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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소아우울증이라고

손톱살을 뜯는 아이

by 레이첼쌤

소아우울증이라는 단어를 한 번 검색해보았다.

다음과 같이 나왔다.


정의

어린이의 우울증은 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와 달리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우울증을 앓는 아이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동청소년은 우울하더라도 스스로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이 우울감이 신체적 증상, 비행,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

우울증의 증상으로는 우울감, 슬픔, 초조감, 흥분, 집중력 저하, 수면 및 식욕의 변화, 자기 비판 증가, 절망, 공허감, 에너지 상실, 일상생활이나 친구에 대한 흥미의 상실, 죽음에 대한 생각 증가, 자살 위협 등이 있습니다. 아동청소년기에는 우울증이 우울한 기분 대신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잘 내며 짜증스러워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이 있는 아이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안절부절못하고, 성적이 떨어집니다. 말이 느리고 굼뜨며 말수가 적어지고, 통증을 호소하고 감정이 없는 듯 보이고, 피곤해합니다. 늘 하던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면 이상이 발생합니다. 청소년 중에는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우울증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청소년이 많습니다.

<출처, DAUM 질병백과>



소아우울증의 정의에 나온 첫 문장이 조금 의아하다.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내가 집중한 부분은 우울감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온 대부분의 일상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청소년기에 더 해당사항이 많은 느낌이다.

막상 내가 알고 싶은건 유아기의 어린이가 겪을 수 있는 소아우울증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제 와서 깨닫는 건데 현재 8세인 내 아이는 7세였던 작년에, 소아우울증을 겪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어떤 면에서 보면 소아우울증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순전히 주관적일수밖에 없는 엄마인 내 시각에서 봤을 때 말이다.


작년에는 소아우울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에 문득 이 단어가 떠올랐다.

아이가 작년에 보여주었던 행동과 모습들이 그 증거가 되었다.


가장 큰 특징은 손톱뜯기였다.

처음 이 행동을 한다는걸 알게 되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주변에 지인들도 어른이지만 어릴때부터 손톱을 물어 뜯는 습관이 있는데 못 고쳐서 지금도 어떤 일에 집중하거나 심심할 때면 손톱을 물어 뜯어서 남아나질 않는다고, 어릴 때 그렇게 혼났어도 결국 못 고쳤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무언가에 집중할 때면 머리카락을 괜히 비비 꼰다거나 손톱 주변의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변태스럽지만발바닥에 일어난 각질을 뜯어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내 아이가 안쪽 손가락의 살껍질을 벗겨내고 있을 때도 성장통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이 습관처럼 하는 행동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겨 여길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엄지손가락에서 시작한 이 행동이 다 뜯고 뜯을 껍질이 없으면 집게손가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아이의 보드랍고 연한 살이 껍질이 벗겨져서 지문이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중요한 건 아이가 손을 만지는 그 시점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다른 사람과 소통해야할 때, 그 소통의 대상이 가족이 아닌 타인이거나 또래일 때,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생각나지 않을 때, 말을 더듬으면서 하고픈 말을 찾아 헤매는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 열심히, 격렬하게 손가락을 뜯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를 몰라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트레스와 초조함을 풀어낼 방법을 모르니 자기 몸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부분을 매만지면서 또는 애먼 살껍질을 뜯어내면서 일종의 위안을 찾고 있었다.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메디폼을 붙여봐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내가 안 보는 사이 스스로 뜯어내기도 쉬웠고, 일과 생활 중에 손 씻을 일이 많으니 쉽게 떨어져나갔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서 남편은 아이를 붙잡고 손을 싹싹 빌면서 제발 아빠 부탁이니 이제 그만 뜯으면 안되냐고 사정하기까지 했다. 아이는 그러마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버렸다.



일종의 틱장애였을까.

틱 진단까지 받지는 않았으니 속단할 순 없지만, 소아우울증의 양상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일 하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아이 데리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 여행이며 체험 등에 데리고 다니느라 항상 정신이 없었다. 일도 잘하고 싶었고, 살림도 평균 이상은 하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었다.


