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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슬픈 기억의 그 곳

아이의 남다름을 처음으로 인지하다

by 레이첼쌤

남편은 항상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

하필 아이를 임신한 시기에 직장일로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해야 했고, 시댁도 친정도 가까이 없는 새로운 도시에서 나는 아이를 낳고 거의 혼자 힘으로 길러야만 했다.

갓난아기였을 때는 많이 싸우고 부딪히기도 했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정도의 나이가 되고 나도 같이 어울릴만한 사람들을 사귀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위치에 적응하며 살아 나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라 아이가 이유식이라도 뗄 시기가 되면 주변 지인들이나 SNS세상 속 사람들은 아이를 데리고 최소한 괌이나 세부라도 다녀오는 분위기였다. 제주도 물가가 워낙 비싸니 차라리 돈 조금 보태서 실속있게 다녀오는 동남아리조트 여행이 더 낫다고들 했다.

해외여행은 커녕 일 년에 이틀의 휴가조차 가지기 힘들 정도로 자리를 잡느라 바빴던 남편은 그래도 명절 연휴에 1박 2일이라도 국내 호텔로 호캉스여행이라도 가자고 했다. 시댁에서도 편의를 봐주셨기에 명절에 마음 편하게 역귀경해서 서울로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그 때 아이는 4살 인생이 끝나고 막 5살로 접어든 시점이었다.

아이는 4세 때에도 말이 시원하게 터지지 않아서 나는 조바심이 난 상태였다.

짧은 단어나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는 비교적 정확히 표현하긴 했지만 아이랑 주고 받는 대화, 즉 상호작용이 제대로 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미련했던 나는 시댁, 친정 어머님의 말과 주변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말이 이렇게 느린데 대해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하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터질것이라고들 말했다.

그 말에 위안을 받고 정말 이렇게 손놓고 있으면 언젠가 터질거라고 기대했나보다.

소아정신과 같은 병원은 차치하고서라도 언어가 느리면 언어치료 센터라도 알아봄직한데, 남편도 나도 아예 무지했다.

이유인즉슨, 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한글을 떼고 좋아하는 동화책을 줄줄이 읽어댔고, 그것도 기계처럼 읽었다기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살려 나름 실감나게 읽곤 했다.

양가 부모님은 숫자도 알파벳도 다 알고 이렇게 똑똑한데, 언젠가는 말이 터질것이다라고 했고

하필 두 살 많은 시댁 큰 조카도 말이 늦게 터져서 애먹이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유창해진 케이스라 은근히 마음을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같은 유전자니 조금만 기다리면 터지겠거니 하는 마음이었을까.

큰 마음 먹고 출발한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 도착하기까지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 대화를 하기보다

만화나 유튜브에서 본 영상들에 나오는 의미 없는 말들을 읊어댔다.

대화하고는 상관없는 이상한 혼자만의 말을 쏟아냈고 나는 항상 그래왔기에 별 생각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 때 남편은 "언제쯤 우리 OO이도 아빠랑 대화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평소에 바빠서 많이 못 놀아줬고, 나도 복직해서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고,

아이는 주로 어린이집과 친정엄마에게 맡겨졌는데 그 미안했던 마음을 보상이라도 하듯 롯데월드에 도착하기만 하면 정말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다 태워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롯데월드 입구를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 부부는 진땀을 뺐다.

그 거대한 롯데왕국의 주차장에서 어드벤쳐 입구까지 가려면 꽤나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데

가는 동안 아이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눈에 들어오는 흥미거리가 있으면 거기로 돌진했고 우리는 잡으러 다녔다. 급기야 입구에 가기도 전에 있는 작은 키즈카페가 눈에 들어왔는지 그 키즈카페에 당장 들어가겠다고 온 몸을 다해, 울고 악을 지르면서 떼를 썼다.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맨날 가는 비슷비슷한 키즈카페에서 놀게 하려고 지방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필사적으로 어르고 달래서 겨우 롯데월드 어드벤쳐에 입성했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행복한 시간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때부터 지옥의 여정이 시작될지도 모르고.


롯데월드에 들어가서 아이는 정신을 못 차렸다.

유아들이 많이 타는 한복판에 돌아다니는 기차를 타겠다고 무모하게 뛰어들면 잡으러 갔고, 그 기차를 태워주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면, 새치기를 해서 맨 앞으로 뛰어들어갔다.

수백번 기다려야 하는 거야 말해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밀고 제치며 무조건 타려고만 하는 아이를 저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겨울이었는데 온 몸에 땀이 흘렀고 너무 더워서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힘들게 줄을 기다려서 기차를 타면 옆 칸의 다른 색깔 자리에 앉고 싶다고 울고 불고했다.

그것도 말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목이 터져라 울어댔다.


기차에서 내려 회전목마를 타러 갔다가 줄 서서 기다릴 때에 아이는 여기 저기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다가 서서바지에 오줌을 싸버렸다.

아..

어쩌자고 이러는걸까.

얼마나 힘들게 소변을 가렸는데.

아이는 어린이집 또래 중에서 가장 늦게 기저귀를 뗐다.

그것도 밤기저귀는 아직 못 뗀 상태였지만, 낮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빠르면 18개월에서 24개월 정도에, 못해도 36개월 이전에는 기저귀를 떼는데

우리 아이는 40개월은 족히 넘겼다.

그 때 아이의 신체 발달에, 특히 감각 영역에 문제가 있다는걸 감지해야 했다.

