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열하게 만든 유치원 선생님과의 상담
결국 도움이 되었던 유치원 담임선생님의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들.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6세 때에 이어서 2년 연속 같은 분이셨다.
6세에 워낙 아이를 잘 봐주시고, 이해해주셨으면 유치원 교사로서도 굉장히 유능한 분이신 것 같아 7세에도 내 아이를 맡기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공립 단설유치원이었기 때문에 사범대 유아교육과를 나와 임용고시를 합격한 교육공무원 신분의 교사였기에, 나는 더 믿음이 가고 백퍼센트 신뢰했다.
아이 6세 때는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3월이 지나도 개학은 계속 늦춰졌고 사상 초유의 사태로 온라인개학까지 시행되면서 유치원생들은 엄마가 돌봐줄 형편이 되면 거의 가정보육을 하는 분위기였다. 우리같은 맞벌이가정 아이들 몇 명만 나와서 돌봄교실만 운영했기 때문에 제대로된 유치원 교육과정은 1학기때는 거의 운영되지 않아서 아이는 거의 자유 놀이시간을 보내다 하원했다. 단체 수업과 단체 놀이가 현저히 지양되고, 설사 운영되더라도 마스크를 쓴채로 칸을 철저히 나눠서 떨어진 상태로 했기에 또래와의 상호작용은 차단되는게 당연했다. 그렇기에 아이의 문제 행동이 많이 부각되지 않은 것도 있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 입장에서는 더 편했는지도 모른다. 또래와 대화할 필요 없고, 부딪힐 필요도 없는 분위기가 말이다.
그래서 6세에는 상담시에도 언어표현이 조금 느린편이긴 하지만, 학습 면에서는 큰 지연이 없고, 되려 더 잘하는 것도 많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나는 경솔하게도 코로나가 무서워서, 그리고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멋대로 판단하여 센터치료도 멋대로 그만둔 상태였다.
문제는 7세부터 제대로 대면개학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는 여전히 심각했지만 온라인수업의 피폐도 상당하고, 학력 저하 현상도 있어서 왠만하면 각 시도 교육감과 단위 학교장의 재량으로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유치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체 수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문제점은 상당히 드러난듯 했다.
4월초쯤, 유치원 담임선생님과 1학기 상담 후에 나는 겉잡을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상담내용은 이랬다.
아이는 작년보다도 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어려워하고,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서 놀자고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바깥놀이를 별로 안 좋아하고, 강당에 가면 혼자 놀이 할 수 있는게 많으니 선생님에게 자꾸 와서 강당으로 가면 안되냐고 요구한다. 초등학교는 사립대안학교나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미션스쿨이 소규모로 운영되는, 아니면 혁신학교를 알아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우리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그런 일반적인 공립 초등학교에서는 적응이 힘들거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회성 그룹수업을 꼭 하게 해주라고. 아이를 위해서 해외에 데리고 가서 사는건 어떻냐고.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이 아이가 마음 편하게 학교를 다니기 힘들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상담이 끝나고 한참을, 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무엇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이전에 다니던 센터에 그룹 수업을 알아보았지만 모두 평일 낮 시간이라 내가 데리고 가기에는 불가능했다.
학기중이라 휴직도 어려운데 어떻게 해야하나.
왜 이럴 때는 양가도 멀리 살아서 작은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지.
하늘의 도움인지 집 바로 근처 상가에 괜찮은 발달상담센터에서 사회성 그룹 수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더 기도했고, 내가 노력하면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믿었다.
주말마다 조카네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엉덩이 한 번 의자에 붙일 틈 없이 그림만 그리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지만, 비 오는 날만 아니면 무조건 데리고 나갔다. 또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먹을 것이 중요하다고 하기에 식단에도 더욱 신경쓰기 시작했다. 왠만하면 반찬은 사지 않고 내가 만들어서 먹이려고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흐르고 9월쯤 하게 된 2학기 상담에서도 별반 달라진게 없었다.
우리 유치원 담임선생님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게 정말 관찰력이 뛰어난 분이셨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묘사해주면, 나는 눈에 선할 정도로 내가 아는 내 아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유치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대로 눈에 그려질 정도로 선생님은 정확히 관찰하고 그 관찰한걸 바탕으로 선생님의 유아교육적 지식과 경험을 더해 나에게 그리고 아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십분 노력하셨다. 그리고 어릴 때 받았던 검사 말고 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아보는게 어떻겠냐고, 아이가 가진 어려움의 원인이 뭔지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상태는 한 마디로 하면 유치원 도움반에 다니는 친구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또래와 비교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런걸 전문용어로 경계성 발달장애라고 부른다는걸 나중에 알게 됐지만.
너무 틀린 말 없이 얄밉도록 정확하게, 아이의 상태를 찝어내고 있어서 미칠듯이 괴로웠다.
다음은 내가 2학기 상담후에 그 당시 기록해 놓은 글이다.
어제밤잠을 내내 설쳤다. 힘들고 떨리고 괴롭고 계속 고민이된다.
자책하는 마음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누가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
세상에서 육아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더더욱 억울하다. 그 누구보다 노력하고 애써온 것 같은데 생각대로 잘 안 된다.
아이는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기도하고 확언을 썼다.
