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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기하고 시골로 이사갈까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벽

by 레이첼쌤

아이의 7세 가을은 참 폭풍이 휘몰아치는 시기였다.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일반 공립초등학교"에 가서는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나는 엄청난 고민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같은 동네에서 초등학교에 등교하기 더 용이한 옆 단지 아파트로 봄에 이사한 터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우리 이사한 동은 특히 초등학교 정문과 가까운 편이라 마음 놓고 학교 보내기 좋은 거리였다.

아이도 자신이 이 학교를 입학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코앞에 편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두고 어디를 가야 한단 말인가.


특수교육지원청을 통해 도움반 입학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장애 진단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인지 수준은 보통이나 사회성이 부족한 정도로는 도움반 입학은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아직 ADHD는 도움반에 갈 수 있는 자격조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정이었다. 경증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아이도 인터뷰 심사에서 어느 정도 기본 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면 탈락이라고 들었다.

그야말로 내 아이는 일반도 장애도 아닌, 경계 그 어딘가에 애매하게 서 있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사립초를 생각해보았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사립초등학교가 3군데 있는데, 백 프로 추첨제라 된다는 보장도 없고,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며 아이는 소위 영유 출신도 아니라 영어 과목에서는 적응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학교별로 특색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은 예체능만큼이나 학업이 강조되고 중간,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도 치른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학급당 학생 수다. 우리 집 앞 초등학교는 학급당 학생수가 24명 정도인데 사립초등학교들은 인기가 워낙 높은 탓에 정원을 최대한 받는 건지 29명 이상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가 소수인원의 교실에서 선생님의 케어를 받는 학교가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사립초는 더더욱 맞지 않는 선택이었다.


그다음으로 고려해본 건 초등 대안학교다.

지역 근교에 두 군데 정도 있었는데, 산속이나 시골에 외치 해 있었다. 가장 자세히 알아본 학교는 한 교육학 교수님이 그만의 교육철학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무학년제에 커리큘럼도 학생 자율을 강조하고, 하루의 절반은 학교를 끼고 있는 자연 속으로 가서 나무와 흙을 만지며 노는 체험 수업이 많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가족처럼 지내는 분위기였고 학부모 교육도 자주 실시하면서 우리나라 공교육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실현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일반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라 무상인데 이곳을 포함한 대부분의 초등 대안학교는 학비도 내야 했다. 물론 직접 찾아가 본 건 아니고 홈페이지와 카페에 가입해서 알아본 정보다. 이 대안학교도 좋아 보였지만, 가장 마음에 걸린 건 통학거리다. 학교 버스가 있긴 하겠지만 시 외곽이라 4-50분은 타고 등교해야 한다. 등하교를 하루에 두 시간이나 하면서 초등 6년을 보내야 한다는 게 가장 내키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째서 집 바로 앞 초등학교에 못 가고 이렇게 먼 거리로 중고등도 아닌 이제 겨우 초1인 아이를 보내야 하는지 괴로웠다.


유치원 선생님은 시내 지역에 위치한 공립 혁신학교를 추천하셨다. 거리도 크게 멀지 않은 시내 쪽이지만 위치 특성상 학생수가 많지 않고 그 덕에 학급당 학생수가 적어서 소수 케어가 가능한 학교가 두어 개 있었다. 혁신학교는 교사가 주축이 되어 좀 더 자유로운 커리큘럼을 운영하기 때문에 보통 공립학교들보다는 덜 보수적이고 학생의 권리와 의견을 더 존중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 내가 혁신학교를 직접 경험해 본건 아니라 겉핧기식으로 알아본 수준이기 때문에 속단할 순 없지만 말이다. 이 학교에 내 아이가 다닌다면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 유치원 가방에 친히 챙겨서 넣어주신 혁신학교 브로셔를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나머지 두 개는 진지한 고려사항은 아니었지만, 한 번쯤 생각은 해본 것 들이다.