아이는 워낙 시지각만 예민하게 발달하고 있는터라 요의와 변의를 느끼고 가려야하는 신체 발달이 또래보다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아동발달 관련 책도 많이 찾아 읽고, 발달 장애 카페 검색도 다년간 하면서 어설픈 지식들이 꽤 쌓인 상태지만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정말 의미 없는 말이지만 자주 되뇌이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면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는 골든타임이라는게 있기 때문에, 조금 늦었을 때 부모가 빠르게 캐치하고 적절한 치료와 개입의 들어간다면 예후가 좋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은 뒤쳐지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손 놓고 있는다면 아이는 점점 더 느려질 것이고 나중에서야 벌어질대로 벌어져버린 또래와의 갭 차이를 메꾸는 일은 갑절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부모의 마음고생을 요한다.


갈아입힐 옷도 없는 상황에서 오줌을 싸서 다 젖은 바지를 입고도 아들은 자신이 찝찝한 바지를 입고있다는 사실도 감지하지 못했는지 눈에 들어오는 자극에만 급급해서 여기 저기 뛰어다녔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지 않게 하느라 쫒아 다니기 바빴다.

롯데월드 안에 있었던 한 시간 가량이 백년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우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더 식은 땀이 났다.

왜 우리 빼고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 곳에서, 우리는 이러고 있을 수 밖에 없는걸까.

많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 갔다.

남편에게 나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티켓값이 너무 아깝지만 애 잡을 것 같다고 나가자고 했다.

아이의 목은 이미 쉴대로 쉬어 있었고 너무 울어서 빨개진 눈도 잔뜩 부어 있었다.





비싼 티켓값을 쿨하게 포기할 정도로 지쳐버린 우리는 아이를 붙잡고 나가자고, 아까 너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그 키즈카페에 데리고 가주마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나가지 않겠다고 떼를 쓴다.

결국 남편이 아이의 상체를 붙잡고 나는 다리와 발을 붙잡은 상태로 온 몸으로 전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아이를 데리고, 아니 질질 끌고 나와야만 했다.


근처 작은 키즈카페에 데려다 주니 다시 진정이 되었는지 뛰어 놀기 시작했다.

나는 시원한 커피 하나 시켜놓고 아들 둘을 먼저 낳아 키우고 있는 육아 멘토인 새언니에게 전화해서 있었던 일을 토해내고 도대체 문제가 뭔지 답을 듣고자 했다.

언니가 뭐라고 조언해주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훈육 방식에 대해서 한참 경험과 조언을 섞어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경청했다.


정신 없이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그 때 남편이 이 말을 던졌고, 그 말을 계기로 나는 아이가 아프다는걸, 이상하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무래도 애가 어디 아픈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때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 인지했다.


아. 이 아이는 단순히 훈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말을 안듣고, 떼를 쓰고, 우는 게 아니구나.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구나.

그냥 단순히 말이 늦는게 아닐거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 날부터 며칠간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느린 아이 카페에 가입해서 이런 저런 글들을 읽기 시작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폐 유아 증상 목록 중에 첫 번째로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음,을 보고 절망했다.


롯데월드에서의 기억이 너무나 강해서 그 이후로 여행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서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명절 연휴가 끝나고 지역 소아 정신과에 문의해서 부랴 부랴 검사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연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울면서 끝없는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그 동안 알게 모르게 힌트를 조금씩 주고 계셨다.

아이가 반향어를 한다, 자기만의 고집이 있다, 소근육 발달이 또래보다 느리다 등 나름 엄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조심스레 나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는데 바보같이 내가 캐치하지 못한거다.

선생님은 검사 결과가 내가 각오하는 그런 최악의 결과로 나오지는 않을거라면서 나를 달래기도 하고 위로하셨다.


정신건강의학과 예약도 이렇게 잡기 힘든거라는걸 그 때 알았다.

진료 일정이 아주 빡빡했는데, 운 좋게 취소 자리가 나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검사를 받고 그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나에게 생지옥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혼 없이 출근해서, 영혼 없이 일하고, 영혼 없이 먹었다.

잠을 잘 수도 쉴 수도 없었고, 아이만 보면 하염 없이 눈물이 나왔고, 하혈을 했다.

학교에서 만나는 장난끼 다분한 학생들의 말장난에도, 나에게 웃으며 인사만 해도 눈물이 나오는 걸 삼켰다.

저 아이들은 저렇게 밝고 건강하게, 말도 잘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으니 좋겠다.

정상으로 자라서 일반적인 학교를 보내는 저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복받은건지 알기는 할까.

온갖 부정적이고 칠흑같은 어둠 속 시간들이 나를 지배했다.

검사 결과는 "상세원인불명의 언어지연"이었다.

아마 자폐스펙트럼을 충족하는 요건에 점수가 미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온 가족들은 그래도 자폐는 아니라며 안심하라고 나를 위로했지만, 단순언어지연도 자라나는 유아에게 있어 결코 쉽게 여기고 따라잡을 수 있는 진단명은 아니라는걸 그간의 경험과 시간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 롯데월드에 간 건 어찌보면 다행인 일이다.

그 곳에 머문 아찔했던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남편의 결정적인 말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 동안 아이의 발달상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치료는 더더욱 늦어졌을테니까.

긍정적인 자세도 참 중요하고 삶에 도움이 되는 요소지만, 이럴 때는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바라보는건 그다지 도움이 되는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아이의 발달에 있어 뭔가 조금 이상하고, 또래보다 늦다 싶으면 부모가 조금은 현실적인 시각으로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꺼려지는 검사라도, 병원이라도 얼른 가서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즉각 마련하는게 부모의 역할이고 도리이다.


그 때 이후로 아이와 롯데월드에 가 본적은 없다.

지금은 그래도 가면 질서도 잘 지키고 그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롯데월드에 가서 여느 아이들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나는 감격의 눈물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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