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필요한 미덕
내 자식이 부끄러웠던적.
셀 수 없이 많습니다만,
나는 남에게 피해주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고, 내가 이유없이 손해보는 것도 싫어한다.
그리고 나름 자존심도 센 편이고, 괜히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한다.
아가씨 시절, 첫 조카가 생기기 전에는 솔직히 아이들을 예뻐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내 아이가 5세에 언어발달지연 진단을 받고, 센터 치료를 시작할 무렵 감추고만 싶었던 아이의 발달 지연은 사람들의 눈에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버렸다.
놀이터에서 만나는 5세 또래의 친구들은 유창한 대화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짧은 이야기도 나누고, 어설프게나마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이었다.
내 아이는 거의 끼질 못했다. 아니, 그 때의 아이는 또래와의 놀이에 전혀 낄 의지도 없었다는게 더 정확하다.
그래서 더 숨어지낸것 같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오면 하원도우미 이모님이 아이를 어린이집 버스에서 받아서 바로 집에 데리고 오셨다. 어차피 내 퇴근시간이면 저녁 먹을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데리고 나갈 생각도 못해봤고, 이모님이 가시면 밀린 집안일과 저녁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어린이집 하원하는 4시에서 6시 사이에 동네에 다른 엄마들은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나와 아이들을 함께 어울리게 하고 간식도 나눠먹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럽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었으므로 큰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언어가 느린 아이를 계속 집에만 끼고 있으니 그 시기에 발달해야할 사회성이 더 지연되었던 것 같다. 물론 주말에는 여기저기 데리고 나가긴 했지만, 주중에 매일 놀이터에서 꾸준히 또래를 만나는 것과는 다르다.
어차피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굳이 나가자고 애원하지도 않으니, 데리고 나갈 이유도 없었다.
가끔 아이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엄마들과 한 번씩 생일파티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는 고맙게도 워킹맘인 나도 껴주곤 해서 어렵사리 참석했다.
어느 날은 엄마들이 아이들 생일이 언제인지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엄마가 나에게 아들 생일은 언제냐고 물어보았는데, 나는 순간 기억이 안 나는 척 연기를 하고 말았다.
혹시나 그 엄마가 내 아들 생일이 3월이라 빠른걸 알게되면, 왜 개월수에 비해서 행동이 느리고 말이 느린지 반문할까봐 두려웠다.
5세면 유치원을 다니게 될 정도로 아이들이 성숙하긴 하지만, 아직은 생일이 느린 아이들은 그 해에 1,2월에 태어나 생일이 아주 빠른 아이들에 비해서 느린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다. 차라리 내 아이도 생일이 늦어서, 늦게 태어나서 말이 좀 느린거다, 그런 핑계라도 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엄마는 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생일을 헷갈려하냐고 웃으며 넘겼지만, 그 순간 내 마음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당연히 내 아이의 생일날을 잊을리가 없다.
생애 처음 무시무시한 출산의 고통을 겪고, 내 뱃속에서 태어난 예쁜 아기를 만난, 내 인생 최고로 역사적이라 할 수 있는 그 날을 잊을리 만무하다.
또래에 비해 발달이 점점 느려지는 내 아이를 보면서 차라리 또래보다 늦게 태어났다면 내가 덜 부끄러웠을텐데, 진심으로 바랐다.
말을 늦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친한 엄마들 중 아이들을 위한 각종 체험과 전시를 발빠르게 알아보고 데리고 다니는 열혈맘이 있었는데 유난히 딸이 많은 이 모임에 내 아이가 같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과학관 행사나 요리 체험 등에 껴주었다.
그 때마다 사단이 일어났다.
원인은 내 아이.
다른 여자친구들보다 유난히 같은 남자친구와 경쟁에서 지거나, 순서를 정해야할 때면 아이는 그 친구를 때리거나 고집대로 안된다고 조용해야할 장소에서 울고 떼를 쓰며 드러누워버렸다. 그 남자친구도 굉장히 똑똑하고 욕심 있는 성향이라 무조건 내 아이에게 맞춰줄 수도 없는데, 아이는 무조건 자기가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렸다. 물론 때릴려고 하면 내가 옆에서 잽싸게 손을 잡거나 막아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그 엄마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나보다 어리고, 잘 나가는 남편에, 교육계에 종사하며 육아까지 야무지고 당차게 해내는 그 엄마에게 사과해야할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매사에 꼼꼼하고, 손해보는 법이 없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는 그 엄마가 왠만하면 좋은게 좋은거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내 성격과는 별로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던 때였다.
왜 내가 내 잘못도 아닌 일 때문에, 내가 못난것도 아닌데 이렇게 사과를 해야하는지, 사과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 날은 잡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남편에게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아질 기분도, 자존심이 다시 세워지는것도 아닌데.