하나는 근교 시골지역으로 아예 이사를 가서 시골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시골로 이사해 단독주택에서 정원을 가꾸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유튜브나 SNS에서 찾아 헤맸다. 자녀가 학교 부적응인 경우도 있었지만, 아토피 같은 만성 질환으로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키우려고 떠난 부모도 있었고, 지긋지긋한 사교육에서 벗어나 발도르프식 교육을 실천하고자 떠난 의식 있는 부모도 있었다. 남편에게 시골에 괜찮은 주택 집 알아보고 이사 갈까 이야기해보았다. 우리 둘 다 직장은 시내에 있는데, 다짜고짜 대책 없이 시골로 이사를 간다면 우선 긴 출퇴근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생업을 내팽개치고 시골에서 갑자기 농사를 짓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골로 이사 문제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하면서 출퇴근 문제보다 먼저 대두되는 화제는 다름 아닌 커피 소비였다.

"너, 스타벅스 없는데서 살 수 있어?"

남편은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살 수 있지. 애 살리자고 시골살이하는 건데 커피가 무슨 대수야. 커피머신 좋은 거 하나 사서 내려 마시면 되잖아."

막상 대답은 했지만 내 주장에 나조차도 의문이 들긴 했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매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도 않을뿐더러 출근할 때는 시간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카누 커피를 타 먹거나 스타벅스보다 더 흔해진 저렴한 프랜차이즈 커피도 즐겨 마신다. 내가 매일 스타벅스로 출근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스타벅스 없는 시골에서 살 수 있냐고 묻는 건지 의아했다. 남편이 물어본 스타벅스라는 것은 그냥 평소에 편리하게 누리던 편의시설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굳이 스타벅스 같은 카페가 아니더라도 평소 다니는 대형마트, 백화점, 은행 등 마음만 먹으면 몇 십분 내외로 다닐 수 있는 그런 편의시설이 전무한 시골에서 내가 잘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도 남편도 서울 강남 출신도 아닌 지방 사람들이지만, 여태 도시지역에 살았고 나름 시내 동네에서 산지라 막상 시골 생활은 굉장히 낯선 사람들이다. 게다가 남편은 한가로운 외곽지역보다는 자본주의의 향이 느껴지는 넓고 깨끗한 쇼핑시설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을 선호하는 성향이다. 아이를 위해 시골로 이사를 가려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삶의 형태를, 정체성을 바꿔야 하는 인생을 건 커다란 모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가 시골 소규모 학교에 간다고 해서 없던 사회성이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도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수 있다. 모든 걸 걸고 시골로 가는 도박을 걸었는데, 거기서도 만약 부적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시골학교라는 대안은 일단 빼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고려한 건 홈스쿨링이다. 초등학교가 의무교육이긴 하지만 요즘 추세를 보면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도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고. 의무교육이라고 해서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관념은 좀 누그러진 분위기다. ADHD와 불안증을 가진 자녀가 학교 적응에 실패해서 홈스쿨링을 하는 미국 엄마가 쓴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꽤 괜찮아 보였다. 물론 엄마의 직업,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당연하고 초등과정의 커리큘럼을 직접 짜고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며 지내야 하지만. 여기저기 검색해보고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한끝에 시도도 해보지 않고 처음부터 지레 무서워서 피하지는 말기로 결론 내렸다.


나와 남편도 정규 교육과정을 성실히 받아서 살아온 사람들이고, 나도 교사여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의무교육은 받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학교에서 배우는 게 없는 것 같아도 교실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우고, 최고의 교육 전문가들이 만든 교과과정을 이수하고, 학교 규칙을 지키면서 충동을 조절하는 법과 인내심을 배운다. 돈이 넘쳐나는 재벌들도 중고등 과정이 아닌 이상 초등학교는 사립이든 미션스쿨이든 보내면 보냈지 집에서 과목별로 가정교사를 붙여서 홀로 배우도록 하지는 않는다.



몇 달의 고민 끝에 결국 우리는 집 앞 초등학교에 보내보기로 결정했다. 가서 적응을 못하면 그때 가서 대안을 마련하고 다른 길을 찾을지언정 아이에게 시도할 기회조차 박탈하지는 않기로 말이다. 최소한 한 학기는 지켜보고 학교 선생님의 의견과 아이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에 다른 초등학교로 가더라도 늦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1학년 입학 이후 지금까지는 별 탈없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결국 뻔한 결정을 할 거면서, 뭘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했는지 싶지만 의미 없는 고민은 아니었다고 본다. 조금은 특별한 내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방식의 학교를 찾아보고 기회를 제공하는 건 부모의 의무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움반에 갈 정도도 아니고, 일반반에서 편하게 생활할 정도도 아닌 애매한 경계선의 있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아직 시스템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모의 고민은 더 깊어지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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