더 나아질 것이고, 그 누구보다 리더십 좋고 사회성 좋은 아이로 자랄 것이라고. 그렇게 되게 내가 만들거라고.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자제시키고 식단 관리도 최근에 시작하긴 했으나 노력하고 있고 또래 아이들과 접하는 시간도 사촌들과 만나는 시간도 최대한 늘려주려고 노력했으나 유치원 선생님의 피드백은 검사를 다시 받아보시라.
그리고 내가 눈에 선할 정도로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놀이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신다.
정말 뛰어나고 관찰력이 예리하신 선생님이다. 부정하고 싶은 그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듯
정확히 찝어서 말해주시고 되려 더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하다고 하시지만 어찌보면 막연히 잘하고만 있어요, 라고 상담시간 내내 반복했었던 예전 어린이집보다 훨씬 전문성 있으시고 아이들과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력이다.
유치원에서 보내주는 사진들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 같지만 막상 겉돌때가 많다고 한다.
아이가 같이 놀자고 다가갈때도 많지만 놀이시간이 길지 않고 깊게 상호작용이 되지 않는다.
내가 뭣도 모를 때는 사회성 좀 없으면 어때,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결혼 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인데
외길 인생이라도 괜찮다, 이따위 생각도 했었는데 내가 생각한 그 사회성은 사교성에 더 가깝다.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항상 웃고 즐거운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는 그런 사교성을 갖춘 사교적인 사람.
그러나 유아기때 발달해야 하는 사회성은 그런 개념이라기보다는
남의 감정을 파악하고 분위기도 파악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도 눈치채고 간단한 대화도 나누며 관계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 능력이 우리 아이에게는 아예 결여되어 있거나, 낙관적으로 봐서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하다.
자유놀이 시간에 혼자 좋아하는 한자쓰기나 각종 지도나 구조도 그리기를 많이하고 좋아하는 보드게임에 참여하고 싶은 아이가 운좋게 있다면 짧게 루미큐브 같은 게임을 하는 정도인 것이다.
유아 때야 원에서 선생님의 관리를 철저히 받고 있고 친숙한 환경이라 그래도 견디며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과연 아이가 행복하게 다닐 수 있을지, 담임선생님도 그 부분이 걱정이고, 나도 그게 가장 걱정스럽다.
센터에 다니며 하는 짝그룹 수업에서는 그래도 자기 의사 표시도 명확히 하는 편이고 부모나 친척, 다른 어른들과는(다소 사차원적이기는 하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편인데 유독 또래와 어렵다.
또래들과 자연스럽게 섞여 놀기가 어렵고, 더 슬픈건 본인도 그 사실을 점점 인지하고 그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지 몇달전부터 손톱을 뜯기 시작했다. 불안하거나 자기가 말하고 싶은데 잘 표현이 안될때 뜯는것 같았다.
메디폼를 붙여주기도 했지만 손은 물이 자주 닿으니 잘 뜯어져버린다.
피가 나올것 같으니 하지 말라고 하면 손가락을 숨기거나 몰래 한다.
틱은 아니기를, 틱으로 발전하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틱의 일종일 것 같다.
마음이 아프다. 내가 해줄수 있는건 왠만큼 다하고 있는것 같은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가족들은 엄마니까 강해져야한다, 애기 앞에서 울지마라, 마음을 다잡아라 하는데 나는 엄마여도 전혀 강하지 않고 멘탈도 약하고 완벽하지도 않고 나 스스로도 오점투성이고 컴플렉스도 많고 그냥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다.
집에 있는 화분의 식물 하나도 제대로 못 키워 썩히거나 시들게 많드는 나같은 사람이 한 인간을 키워내려고 하니 이렇게 벌받는 건지.
어떨땐 주위에 보면 나보다도 덜 노력하는 그런 엄마들의 아이들은 그저 바르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만 같은데 왜 나만 이모양인지 부정적인 생각만 든다.
넋두리 해봤자 아무 의미 없다.
다시 일어서자. 그리고 냉정해지자.
집 근처 병원이나 대학병원 예약을 알아보고 가능한 곳은 어서 예약해서 검사를 다시 해보자.
검사 결과가 나를 다시 한번 폭풍처럼 휩쓸고 가겠지만 그게 두려워 회피한것 같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맞설때이다.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다.
조금 손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글이지만, 그래도 그 때 기록해놓길 잘한 것 같다.
담임선생님의 진솔한 상담 덕분에 나는 아이를 정신 차리고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대학병원 진료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초등 입학 전인 7세 2학기 시기가 발달 장애 검사 결과도 신뢰할 수 있는 편이라 시기도 적절했다.
너무 어릴 때는 증상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을 수도 있고 소아정신과적 문제가 중복되고 비슷한 양상들도 많아서 정확한 진단명이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선생님 덕분에 적절한 시기에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고, 제대로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와 도움도 줄 수 있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긴 말 하고 싶지 않고, 간단히 상담을 끝내고자 했다면 그냥 아이는 유치원 생활 잘하고 있다고 부모 입장에서 듣기 좋은 소리만 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느 누가 뭐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의 조언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아이를 바라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선생님은 내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염려하고 사랑했기에 나에게 솔직하게 유치원에서의 아이의 생활과 상태를 이야기하고 공유하려고 애쓰신거다.
그 때는 참 뼈가 쓸려 나가는 것 같았지만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덕분에 엄마인 나도 큰 고비를 넘기고 아이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해야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아이에 대해 칭찬과 입바른 소리만 하는 선생님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주는 선생님의 의견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