각하고 있었다.

오로지 그것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 증상에 내 아이를 끼워맞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이는 전형적인 자폐스펙트럼처럼 행동할 때가 아주 많았다.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그래도 자폐스펙트럼과 ADHD의 차이는 뭘까.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다시 맞닥뜨린 기분이랄까.


나는 왜 내 아이가 ADHD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유치원 선생님께서 단체 수업시간에 아이가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쳐다 보지 않고 자꾸 다른 쪽을 쳐다 보고 있어서 주의를 몇 번 줬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애가 혹시 ADHD일까요, 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절대 아니라고 일축하셨다. 선생님 말인 즉슨, 유아교육 석사까지 공부하셨지만 ADHD는 과잉 충동성과 행동 제어가 불가능한 특징이 있는데 아이는 그 쪽에 해당사항은 없다고 설명하셨다.

사실 나도 그 때 내가 가지고 있는 ADHD에 대한 이미지는 아이가 자신의 말과 행동이 통제가 되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자꾸 문제 행동을 일삼으며 친구, 부모, 교사를 힘들게하는 그야말로 통제 불가능한 말썽꾸러기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비록 3,4살 적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무조건적인 떼와 고집으로 나와 남편의 혼을 쏙 빼놓기 일쑤였지만 7살이 되면서 그런 모습은 거의 소거되었다. 되려 유치원에서는 친구들과 놀지 못하고 너무 조용하고 차분하게 혼자 그림만 그리다 오는 것이 주된 일상이었다.

유치원 선생님도, 나도 마찬가지로 주의력결핍형 ADHD(조용한 AD라고도 불리우는)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최고 대학 병원 중 하나에서 내린 진단이니, 일단은 신뢰하는게 우선이었다.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은 검사 결과를 손꼽아 기다렸다.

집에 돌아오려고 도착한 용산역에서 온 가족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식당에 들어가려는 찰나,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말했다.

"엄마, 우리 아이 ADHD래."

"아이고, 잘됐다. 내가 그럴줄 알았다. 연예인 OO아들도 어릴 때 ADHD였는데 약 먹고 지금은 다 나아서 잘만 컸대. 축하한다."하면서 긴장이 탁 풀리셨는지 목놓아 우시는거다.


ADHD 진단을 받은게 축하 받을 일인가? 그 때의 당황스러움이란.

친정엄마는 외손자가 혹시나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게될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보통 어른들이 보기에 왠지 ADHD는 약물 치료도 받고, 노력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어느 정도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병인 것 같은데 자폐는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무서운 질환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자폐와 ADHD 진단 둘 중 어느게 더 나은 병인지 경중을 따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둘 다 발달장애의 일부임은 확실하고, 중복되는 증상들도 많으며 무엇보다 사회성 부족을 수반하여 또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다는 것은 거의 동일하다.

하지만 치료 접근 방법도 다르고, 뇌발달의 문제이긴 하지만 원인이 되는 뇌 영역도 같지 않다고 알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나마 ADHD를 가진 아이들은 그 모든 어려움과 증상들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아정신과계통 문제를 가진 어린이들의 대다수가 다른 사람과 원활한 상호작용이 되지 않아서 찾아오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면 또래와 어울리기도, 친구 관계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다 큰 성인들이야 살면서 무슨 친구가 얼마나 필요하냐, 한 두명이면 됐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그렇지 않다. 유치원, 학교, 학원과 같은 교육기관을 정상적으로 다니려면 학업도 따라가야하지만 또래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한다.

진정한 평생 친구는 아니어도 만나면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고, 놀이를 하고, 장난을 치면서 함께하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친구 관계가 형성되어야 학교 생활도 건강하게 할 수 있다. 한 장소에 여럿이 함께 있어도 내 마음 하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괴롭고, 그 곳이 지옥이겠는가.

ADHD를 지닌 아이들은 그래도 사람에 대한 관심, 즉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고 친해지고 싶은 욕구는 있는 편인데, 그 표현방식이 많이 서툴고, 때로는 공격적인 모습도 보여서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상처받는건 슬프지만, 그래도 사람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폐스펙트럼 같은 경우에는 사람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관심사에만 푹 빠져서 주위를 쳐다볼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말이다.


어찌됐건 친정엄마는 역시 대학병원이 최고다, 세브란스가 정확하다며 가보길 잘했다고 연신 축하를 해주었고 나는 그렇게 ADHD 진단을 받은것을 기뻐해야하는건지 아리송한 기분으로 축하를 받았다.

그러나 아이는 지금도 일상에서 자폐 성향을 드러내는 순간들이 꽤 있다.

아마 뇌발달에 문제가 발생해서 발달 장애가 생기면 겪는 증상들이 어느 정도는 중복되는 부분들이 많아서일것이다.

느린맘카페나 다른 글들을 읽다보면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아갔다가 아이가 ADHD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명을 듣고 충격과 비탄에 빠졌다는 부모님들 이야기가 많다.

나는 오히려 그 반대 상황이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웃픈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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