내가 못난 엄마라서 그런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엄마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자식이니 자식의 잘못을 빌고 사과하고 굴욕을 느끼더라도 참는게 맞는데 왜 나에게는 그게 그렇게 힘들까.
엄마라는 타이틀이 참 버거웠던 순간이다.
특히 사람들 많은 공공장소에서, 아니면 친한 지인들 앞에서, 아이가 말도 않되는 어거지와 떼를 쓸 때면 나는혼자 쥐구멍에 들어가 조용히 찌그러지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놀이터에 나갈 때 유난히 나는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이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혹시나 다른 엄마들이 내 아이에게 말을 걸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엄마들은 그냥 과자나 음료수를 나누어주거나, 유치원에서 재밌었는지 같은 단순한 질문을 아이에게 친근함의 표시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부담스럽고 싫었다.
자기네 아이들은 다 말을 잘하니 이러쿵 저러쿵 유창하게 대답할 수 있겠지만,
내 아이는 누가 질문해서 동문서답을 하거나, 아니면 듣는체도 않하는게 나에겐 익숙한 일상이었다.
나에겐 익숙한 일이 누군가에겐 "저 아이 좀 문제 있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 될까봐,
혹시라도 나와 내 아이가 자리를 뜨고 나면 쟤 검사받아봐야하는거 아닐까라는 말을 할까봐,
미리 걱정하면서 자격지심에 휩싸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내 자존감은 쫄아들대로 쫄아든 상태였던 것이다.
내 아이의 부족함이 엄마인 나도 함께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
아이가 정상발달인, 내 기준에서 복 받은 엄마들은 발달 장애에 관해 잘 모르고(알 필요도 없고) 관심이 없으므로 혹시나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워서 애가 저렇게 됐다고 생각할까봐 노심초사했던 것 같기도하다.
나와 내 아이를 분리해서 개별적 존재로 바라볼 줄 아는 그런 세련된 서구식 마인드를 갖췄다면 조금 나을텐데, 이 땅에 태어나 자란 나란 사람도 결국 전통적 사고방식과 사회적 관습이 온 몸에 체득되어, 내 자식을 나와 하나로 인식하고 아이의 모자람은 곧 나란 인간의 모자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또래 개월수의 아이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행동양상을 보일 때마다 숨고 싶었고, 어쩌자고 자식을 낳아서 내가 이 꼴을 당하고 있나 싶었다.
내 몸에서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그 존재 자체로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깊이만큼 미울 때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증오의 마음이 차오르기도 했다.
문화센터에 트니트니 수업에 데리고 갔다가 나오는 길에 또 억지와 땡깡을 부리면서 온 몸으로 나에게 저항할 때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겨우 힘으로 제압해서 차에 태워 카시트에 앉히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적도 있다. 제발 엄마 말 좀 듣고, 위험한 행동 좀 하지 말라고, 왜 이러냐고, 몇 번을 말해야하냐고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미친 여자처럼 소리 지르고 한바탕 퍼붓고는 울든 말든 내버려 둔 적도 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백화점이나 마트만 가면 통제가 되지 않았는지 지금은 이해한다.
시각 자극에 유독 취약한 아이에게 마트나 백화점은 온통 자극거리로 가득한 곳이었다.
특히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는 말리지 않고 놔두면 하루 종일 타거나 보고 있을 정도로 집착이 심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문화센터를 다니지 말고, 공원이나 산으로 데리고 다니면 되었을것을.
초보엄마에 독박육아였던 나는 왠지 동네 놀이터가 아닌 바깥이나 야외는 혼자 가기에 꺼려졌고 조금 내키지 않았다. 문화센터에 가면 또래 아이 엄마들도 만날 수 있고, 장도 보고, 어렵사리 커피도 한 잔 마실 수 있어서 나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문화센터 키즈프로그램은 신청해서 다녔는데, 내 아이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였던 것 같다.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온종일 놀이터, 천변, 공원 등에 데리고 다니며 흙을 만지고 풀 뜯게 하면서 놀게 해줄텐데. 물론 평범한 아이들은 굳이 이렇게 마음 먹고 자연 속에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문제 없이 잘 자란다.
조금 특별한 내 아이에게는 백화점이나 마트가 더 예민하게 만드는 장소였을 뿐.
지금은 나를 쥐구멍에 들어가게 할 정도로 부끄럽게 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또래에 비해 미성숙하고 아기같은 행동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는 한다. 하지만 어려서 워낙 최악의 경험을 나에게 많이 선사한지라 요즘 보여주는 정도의 행동은 너그럽게 넘어가 줄 수 있다.
조금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필요한 미덕 중에 하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겨낼 줄 아는 탄탄한 낯두꺼움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