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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에게 손주의 발달장애란

시댁이 손주의 발달장애를 받아들이는 자세

by 레이첼쌤

유치원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사회성 그룹 수업을 받아보라고 강권하셔서 급하게 알아본 동네 발달치료센터에서 정말 운 좋게도 또래 그룹을 할 수 있었다.

센터장님은 안 그래도 7세 또래 남자아이가 있어서 그룹수업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고려중이었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성 치료 그룹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것도 어찌보면 참 운명같은 일이다. 이 그룹이 지금까지 2년째 이어져오고 있고, 엄마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져서 시간 내서 따로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두 분 다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이라 바빠서 가끔은 다른 가족들이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 날은 A라는 친구의 친할머니께서 아이를 센터에 데리고 오셨다.

나는 A의 할머니는 처음 뵌 날이었는데, 센터의 좁은 부모 대기실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나는 조용히 목례 정도의 인사를 드렸다.

A의 엄마라면 같이 편하게 일주일간 있었던 일들과 새로 생긴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했을테지만 할머니는 인사 이외에 별로 드릴 말이 없어서 나도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침묵을 깨고 A의 할머니께서 목소리를 내셨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되요. 우리 손주처럼 똑똑한 아이가 없는데 말이에요. 혼자 바둑 규칙 다 배워서 바둑 두고, 글자도 빨리 읽고, 못하는게 없는데 왜 이런데를 데리고 오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들 내외는 너무 과하게 걱정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봤을 때는 너무 똑똑한 아이에요."


할머니가 하신 정확한 말씀을 그대로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대충 이런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나는 "네, 맞아요. A가 글씨도 잘 쓰고 정말 똑똑해보이더라구요."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 말에 더 흥분하셨는지 할머니는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우리 당숙의 삼촌이 어릴 때 거의 6, 7살까지도 말을 못해서, 말이 안 터져서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학교 들어갈 때는 말만 잘 하고 공부도 잘해서 경찰청 고위직에, 높은 자리에 있다가 이번에 퇴직하셨어요. 나는 엄마, 아빠(내 아들, 며느리)가 너무 걱정이 과한것 같어. 괜히 자존심 상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애를 이런데 데리고 다니고 말이야."


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고, 다른 친구 B의 아빠가 할머니 말씀에 동조를 하면서 그래도 아이를 도울 수 있을 때 부모가 도와주는게 역할이죠라며 옳은 소리를 하니 할머니는 그 때부터 다시 조용해지셨다.


그럼 이런 곳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나는 뭐지,라는 생각과 시어머니가 아픈 손자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다시 센터 대기실에서 A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저번 주에 바쁘셨나봐요, 할머니가 A 데리고 오시느라 고생하셨겠어요, 했더니

A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저번 주에 우리 어머니, 엄청 화나셨잖아요. 센터 수업 끝날 때쯤 시간 맞춰서 어머니 집에 모셔다 드릴려고 왔더니, 됐다고 혼자 집에 가마하고 가버리셨어요. 그 그룹치료에서 우리 A가 가장 똑똑하고 아무렇지도 않은것 같은데 너는 괜찮은 애를 괜히 그런데 데리고 다니냐며 엄청 화내셨어요."


더 당황스러운 점은 할머니는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도 않으셨고, A를 제외한 내 아이와 다른 친구의 모습을 1분도 채 보지 않으셨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아이들을 보시긴 했는데, 잠깐 그 찰나를 만나고 느끼신게 왜 잘난 우리 손주가 이런 애들이랑 이런데 와서 이런 수업을 받아야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신 모양이다.


잠깐 사이에 본 우리 아들의 모습이 그렇게 못나보였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걱정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사실 나에게 대놓고 한 말도 아니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말인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이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마 그런 상황에서 우리 시어머니나 친정엄마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런지도 모르겠다.

제 손주가 가장 잘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시니까.


시댁에, 시어머니에게 아이의 발달 장애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좀 조심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나는 아이의 남다름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검사를 봤게 된 그 때 너무나 충격과 슬픔에 빠져서 나 스스로가 주체할 수 없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양가 부모님들에게도 그대로 손주의 상태를, 내 상태를 노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누가 내 아들 이름만 말해도 눈물이 터져나왔고, 내내 눈이 빨개지고 충혈된 상태였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가, 너라도 정신 차리라고 좋은 생각만 해야한다고 조언도 하셨다.

그러다가 젊은 시절 당신이 얼마나 고생하면서 시집살이를 견디며 살아왔는지, 어려운 형편에도 아이들 교육 시키고 자리 잡느라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목놓아 우시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더 서러워져서 우시는 것 같았고, 그 때의 내 고생에 비하면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이런 일 쯤은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우리 아들도 손주 때문에 매일이 죽상이고 애가 우울해해서 나는 그게 더 걱정이니, 네 남편 앞에서 너무 우울한 모습 보이지 말고 걱정도 적당히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아, 내가 내 아들 때문에 힘든 이 순간에도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 기분이 더 우선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서운해하면 안되는 일이다.

반대로 내가 나중에 아들을 장가보내고 그런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나도 내 아들 걱정이 우선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때의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하게 들려서 자꾸 되뇌였고, 철저히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이가 사회성이 부족해 치료를 받게된 지인은 시댁에 아이의 컨디션에 대해 정확히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도와줘야할 부분이 생겨서 센터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나와는 달리 아주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으로 시댁에 팩트만 알려주었다고 했다. 나도 그랬어야했나. 그럴 마음의 여유도 이성도 없었던 나는 참 바보스럽게도 내 고통에만 매몰되어 시부모님 입장은 고려도 않하고 그대로 나의 밑바닥을 노출했구나.


지금의 나라면 내 슬픈 감정은 최대한 배제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심각하고 걱정스러운 부분은 조금 덜어내고 시댁에 말씀드릴 것 같다. 아이 발달에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따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장기전이 될 수도 있지만 당분간은 아이를 도와주고 아이 발달에 집중해야할 것 같다고.


우리 시부모님이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실 분들은 아니지만,

가끔 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발달 장애가 나 때문에, 며느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닐까.

내가 잘 못 키워서, 내가 나쁜 유전자를 물려주어서,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며 다 받아줘서, 이렇게 된거라고.

요즘 시대에 대부분의 시댁은 이렇게까지 며느리탓으로 돌리는 분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건 나의 자격지심과 자책감에서 나온 생각일뿐.


그러나 분명한건 시부모님에게도, 친정부모님에게도 어느 정도 손주의 발달 장애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인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드려야한다. 그리고 아이가 가진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공부한 후에 구체적인 치료 방향과 원인에 대해 최대한 담백한 말투로 말씀드리는게 좋을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예쁜 손주가 최고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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