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울더라고요, 자식 때문에
결혼한 지 10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본 건 총 세 번 정도다.
보통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이 정도면 자주 우는 편인 건지는 모르겠다. 다른 남자들과 이렇게 오래 함께 해본 적은 없으므로.
내 남편은 조금은 고지식하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찌 보면 남자로서 평범한 성격이다.
첫 번째 눈물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시작은 아버님께서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데리고 술 한 잔 사주시고 싶었는지 같이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술도 오고 갔다. 그날 남편은 마음을 놨는지 본인 주량보다 많이 마시고는 갑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가 불쌍하다면서 울었다. 아빠가 고생도 많이 하고 엄마 비위도 맞추고 하느라 힘들었을 거라면서 평소에 마음에 쌓아뒀던 고마움과 애틋한 마음이 술기운에 터져 나온 듯했다. 술깅운에 그러려니 했고 술이 깨고 나서는 그 이야기를 하니 조금 민망해했다.
두 번째 눈물은 새로 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이건 남편의 눈물을 내가 직접 본건 아니고 전해 들었다. 페이 받으면서 신경 쓸 일 없이 편하게 일하다가 동기, 선후배들이 슬슬 자기 업장을 시작하자, 본인도 마음이 급해졌는지 이사까지 감행하면서 새로운 지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댁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 당시에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던 어머님이 남편을 좀 서운하게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어머님과 통화하면서 남편은 서럽게 울었다고 들었다.
두 번 모두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고 애 낳고 육아하고 일하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딱히 남편이 우는 모습을 볼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 눈물을 작년에 보게 되었다.
시점은 아이의 유치원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막 마친 뒤였다.
나는 상담 그대로의 내용을 가감 없이 남편에게 전달했다.
아이는 일반 유치원, 일반반에서 일반 아이들과 2년 차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겨우 겨우 버티고 있지만 일반 공립초등학교 입학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선생님께서 몇 년 전 받은 단순 언어지연은 아닌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아이를 위해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는 상담 내용을 말이다.
아이가 5세 즈음 발달상의 어려움을 알게 된 후로는 남편도 물심양면으로 많이 노력해왔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아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을 남편에게 수시로 내비쳤고, 발달지연에 어떤 게 좋다더라, 뭘 해줘야 한다더라, 아빠 역할이 결정적이 다더라 등 아빠로서 해줘야 할 일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취미가 레고일 정도로 정적인 성향의 사람이라 바깥 활동이나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지만 일요일이면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나가서 뛰어놀 기회를 주고자 했다. 그동안 일주일 내내 일하느라 함께해주지 못한 죄책감을 만회라도 하듯 집에 있는 시간에는 아이와 어떻게든 소통하고 놀아주려고 했다. 내 출근 시간이 더 빨라서 남편이 등원을 시켜줄 때면 유치원 현관문 앞에서 아이가 신발을 벗고 교실문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애틋한 눈빛으로 하염없이 바라본다고, 열 체크해주시던 보건 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아이가 또래와 원활하게 소통이 어려운 걸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루 종일 잘 생활할까 많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남편과 나는 유치원 선생님에 권한대로 서울에 대학 병원을 어디를 가야 할지, 지금 가장 빨리 예약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의논하고, 초등학교는 어디로 보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초상집 분위기였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언어만 터지면 모든 것은 자동으로 해결될 거라는 착각을 이제 버리기로 하고,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고, 할 수만 있다면 장애 진단을 받아 도움반으로 입학하는 것도 고려해보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어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 둘 다 죽상을 하고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항상 내가 이 시련의 주인공이라고만 생각해왔다. 내가 아이의 주양육자이고, 엄마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날 아침 남편의 얼굴도 다른 때보다 더 상심해있는 표정이길래 먼저 다가가서 말했다.
"괜찮을 거야. 우리 OO이. 좋아질 거야."
순간 나는 남편이 화장대 앞에서 구토를 하는 줄 알았다.
내 위로 아닌 위로를 들은 남편은 참고 짓눌러서 욱여놓은 눈물을 토해내듯 터트렸다.
이전에 신혼 때 봤던 그 눈물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자신을 똑 닮은 아이에 대한 가여움, 죄책감, 걱정, 우울함, 고민 등이 뒤죽박죽 버무려져, 전형적인 이과 출신에 항상 이성적인 사람이라 자부해왔던 사람이, 그 이성을 조절할 새도 없이 터져 나왔다.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사실 나는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너무 자주 수시로 울었기 때문에 내 눈물은 의미 없게 여겨질 만큼 흔한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도 아이의 아빠로서 엄마인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잘 되기를 바라고 고민해왔을지도 모른다.
아픈 아이를 둔 부모는 강해져야만 한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아이를 치료하고 도움을 줘야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부모가 포기하면 안 되고, 먼저 쓰러지면 안 된다.
그리고 아이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와 도움을 알아보고 제공해주어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 부모인 내가 이런 일을 당하게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현실을 부정하고 노력으로 해결될 거라는 무한 긍정론에 빠지기도 했다가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우울과 비탄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말이 쉽지, 아이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도 몇 년이 걸린 듯하다.
자신은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명문대 출신에 좋은 직장을 가진 남편이 자녀가 발달 장애라는 걸 알고 인정하지 못해서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아이 양육에 관한 한 아내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회피하다가 결국 이혼까지 이르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참 모질고 나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한다.
시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남편도 어릴 적부터 똘똘하고 야무져서 친형이 동네에서 놀다가 놀림이라도 받고 오면 동생인 자기가 나서서 복수해주기도 할 정도였고, 영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항상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던 사람이다. 시부모님은 여전히 당신 손주가 너무 똑똑해서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하시는 듯한 눈치다. 어머님 아들을 손주가 반이라도 닮았으면 지금 겪는 일들이 이해 가기 힘든 것들 투성이니 말이다.
다행히 남편만큼은 아이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많이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고, 아이를 많이 생각하고 염려한다.
나처럼 ADHD나 아동발달 관련 책을 찾아 읽으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 해주고 있는 것도 많이 변화한 거고, 나로서는 감지덕지다.
함께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주는 게 동지애라고 한다면
우리 부부도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 동지애가 생긴다는 걸 느낀다.
물론 아이가 건강해서 겪지 않았으면 훨씬 더 좋을뻔했지만.
내 남편이 기사에서 본 사람처럼 아픈 아이를 외면하지 않아서, 아이를 걱정하며 눈물을 참아낼 만큼의 부성애가 있는 사람이라서 새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