올해에 휴직을 하고 발달 관련 책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그 시절 아이는 소아우울증이었음을.

원인은 분명하다.

언어발달지연으로 인한 의사소통능력이 떨어지고, 또래관계 형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또 그로 인해 자존감도 수직저하중이었다.


한 번은 철저히 아이 입장에서만 생각을 해보았다.


<내 의지가 아닌채로 2015년 어느 날 나는 세상에 태어났고, 내 뇌가 시키는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인식하면서 살아왔고, 엄마가 가라고 해서 어린이집을 가고 유치원을 가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하루 종일 있다가 와야하고, 유치원에 가면 담임선생님은 엄마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긴 하지만 계속 나만 바라봐주는건 아니다. 내가 습득한 어설픈 말로 선생님과 어렵사리 소통은 되지만, 당췌 또래 아이들이 하는 말은 뭔지, 의도가 뭔지 어떻게 놀자고 해야 하는건지 방법도 모르겠고 이해도 안 되고 말 표현도 안된다. 그런데 선생님은 자유놀이 시간을 주면서 자꾸 같이, 함께 놀라고 한다. 아침부터, 하원이모님이 데리러와주시는 오후시간까지 거의 하루 종일.>


만약 성인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중학교에서 배운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한국 사람 하나 없는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영어 원어민들만 가득한 곳에서 선생님은 내 영어를 아주 조금 알아들어서 대화는 되지만, 다른 미국애들이 하는 말은 도대체 뭔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 환경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 환경이라면.

평범한 성인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내 아이는 청각적 주의력이 낮은 탓에 다른 사람말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결정적 언어 발달시기를 놓쳤고, 정말 다행히도 인지수준까지 낮은 편은 아니라 도움반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 또래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 엄마, 아빠랑 실컷 놀고 하루종일 함께 있다가 월요일에 유치원에 가야할 때에 가장 힘들어했다. 유치원에서도 독서 시간이나 학습, 미술같이 개별 활동 시간은 그런대로 해냈지만 단체 놀이 시간에는 갈 곳 잃은 강아지처럼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있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아이의 손톱살 뜯는 행동이 이어지면서 나는 학기중에 갑작스럽게 휴직을 하고 어디론가 아들을 데리고 떠냐야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했고, 다음날 바로 교감, 교장실에 찾아가 아이 상태를 대충 설명하고 휴직 선포를 했다. 결국 학기 마무리까지는 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고 도리인것 같아 도중에 포기해야했지만.

내가 만약 할 수만 있었다면 유치원을 그만두고 집에서 나와 함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한다.


나는 모든 유아기의 아이들이 유치원에 아무렇지 않게 잘 적응해서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꽤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특기는 사과, 취미는 반성입니다> 책 저자도 학기중에 유치원을 그만두고 가정보육을 했다. 저자의 아이도 ADHD 증상으로 원 생활이 녹록지 않았고, 전업주부였기에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전업주부였어도 보통 기관에 다닐 정도 나이의 아이를 집에 하루 종일 데리고 있는다는건, 보통의 인내심과 희생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엄마는 하루에 단 한시간도 자기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하는 것이다.


시기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개월간 이어졌던 손톱살 뜯기는 해가 바뀌면서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언제 그랬는지 아이의 지속적인 습관을 인지 못할 정도로 손톱뜯기 버릇은 사라졌다.

내가 하지말라는 말을 덜하고, 덜 신경쓰기 시작하니 아이도 그만둔 것 같기도 하고.

방학을 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것 같기도 하고.

나아진 계기는 정확히 모르겠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도 아닌 주제에 한 두가지 증상으로 소아우울증이었네 어쩌네 논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의 주양육자이고,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드는 생각과 판단들이다.

내 아이는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 가지고 살아줬으면 하는게 부모 바람인데, 행복하기는 커녕 우울함을 수시로 느끼는 상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괴롭기 그지 없다.

지금도 아이를 힘들게 하는 그 ADHD라는 이름의 질환이, 아이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자존감마져 앗아가버리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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